<007 스카이폴>의 숨겨진 이야기

2. 실종과 복귀

by 발길 가는대로

2012년 10월 23일 런던의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는 007 시리즈 첫 영화 <Dr. No> (1962, 한국 개봉 007 살인번호)의 50주년을 기념하여 런던과 미국에서 IMAX 영화관에서 일반에게 개봉되었다.


영화는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시작된다. 본드는 누군가를 도우기 위해 (사실은 잃어버린 하드 디스크를 찾기 위해) 이스탄불의 빈민가를 수색하던 중 이미 죽어버린 동료를 도울 틈도 없이 도망치는 악당을 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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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차를 타고 도망치는 악당을 차로, 차가 전복된 후 바이크로 도망치는 적을 다시 바이크를 타고 추격하다가 악당이 달리는 기차에 뛰어내리자 본드도 같이 뛰어내리고 두 사람은 달리는 기차 위에서 격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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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구를 겨누고 있던 MI6의 여자 요원 이브 머니페니(Eve Moneypenny)는 M의 지시를 받고 총격을 가하지만 악당 대신 본드가 총에 맞아 강물 위로 떨어진다.


오프닝 장면은 아래의 유튜브 화면으로 감상하는 것이 좋다. 화질도 좋고 대사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8dcTNWOoZlg


영화가 촬영된 곳은 이스탄불의 가장 오래된 광장 중의 하나인 에미뇌뉴 마켓(Eminönü market)이 있는 곳이다. 수백 개의 노점상들이 북적이는 곳이기에 필수 관광 코스 중의 하나이다.


바이크를 타고 지붕을 넘나드는 액션을 보여준 곳은 Grand Bazaar이다. 이곳은 항공 위성으로 보면 감이 온다. 모든 지붕들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붕 아래는 미로처럼 얽혀있는 쇼핑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물론 지붕 위에는 영화 촬영을 위해 철판이 깔렸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영업 손실이 발생한 쇼핑점들에게 매일 418 달러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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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본드가 타던 바이크는 혼다의 CRF 250R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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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스탄불의 분위기에 맞게 약간 개조한 것 같다. 현재 단종된 모델이며 혼다의 어드벤처 모델 중에서 가장 가격이 저렴하고 배기량도 가장 적다.


본드가 기차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격투를 하던 중 머니페니에게 총격을 받아 강물에 떨어지는 장면을 찍은 곳은 영화에서는 10분 만에 도착한 곳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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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스탄불에서 거의 900km 떨어진 아다나(Adana) 근처에 있는 varda Viaduct 철교이다. 아래에 강물은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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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터키에서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에서 단지 12분 상영되고 있지만 촬영을 준비하는데 4개월, 리허설에 3개월, 촬영하는데 2개월이 소요되었고 영국 현지에서 온 스태프들만 200명이 넘었다. 물론 현지에서 기용된 스태프들 역시 200여 명이었다.


화면은 바뀌어 런던으로 이동하고 시점은 3개월이 지난 상태이다.


기차에서 총을 맞고 떨어진 본드는 사망처리 되었고, NATO의 요원 신상 명세가 담긴 하드 디스크 유출 문제로 M은 의회 정보 보안 위원회 의장 말로리(Gareth Mallory)에게 불려 가 은퇴 압력을 받고 돌아오던 중 MI6의 컴퓨터가 해킹을 당하고 또 본부가 폭발하는 현장을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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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본드는 터키의 어느 한적한 해변가 마을에서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다가 CNN에서 보도된 MI6 본부의 폭발사고 뉴스를 듣고 M의 집에서 복귀 신고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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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6 빌딩은 실제 런던에 있는 MI6 본부 건물을 촬영했다.


아래 지도에서 보다시피 템스강을 건너 웨스트민스터와 버킹엄 궁전 등 영국의 관청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M이 경찰의 제지를 받고 건물 폭발 모습을 지켜보던 다리는 Vauxhall Bridge이다.


보시다시피 멀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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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드가 전갈 놀이를 하며 숨어 지내던 해변가 모습의 촬영은 터키 남부의 페티예(Fethiye)에 있는 Calis Beach에서 촬영했다. 이곳에 가더라도 전갈 놀이를 하고 밤새워 영업하는 포장마차형 바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가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갔을까? 위의 지도에서 보면 기차에서 떨어진 곳에서 무려 700km나 멀리 있는 곳인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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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가 요원의 차를 타고 새로 이전한 MI6 본부로 들어가는 장면을 촬영한 곳은 런던의 웨스트 필드 마켓(Smithfield Meat Market)의 지하 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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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는 M의 명령으로 복귀에 적합한 신체 상태가 되는지 검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본드의 Test 결과는 형편없었지만 M은 가까스로 통과한 것으로 판정하고 다시 본드를 현장으로 복귀시킨다.


질문자가 던진 질문에 본드가 연상되는 단어를 답하는 형식의 심리 테스트에서 흥미로운 답변이 몇 개 포함되어 있다. 우선 자막보다 영문으로 보는 것이 낫겠다.


Doctor Hall: Woman?

James Bond: Provocatrix.

Doctor Hall: M.

James Bond: Bitch.

Doctor Hall: Skyfall.

James Bond: Done.


‘여자’라는 질문에 본드는 서슴없이 Provocatrix라고 답한다. 영화의 자막에는 이를 ‘요부’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해석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Provocatrix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도발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혹은 용의자를 선동하여 범죄에 가담시키거나 범법 행위를 하게 하는 비밀 요원을 칭하는 말이다. 즉, 말썽을 일으키거나 불화를 일으키거나 선동하는 사람이다.


혹자는 본드가 M이라는 질문에 연상되는 단어를 Betch(영화에서는 ‘싸가지’라고 했지만 이를 직역하면 ‘개 같은 년’이 된다)라고 답한 것을 두고 Provocatrix가 지칭하는 것은 M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본드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여자 Woman’은 단연코 ‘베스퍼’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리고 등장한 단어는 Skyfall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마침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본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그냥 ‘그만하자’(Done)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본드는 자신의 어깨에 맞은 파편 분석을 의뢰하고 용의자를 검색하던 중 자신이 쫓던 자의 이름이 패트리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Q를 만나 자신의 새로운 무기와 추적 장치 송신기를 전달받고 중국의 상하이로 가게 된다.


007 시리즈에서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Q의 존재다. 그동안 제작된 007 시리즈의 모든 영화에 등장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Q는 바로 이 사람이다. 2탄부터 19탄까지 무려 17편에 등장하여 본드에게 기상천외한 무기들을 제작 공급해 주던 바로 그 사람이다. (Q는 Quartermaster의 의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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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작 시리즈가 시작된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에는 Q의 존재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스카이폴>에는 다시 Q가 등장했다. 그것도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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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의 존재는 우선 작가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시작된다.


영국의 총기 전문가 (총기 관련 책만 12권 이상 쓴 사람이다) 제프리 부스로이드(Geoffrey Boothroyd)는 1956년 5월 이언 플레밍이 쓴 소설을 읽고 영광적인 팬이 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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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설 속에 등장한 본드의 무기 베레타는(아래 사진 참조) ‘숙녀용 총’이라는 의견을 담은 편지를 이언 플레밍에게 보냈고 그의 의견에 흥미를 느낀 플레밍은 부스로이드에게 수차례의 질문과 답장을 보내며 총기에 대한 지식을 넓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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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57년에 발표한 소설 ‘From Russia, Love’에는 책의 표지 디자인으로 권총이 등장했다. (표지에 나온 권총은 부스로이드가 갖고 있던 총 38 구경 스미스 웨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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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본드의 무기에 가장 적합한 총으로 7.65mm 발터 PPK가 가장 적합하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고 이후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 이 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음기를 다는 문제도 부스로이드의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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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가 본드에게 준 특수 제작 권총은 Walther PPK/S 모텔이다. 이 모델은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가격은 현재 900 달러(풀옵션 포함)이다.


참고로 시리즈 영화 1탄 살인번호(1962년, Dr. No), 2탄 위기일발(1963년, From Russia with Love), 3탄 골드핑거(1964년, Goldfinger) 등장하던 Q는 부스로이드 소령이라고 언급되었지만 그 이후의 영화에서는 ‘Q’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본드와 Q가 처음 만나는 곳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국립 미술관의 Room 34이다. 그리고 본드의 옆자리에 앉은 Q의 대사, ‘저 그림을 보면 멜랑꼴리 해져요, 위용을 자랑했었던 전함의 퇴역이라니…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죠… 어떤 생각 들어요?’ 하면서 본드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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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본드의 대답은 무미건조한 음색으로 ‘배가 크네요’ 하고 자리를 일어나려고 한다.


두 사람의 앞에 전시되고 있는 그림의 제목은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The Fighting Temeraire)이며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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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활약했던 영국의 전함 테메레르호가 1838년 증기 예인선에 의해 템스 강을 따라 예인 되어 고철로 해체되기 직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 역시 1838년에 그린 것이다.


트라팔가 해전은 1805년 영국을 침공하려는 나폴레옹의 군대의 연합 함대(프랑스 함선과 스페인 함선)와 전투를 벌여 승리한 영국 해전 역사상 기록적인 승리였다. 스페인 남서부 해안에서 발생한 이 전투에서 영국의 자랑 넬슨 제독이 전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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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터너의 이 그림은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이며 2020년부터 영국의 화폐 20파운드(£20)의 도안으로 채택되어 유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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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이 장면은 누군가의 퇴진을 의미하는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퇴물이 되어버린 M과 본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가 의미하는 것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사실 이 대화는 영어 원문을 읽어보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Q: Age is no guarantee of efficiency.

James Bond: And youth is no guarantee of innovation.

Q: Well, I'll hazard I can do more damage on my laptop, sitting in my pyjamas before my first cup of Earl Grey than you can do in a year in the field.

James Bond: Oh, so why do you need me?

Q: Every now and then a trigger needs to be pulled.

James Bond: Or not pulled. It's hard to tell in your pyjamas... Q.

Q: 007."


젊어진 Q 역을 맡은 배우는 벤 위쇼(Ben Wishtow)이다. 그는 2007년 개봉된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영화에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 아주 인상 깊은 배우이다. 2012년 당시 3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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