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궁극의 결말
본드가 말한 ‘Tempus fugit’는 라티어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Time flies” 즉,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의미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속담으로 사용된다. 또 다른 용도로 “Tempus fugit Amor manet” 즉, ‘시간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로 쓰인다.
아래의 사진과 같이 모래시계 혹은 해 시계에서 자주 발견되는 말이기도 하고 연인들의 타투에서도 자주 애용된다.
한편 런던에서는 C의 감시망을 와해시키기 위해 M은 Q, 와 머니페니를 데리고 안전가옥 은신처로 피하던 중 스펙터 조직원들의 기습을 받는다.
안전가옥에서 합류한 본드와 마들렌은 스펙터의 수장 블로펠드가 죽었다고 보고하지만 C가 만든 세계 감시 시스템 발동 저지를 위해 본드와 M은 C를 만나러 가고 Q는 해킹을 통해 감시 시스템을 중지시킨다.
하지만 마들렌은 자신은 더 이상 합류할 수 없다고 하며 작별 인사를 고하고 떠난다. 그러나 본드와 M이 탄 차량은 공격을 당하고 정신을 잃은 본드는 납치되고 M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여 Q와 합류한다.
정신을 차린 본드는 폐허로 변한 철거 직전의 M16 건물로 끌려왔으나 탈출에 성공한 후 적을 찾아 건물을 수색하다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오버하우저와 만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생각에는 엔딩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가 망작이 되었다. 개연성이 부족해도 너무 없다. 하나하나 생각나는 대로 짚어보면,
우선 그 엄청난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오버하우저의 존재. 그리고 폭발물에 몸을 묶인 채 나타난 마들렌을 구하는 내용도 마치 3류 액션물을 보는 것 같았다.
또 하나 지적질 하고 싶은 것은 오버하우저가 타고 있던 헬기가 본드가 쏜 권총에 맞아 추락하는 장면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라이플도 아니고 권총이라니… 그리고 헬기에서 살아남아 탈출을 위해 바닥을 기는 오버하우저의 모습 역시 참으로 가관이다.
우리가 지난 007 시리즈 영화에서 만났던 그 수많은 악당들의 보스 중의 보스 스펙터의 수장이라면 바닥을 엉금엉금 기는 모습보다 더 장엄하고 긴박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도 엄청난 조직의 수장이 과거 본드와의 지극히 개인적인 악연 때문에 괴롭혔던 지난 사건들을 전부 기획하고 조정했다는 것도 참으로 개연성 없이 터무니없는 설정이었다.
아무튼 한스 오버하우저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발츠(Christoph Waltz)는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으로서는 꽤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악역을 맡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사실 훌륭한 배우임에 틀림없다.
특히 쿠엔틴 바란티노가 연출한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년)’에서 보여준 독일군 장교의 모습은 정말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연기였다. (그는 이 역할 하나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비롯해 무려 27개의 상을 받았다)
크리스포퍼 발츠가 개연성 없는 각본으로 손해를 보았다면 멍청한 눈빛 하나로 연기력을 뽐낸 마들렌 스완 역의 레아 세두(Lea Seydoux)는 사실 출연한 영화마다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를 처음 만난 영화 역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년)’이었다.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그냥 ‘어!’하는 정도였으나 2011년에 출연한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단 몇 분 아니 단 몇 초의 등장만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워킹과 표정 연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녀를 알아가던 중에 알게 된 그녀의 개인사와 집안 얘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한 마디로 엄청난 금수저 출신이다.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사(1898년 설립)인 프랑스의 고몽(Gaumont) 영화사 회장의 증손녀이고 프랑스의 거대 미디어 기업 파테(Pathe) 회장의 손녀인 것이다.
패밀리의 재산을 전부 합치면 한화로 7조 원이 넘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연기자의 길을 택했고 그녀가 연기자로 성장하는 동안 패밀리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았다.
영어로 연기를 하지만 그녀의 프랑스어 영화도 정말 볼만한 것이 많다. 특히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신들린 연기는 뭐라고 탓할 것이 없다.
그녀가 007 시리즈 영화 25탄 ‘No Time to Die’의 주인공으로 다시 나온다는 본드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된 것도 아마 이 영화에서 보여준 그녀의 묘한 매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이 영화에서 건진 것이라고는 그녀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