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본드의 고향집
실바의 컴퓨터를 조사하던 Q는 오히려 역해킹을 당해 MI6의 모든 보안 설치가 해제되고 실바의 탈출을 도와주게 된다. 본드가 실바를 추적하지만 실바는 지하철의 열차를 탈선시켜 본드의 추격을 저지한다.
실바는 M이 참석하고 있는 청문회 장소를 급습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M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포하는 것이었다. M은 하드 디스크 유출 문제로 요원들이 죽어나가는 문제에 대해 보안 위원회로부터 추궁을 당하고 있었다.
M이 청문회장에서 남편이 읽어졌던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인상에 남는 장면이었다.
M이 낭독하던 시는 율리시스(Ulysses, 그리스어로 오디세우스 Odysseus)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알프레드 경(Alfred Tennyson)이 쓴 시이다. 시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해석은 각자 알아서...
Though much is taken, much abides; and though
We are not now that strength which in old days
Moved earth and heaven, that which we are, we are;
One equal temper of heroic hearts,
Made weak by time and fate, but strong in will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Alfred Lord Tennyson, Ulysses
M을 가까스로 구출한 본드는 M을 실바의 공격에 대한 미끼로 사용하기로 한다. 그가 M을 데리고 간 곳은 스코틀랜드에 있는 그의 고향집 스카이폴이었다.
위의 영상에서 보다시피 본드의 과거와 그의 부모님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이는 007 시리즈 영화에서 처음 밝혀지는 본드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이곳은 스카이폴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다. M의 발 밑에 있는 바위를 유심히 봐둬야 한다. 구글맵에서 Skyfall scene으로 검색하면 된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바로 이 근처에 있는 표지판에 이런 낙서가 있기 때문에 찾기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가 않다. 글렌코(Glencoe)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로 25분 정도)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스카이폴 로지는 이 길을 따라 아무리 들어가 봐도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드의 고향집은 합판과 석고보드로 만든 세트이기 때문이다.
만약 비슷한 분위기의 집을 찾고 싶다면 인근에 있는 이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름은 Duntrune Castle이다.
본드는 관리인 킨 게이드와 함께 부비트랩을 만들며 실바의 공격에 대비하고 M도 이들의 작업을 거든다. 곧이어 실바의 부하들이 스카이폴에 도착한다.
본드는 가까스로 이들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곧이어 실바가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나 이들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한다. 웃기게도 실바의 헬기는 확성기로 음악을 크게 틀고 나타나 본드로부터 ‘요란하게 나타나는군!’하는 핀잔을 듣는다.
이 음악의 제목은 ‘Boom Boom’이다. 1961년 John Lee Hooker이 발표했지만 인기를 크게 끌지는 못하다가 1965년 영국의 밴드 The Animals가 커버하여 빅 히트를 쳤다.
M과 킨게이드는 지하통로로 피신하고 헬기에서 내린 실바는 부하들에게 M을 생포해야 한다고 명령하며 그전의 공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류탄을 터뜨리며 강한 공격을 퍼붓는다.
가스통의 폭발과 헬기의 추락으로 스카이폴은 완전히 박살이 나고 실바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전등의 불빛을 쫓아 M과 킨케이드를 추격한다.
자막이 계속 거슬린다. 실바는 M을 만날 때부터 M에 대한 호칭을 ‘마미’(mommy) 혹은 ‘마더’(mother)라고 하지만 자막은 무식하게도 계속 ‘국장’으로 표시된다.
호수에 빠진 본드는 실바의 부하를 죽이고 올라오지만 실바는 어느새 M과 킨케이드가 도망친 오두막 예배당까지 접근한다.
영화 <스카이폴>의 몇 가지 특이한 것들 중 하나가 본드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것이고 동시에 본드의 부모에 대한 사항들도 많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앞서 서술했던 ‘카지노 로얄’편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이다.
다시 한번 더 언급하면 본드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계인 앤드류 본드(Andrew Bond)이며 어머니는 스위스계인 모니크 들라크루와(Monique Delacroix)이다.
본드의 부모는 본드가 11살 때 프랑스 알프스 샤모니 인근에서 등반사고로 죽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 입대했던 그의 부친은 대위 계급으로 제대 후 비커(Vicker)라는 무기 제조회사에 입사하여 무기를 팔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던 중에 모니크를 만나 결혼했다.
무기회사에서 직업을 가졌던 만큼 총기 수집이 취미였는데 제임스가 터키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자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실종, 사망 처리된다) 남은 총기들은 미국인 수집가에게 팔려 나갔지만 유일하게 남긴 사냥용 총이 한 자루 있었던 것이다.
본드의 부모님이 사용했다는 사냥용 총의 이름은 Anderson Wheeler 500 Nitro Express Double Rifle이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다. 가격은 최저가 24,500달러(15,500파운드)이지만 주문 생산 방식이라 주문 후 10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 터무니없다고 생각되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하면 된다.
엔딩 신에 나오는 아래의 한 장면을 다시 보자. 새로운 M을 맡은 말로리(Gareth Mallory, 영국 의회 정보 보안 위원회 의장)와 본드 사이에 보이는 벽에 걸린 그림이 보일 것이다.
우선 이 그림의 원판을 먼저 감상해 보자. 이 그림의 제목은 ‘승리’(Victory)이며 Thomas Buttersworth의 작품이다.
앞서 본드가 젊은 Q를 국립 미술관에서 만날 때 나란히 앉아 감상하던 그림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활약했던 영국의 전함 테메레르호가 노후화로 인해 인양선에 이끌려 퇴진하는 마지막 항해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M의 사무실에 걸린 이 그림은 영국의 전함 테메레르호가 트라팔가 전투에서 스페인 연합함대를 공격하고 승리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본드의 활약으로 죽은 실바는 스페인 출신의 배우였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영화는 007 영화 시리즈 사상 최고의 흥행을 거둔 작품이다. 흥행 수익이 무려 11.08억 달러를 기록했다. 2위 기록은 ‘카지노 로얄’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했던 것은 과거 영화와 달리 ‘인간’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007 영화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세계의 평화’, ‘지구의 안전’과 같은 거대한 허구의 사실보다 악당 실바가 추구하는 목표는 자신의 삶에 끊임없는, 벗어날 수 없었던 고통의 근원에 대한 해결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각본의 내용은 실바가 저질렀던 모든 테러의 근본 원인 M 역할을 맡은 주디 덴치(Judi Dench 1934년생, 영화 개봉 당시 78세)의 자연스러운 퇴진과 새로운 M의 탄생을 영화의 내용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것이다.
주디 덴치는 영국 최고의 정보국 M16의 수장으로서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역할은 무려 21년간 영국의 총리로 재임했던 마거릿 대처 수상이 연상될 정도로 오랜 시간 (1995년 골든 아이부터 7편) M의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 속에서 탄생된 M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 그려질 때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언 플레밍이 해군 정보국에 복무할 때 그의 상관 고드프리 제독(Rear Admiral John Henry Godfrey) 이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본명보다 소설이든 영화든 모두 ‘M’으로 통칭되는 이유는 이언 플레밍이 어릴 때 자신의 모친을 부를 때의 호칭이었다. 작가가 겪었던 자신의 모친은 매우 엄격하고 굉장한 고집을 가진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팬덤들 사이에서 궁금증을 자아내었던 M의 본명이 엔딩 신에서 밝혀졌다. 그녀의 본명은 올리비아 맨즈필드(Olivia Mansfield)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M이 본드에게 남긴 유품 박스의 안쪽 뚜껑에 적혀 있었던 것이다.
유품 박스 안의 선물은 불도그 인형(Royal Doulton bulldog Union Jack)이다. 항상 M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장식품이었다. 글씨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From the Estate of Olivia Mansfield Bequeathed to James Bond’(올리비아 맨스필드의 개인 소유품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상속함)
이 장식품은 1815년부터 영국의 로얄 더튼가에서 만들었다. 시중에서 다양한 복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100달러부터 400달러까지이다.
M의 역할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모한 반면에 앞서 2편의 시리즈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Miss 머니페니(MoneyPenny)가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성이 등장했다.
그리고 과거의 머니페니와 달리 – 타자나 치고 서류나 전달하는 단순한 비서 역할에 그치지 않고 현장 요원으로 활약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나오미 해리스(Naomie Harris)가 맡은 이 배역은 본드와 때로는 묘한 썸을 타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고 그런 관계까지는 가지 않았고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 ‘이브’(Eve)가 밝혀진다.
또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그동안 보아왔던 본드걸의 존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비록 베레니스 말로에(Bérénice Marlohe)가 세버린(Severine) 역할을 맡아 잠시 등장하지만 그녀가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은 채 20분도 되지 않을 만큼 짧은 순간이었고, 영화에서의 역할도 미미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는 ‘<스카이 폴>의 진정한 본드걸은 M이었다.’라고 말한다.
끝으로 본드의 역할도 이 영화는 새롭게 조명했다.
과거의 영화에서 본드가 다치거나 또는 수감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본드가 죽은 것으로 나온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복귀하는 그의 모습도 거의 폐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슈퍼 영웅으로 군림했던 그의 위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정보 요원이 어떤 경우에는 가차 없이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바는 M에 의해 적에게 넘겨졌고, 본드 역시 M에 의해 하드 디스크보다 하찮은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정보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의지할 곳 없는 고아가 더 적합하다는 M의 말은 언제든지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본드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테스트에서 불합격했지만 임무를 맡겨야만 하는 M의 절박함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모두 모인 스카이폴은 본드의 고향이자 죽음의 장소인 동시에 새로운 탄생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바의 입에서도 증명이 된다. (너무 적합한 장소라고 한다)
실바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킨게이드를 죽이지 않았던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것은 바로 Mother 앞에서 자신이 저지러는 살인을 보여주기 싫은 자식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카이폴은 가족의 얘기로 끝을 맺고 있는 셈이다.
실바의 죽음과 함께 본드의 품에서 잠드는 M의 모습은 실바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왔던 Mommy, Mother라는 단어 속에 세뇌된 관객은 어느새 M을 이들의 엄마로 받아들였고 그들의 죽음은 바로 가족의 죽음이라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PS. 아무튼 이런저런 논리로 인해 팬덤들 사이에 M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얘기가 음모론처럼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인 스파이의 퇴장처럼 ‘죽음’을 위장한 퇴진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