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의 숨겨진 이야기

2. 영화로 만드는 험난한 과정

by 발길 가는대로

소설 <닥터 지바고>의 해외 출판 및 관련 권리는 이탈리아의 출판사 펠트리넬리(Feltrinelli)가 소유하고 있었다. 영화화 판권은 1962년 말 이탈리아의 영화 제작자 카를로 폰티(Carlo Ponti)가 펠트리넬리와 계약했다.


카를로 폰티는 즉시 미국의 MGM과 계약하고 1963년 8월 6일 뉴욕 타임스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감독했던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비록 MGM의 자본이 투입되었지만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영국-이탈리아 합작 영화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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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차라리 이 모든 사실을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왜냐하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그 아름다운 음악과 그 압도하던 시베리아의 설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지바고와 라라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


그 모든 감정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어린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혹한의 겨울과 지바고의 턱수염을 얼게 하던 고드름과 하얗게 쌓여있던 시베리아의 설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알고 있던 시베리아 벌판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닥터 지바고의 독특한 외양을 보고 진짜 러시아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 데이비드 린은 영국인, 제작자 카를로 폰티는 이탈리아인, 주연 배우 닥터 지바고 역의 오마 샤리프는 이집트 출신, 라라 역의 줄리 크리스트는 영국인, 그리고 촬영은 시베리아가 아니라 스페인과 핀란드, 캐나다에서 로케이션 했던 것이다.


제작자 카를로 폰티는 데이비드 린에게 자신의 아내 소피아 로렌에게 '라라'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시할 수 없는 그의 요구였지만 데이비드 린은


"처녀 역할인데..." (당시 소피아 로렌은 30살이었다)

"키가 너무 큰데..." 등등의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정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좁은 국토의 한국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했다. 어린 지바고의 엄마 장례식이 광대한 러시아의 평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순간 "아! 이런 곳은 어디일까? 시베리아 평원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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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으로 부족하니 유튜브에서 다시 한번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jffzeGOM1Hk


나는 50대가 넘을 때까지 이 평원을 '우크라이나 어디쯤...' 하는 확신을 하고 있었고 배경의 설산은 '틀림없이 우랄산맥 아니면 알타이 산맥일 거야...'하고 철떡 같이 믿고 있었다. (아마도 이 무렵은 영화를 서너 번 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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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장면은 스페인에서 찍었다. (당시는 냉전 중이었기 때문에 소련에서의 촬영은 절대 불가였다)

그런데...

그 시대는 CG가 불가능했을 것인데 어떻게 스페인에서 설원을 찍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프닝의 장례식 장면은 스페인의 남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하는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의 라 칼라로하 캐슬(La Calahorra Castle) 부근에서 찍었다. 캐슬을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자. (이곳은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와 가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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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의 장면들도 모두 이 부근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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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질러 말을 타고 가는 파르티잔들의 돌격 장면은 마른 강바닥 위에 철판을 깔고 가짜 눈으로 만든 대리석 돌가루(marble dust)로 덮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어 스페인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의 하나인 Soria 인근 Campo de Gómara near Soria 지역으로 갔지만, 하필이면 이 해의 스페인은 50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어린 지바고 역할을 맡은 배우는 지바고 역할을 맡은 오마 샤리프(Omar Sharif)의 친아들 Omar Sharif’s own son Tareak이 맡았다. 아래 사진은 아들에게 연기지도를 하는 모습이다. 이 두 사람도 지금은 많이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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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월을 건너 성인이 된 지바고가 살던 모스크바로 옮겨간다. 소설까지 판매금지한 소련 당국이 영화의 촬영을 모스크바에서 하도록 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모스크바 장면은 – 하도 비슷해서 찰떡 같이 믿었지만 전부 세트로 제작한 것이다. 이것 역시 스페인에서…


모스크바 시내의 모습은 마드리드 교외 카니야스 Canillas에 세트로 지어졌다. 10 에이커의 면적에 거의 1년이나 소요되었고 촬영하는데 다시 6개월이 소요되었다. 모스크바 거리의 전차 역시 영국에서 만들어져 스페인으로 옮겨졌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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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세트로 지어졌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마드리드와 이렇게 가까운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지금 가봐도 흔적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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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데모를 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떼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바로 ‘인터내셜가’이다. 이 노래가 영화에 처음 소개되는 영상은 코마로프스키가 라라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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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차원에서 소개하면, 아마도 세상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이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 세계에 퍼진 적색혁명 – 소련은 물론 스페인 내전, 마오의 중국까지…


우습게도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소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프랑스인이 작곡을 하고 벨기에 출신이 작사를 붙였다. (당시의 프랑스 파리는 이른바 ‘파리 코뮌’이 한창이던 때인지라 빨갱이들이 득실득실하던 곳이다) 그것도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즉석에서… (물론 이후에 여러 가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왕 내친김에 좀 더 심화 수업을 해보자. 시위대를 진압하는 말을 탄 병사들은 당시 최고의 용감무쌍한 병사들로 각광받던 코사크 기병대이다.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로는 발음이 코자크에 가깝다)


코사크 기병대의 등장은 13세기 우크라이나를 지배했던 몽골이 물러난 후 14세기 즈음이다. (알고 있겠지만 몽골은 기병대가 천하무적이었다. 아마도 몽골군에게서 기병 전술을 배웠을 지도…)


나중에 지바고의 아내가 되는 토냐 Tonya 역할을 맡은 배우는 위대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의 딸 제랄딘 채플린 Geraldine Chaplin이다. 촬영 당시 20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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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가 코마로프스키에게 총을 쏘고 결혼도 하고, 지바고 역시 토냐와 결혼한 몸이었지만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시베리아 벌판에서 의사와 간호사로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또 헤어지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온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너무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비밀경찰에 근무하는 - 당시에는 아직 KGB가 생기기 전이니까 NKVD(내무위원회) 요원으로 있는 배다른 형의 도움으로 모스크바를 떠난다. 그것도 엄동설한 겨울에…


지바고의 가족이 목적지로 삼은 곳은 유리아틴이다. 하지만 유리아틴은 러시아에 없는 지명이다. 즉, 소설 속에서 작가가 만든 가상의 도시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파스테르나크가 1916년 몇 달 동안 살았던 파르마(Perm, 러시아어 페름)를 모델로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지바고가 죽치던 유리아틴의 도서관은 파르마의 푸시킨 도서관이다. (Pushkin Library)


파르마는 모스크바에서 1,5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우랄 산맥과는 거리가 좀 있는 곳이다. 도서관의 모습도 얼추 유리아틴의 도서관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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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라라는 파스테르나크가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여인, 그의 정부 올가 이빈스카이(Olga Ivinskaia, 시인이자 작가)를 모델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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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의 죽음 후 공개된 일련의 러브레터, 원고, 시 등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떨어져 있었는데, 그는 트빌리시 Tblisi에서 그녀는 레닌그라드 Leningrad에 살았다.


그의 편지는 올가가 죽은 후에 발견되었다. 편지에는 두 사람이 같이 있고 싶다는 절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리고 파스테르나크는 그녀가 자신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지바고가 타고 가는 열차에서 보는 설원의 모습은 지바고의 눈에도 환상적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도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광경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겨울이면 더 생각난다. 아무튼 열차에서 내린 지바고는 멀리 보이는 산맥을 보고 ‘저기가 우랄산맥이다’라고 하지만…


여기서부터 영화의 촬영지는 몇 군데 옮겨가면서 짜깁기를 하게 된다.


촬영을 위해 옮겨 간 곳은 안달루시아보다는 훨씬 북쪽 마드리드 세트장에서도 북쪽으로 더 올라가 소리아 (Soria) 부근이었다. 이곳은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산맥이 지척이다. 아래 지도에 세 곳의 위치를 표시해 보았다. (지도의 파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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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리아 부근도 한 곳이 아니라 이곳저곳 세 군데나 옮기면서 촬영했다. 이곳 소리아 인근의 San Leonardo de Yagüe 마을에는 En recuerdo de "Doctor Zhivago"(닥터 지바고를 기억하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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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아 남쪽에 있는 철도 박물관에는 이렇게 촬영 당시 사용했던 열차도 전시도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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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바고 패밀리가 내린 기차역 유리아틴(Yuriatin) 역 촬영은 남쪽에 있는 그라나다 부근에 있는 과딕스 역(Guadix Station)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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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얼음 오두막은 소리아의 마드리드에서 북동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산악지대 칸딜리체라Candilichera. 근처에 세트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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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얼어붙은 모습은 하얀색 밀랍으로 그리고 대리석 채석장에서 가져온 돌먼지로 눈을 연출했다. 물론 지금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 위의 지도에서 소리아의 오른쪽에 있는 곳이다. (영화 화면을 자세히 보면 밀랍으로 만든 느낌이 물씬 난다)


소리아 지역은 마드리드 세트장을 제외하고 영화 촬영을 가장 많이 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 지 2015년 소리아 시에서는 영화 개봉 50주년을 맞이해서 기념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ktA2k2PFM

하지만 당시 이곳에서도 눈은 오지 않았고 이미 내린 눈도 녹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소련의 눈 덮인 동토를 연출할 수가 없었다. (탈영병이 된 지바고가 눈길을 걸어 유리아틴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과 라라를 만나러 가는 장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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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모든 장비를 들고 핀란드 조엔수(Joensuu) 마을로 가서 촬영해야만 했다. 조엔수 마을은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 400마일 떨어진 당시 인구 2만 명의 마을이었다. 실제 러시아 국경에서 75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다.


영화의 촬영은 이곳 근처에 있는 피하셀카 호수 Lake Pyhaselk와 철길, 골리 Koli 근처의 숲 등에서 촬영했다. 아래 지도에서 보이는 오른쪽의 선은 러시아와의 국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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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열차 장면을 찍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바고 패밀리가 열차를 타고 유리아틴 Yuriatin으로 가면서 보는 설경 장면은 캐나다 캘거리 킥킹 호스 패스 근처의(Kicking Horse Pass in Canada's Calgary) 장엄한 로키산맥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눈으로 덮인 설경은 캐나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에서 찍었다. 이곳은 여름에도 설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캐나다 최고의 명승지 밴프국립공원에 속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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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토냐가 프랑스 파리의 유학을 마치고 닥터 지바고와 해후하는 장면을 찍은 곳은 바로 이곳에 있는 레이크 루이스 역에서 촬영했다. 아직도 산악 열차가 달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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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신의 촬영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있는 알데다빌라 댐(Aldeadávila Dam)에서 촬영했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포르투갈 강가에서 촬영되어 스페인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댐 중앙으로 국경선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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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것이 있어 상식적인 내용 하나 더 소개하고 마치자.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코마로프스키는 갑자기 라라에게 나타나 착한 놈 행세를 하며 라라를 데리고 – 거의 고의적으로 지바고를 떼어놓고 극동으로 간다. 그는 극동의 공화국 법무장관 신분이다.


극동 공화국, 이게 무슨 나라지? 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이런 나라가 실제로 있었다.


당시 러시아 서부에서 치열하게 내전(적백, 볼셰비키와 맨세비키)을 치르고 있던 볼셰비키 적군 세력은 일본 제국이 시베리아 극동 지방 진출을 노골화하자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임시로 완충국을 만들었다.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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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Far Eastern Republic이라고 하는데 일명 치타 공화국(Chita Republic)이라고도 하는 볼셰비키 세력의 괴뢰 공화국이다. 당시 이곳에는 미국 군대까지 주둔하고 있었지만 곧 철수했고, 일본은 약 7만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었다.


한때 이곳에는 백군 세력도 ‘프리아무르’ 임시정부를 세우기도 했지만 볼셰비키 빨치산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곧 붕괴되었다. 그리고 일본군도 현지의 빨치산이 계속 괴롭히자 결국 1922년 말에 블라디보스토크를 마지막으로 철군하고 말았다.


일본군이 철수하자마자 극동 공화국은 모스크바에 합병을 청원하는 모양새로 소비에트연방에 합병되었다. 따라서 1920년 4월부터 1922년 11월까지 단지 2년 7개월간 존재했던 공화국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던 러시아 부르주아 세력들은 레닌 정부가 들어서자 대부분 중국(상하이)으로 건너가 오늘날 상하이탄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영화 <색, 계>에 러시아인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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