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타임 투다이>의 숨겨진 이야기

1. 일본 출신 감독이 망친 영화

by 발길 가는대로

새로운 007 영화는 <스펙터>가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하자 2916년부터 기획에 착수했다.


이미 약속된 대로 새로운 007 영화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될 것이 확실했고, 연속으로 2편(스카이폴과 스펙트)을 감독했던 샘 멘데스의 하차 역시 예정되어 있었다.


감독을 선임하는 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크리스토퍼 놀란, 얀 데망지, 데이비드 매켄지, 데니스 빌뇌브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두 무산되었다.


2918년 2월, 대니 보일 감독이 유력하게 거론되었고 시나리오 검토에 들어갔지만 작가들과의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대니 보일 역시 하차하고 말았다. 9월이 되자 캐리 조지 후쿠나가(Cary Joji Fukunaga) 감독이 선임되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알려졌다. 사실 그는 <스펙터>의 감독으로도 유력하게 검토되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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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계 미국인 모친을 둔 그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출생이다. 그의 부친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수용소에서 태어난 일본계 3세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자 그는 대학의 역사 교수인 어머니와 함께 자라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던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정치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고자 뉴욕 대학교 티시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그는 단편 영화, TV 시리즈 드라마, <제인 에어> 등의 작품을 연출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굳혔다.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채 <본드 25>라는 가제로 대본 작업이 새로 합류한 후쿠나가 감독과 함께 진행되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가 <스펙터>와 이어지는 연속 편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다니엘 크레이그(제임스 본드)를 어떻게 퇴장시킬 것인지 등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인이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그를 놓치기 싫었던 MGM은 그에게 1억 달러를 제안하며 은퇴를 철회할 것을 종용했다.


<스펙터>와의 연결성을 위해 기존의 출연진들이 대폭으로 다시 캐스팅되었다. 벤 휘쇼, 나오미 해리스, 랄프 파인즈가 출연하고 레아 세두가 역대 본드걸 중에서 최초로 연속으로 출연하여 마들린 스완 역을 맡았다.


2019년 3월, 노르웨이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건 배럴(gun barrel) 시퀀스가 여느 시리즈 영화와 달랐다. 대부분의 시리즈 영화는 메인 스토리 시작 직전, 즉 프리 오프닝 시퀀스 후에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MGM의 사자의 울부짖음에서 바로 화면이 바뀌며 첫 장면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영상으로 확인하면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wcMIhDcX3Q&list=RDJwcMIhDcX3Q&start_radio=1

보다시피 본드가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고 있다. 그리고 본드가 총을 쏘는 순간 타깃에 흐르는 붉은 피도 없다. 아마도 본드의 운명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도 본드의 건 배럴은 다시 한번 삽입되었다. 이는 제임스 본드의 마지막이라는 점과 함께 다니엘 크레이그의 퇴장에 대한 헌사라고 한다. 이 역시 영상으로 확인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j5rVFwwbAh0


<마들렌의 기억>

황량한 설원에 일본식 노가쿠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멀리 보이는 오두막을 향해 설원을 걷기 시작하고 오두막 안에는 어린 마들렌 스완(Madleine Swan)이 술에 절어 소파에 누워있는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 (영화 초장부터 일본색이 드러나는 것 같아 거슬리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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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딸에게 아버지의 직업이 의사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무슨 까닭인지 냉장고 안에는 권총이 숨겨져 있고 마들렌은 창가에 다가온 가면을 쓴 남자 류티퍼 사핀(Lyutsifer Safin)을 만나 엄마를 부르면서 2층 침대 밑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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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의 엄마는 사핀의 총에 맞아 죽고 침대에 숨었던 마들렌이 사핀을 향해 총을 난사한 후 밖으로 끌고 나오지만 사핀은 죽지 않았고 (아마도 방탄조끼를 입은 듯) 소스라치게 놀란 마들렌은 얼어붙은 호수 위로 도망간다. (아래 사진은 총을 맞았는지 가면이 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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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오두막과 호수 장면의 촬영은 두 가지 설이 있었다. 하나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가까운 Nittedal에 있는 Langevann 호수에서 촬영했다는 것과 영국의 Windsor Crown Estate의 Swinley Forest에서 촬영했다는 설이 있었다.


하지만 오두막은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훗날 노르웨이 정부는 이 영화의 촬영에 협조하기 위해 4,700만 크로네(약 400만 파운드)의 세금 감면 혜택을 주었다고 발표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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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핀이 이들을 찾아온 이유는 마들렌의 부친 Mr. 화이트가 자신의 가족을 죽였기 때문에 복수하러 온 것이었다. 암호명 ‘펠리 킹’으로 불리던 Mr. 화이트는 전작인 ‘스펙터’에서 조직의 수장 브로펠드에 의해 탈륨에 중독되었다가 본드를 만나자 본드의 총으로 자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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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Mr. 화이트에 대해 정리하고 가자. 악당이긴 하지만 사랑스러운 본드의 애인 마들렌의 부친이니까… Mr. 화이트는 대니얼 크레이그의 신작 <카지노 로얄>에서부터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돈세탁을 원하는 아프리카의 테러리스트 스티븐 오반노에게 르 쉬프레를 소개해주고 그가 카지노의 포커 게임에서 돈을 잃자 본드를 구하고 총으로 죽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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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리즈 2편 <퀀텀 오브 솔러스>에도 등장한다. 그는 이탈리아 코모 호수가의 별장에 은거하고 있다가 본드에게 다리에 총을 맞고 포로가 되었다가 심문을 받던 중에 탈출하고 얼마 후 도미닉이 주선한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하우스 모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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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에서 그는 조직이 여성과 아이들을 인신매매하고 또 선량한 사람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하자 조직을 배신했던 것이다. 그는 본드에게 자신의 딸 마들렌을 부탁했고 'L'American'을 알려줌으로써 딸에게 최선을 다한 부친으로 남았다.


마들렌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전작 <스펙터>에서 그의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것은 어린 마들렌과 함께한 사진도 있었고 모로코 탕헤르 'L'American'에 있는 비밀의 방 벽에 도배된 그녀의 사진들이 이를 중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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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본드는 마들렌과 함께 이탈리아의 마테라(Matera)로 향했다. 그는 마들렌의 권유로 그의 옛 연인 베스퍼 린드의 무덤을 찾아간 것이다.


마들렌이 물에 빠진 호수에서 건져지는 장면에 이어 물에서 솟아올라 헤엄치던 장면을 촬영한 곳과 본드의 수영복 입은 장면은 이탈리아 바실리카의 Maratea 해안가에서 촬영했다.


이후 1987년형 애스턴 마틴 DB5를 타고 두 사람은 멋진 해안가 절벽 도로를 드라이빙한다. 이곳의 촬영지는 마라테아에서 샤프리(Sapri)까지 이어지는 SS18 도로이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Via Bruno Buozzi 143에서 경사 도로를 올라가는 Palazzo del Duca Matera에 있는 빌라형 고급 호텔에 도착한다. 두 사람이 묵는 곳은 Bella Vista holiday hou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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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마저도 영화의 장면과 같은 곳이 아니다.


영화에서 호텔 룸은 세트장이며 호텔의 이곳저곳은 Palazzo Lucareschi와 Holiday House Bella Vista 등에서 나누어 촬영했고 세트장은 룸에서 보이는 뒷배경을 촬영하기 위해 Piazzetta Pascoli의 높은 언덕에 만들었다. 아래 사진은 세트를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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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라의 특징은 부드러운 화산석에 만들어진 동굴형 집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많은 영화의 촬영지가 된 곳이다. 2004년 맬 깁슨 주연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6년 리메이커 된 영화 ‘오맨’, 2016년의 ‘벤허’ 등에서 예루살렘으로 촬영된 곳이기도 한다.


아래 사진과 같이 본드가 애스턴 마틴 DB5를 발렛 시키는 곳은 Via Bruno Buozzi 143에 있는 Sano 143이라는 레스토랑 앞이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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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기념물인 이곳은 마침 마을 주민들이 무엇인가를 태우고 있었다. 본드의 질문에 포터는 “비밀, 소원, 잊고 싶은 과거들… 옛 것을 버리고 새것을 맞는 풍습”이라고 말해준다.


격렬한 섹스가 끝난 후 본드는 오늘 바다에서 무엇을 생각했느냐고 묻자 마들렌은 베스퍼 얘기를 해주면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마들렌은 숙소의 메모지에 “가면을 쓴 남자” (L’homme masque: 불어, 철가면)를 쓴 다음 발코니에서 불에 태운다. 영화에서 마들렌의 국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옥스퍼드와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한 의사 출신이다. 마들렌역을 맡은 레아 세두는(Léa Seydoux) 프랑스 국적이니 그녀도 프랑스 국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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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 가면은 한정판으로 ebay에서 450달러 정도에 팔고 있다. 방금 캡처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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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본드는 마들렌을 침대에 두고 혼자서 마을 뒤 언덕에 있는 불과 24세에 죽은 베스퍼 린드의 묘지를 찾아간다. 묘비에는 1983-2006이라고 적혀 있다. (이 역을 맡은 에바 그린은 1980년생이지만…) ‘카지노 로얄’이 2006년 개봉했으니 고증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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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는 그녀의 묘지 앞에서 한동안 침묵하다가 ‘보고 싶다’라고 말하며 “forgive Me”라고 쓴 호텔의 메모지를 불에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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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묘지 앞에 놓인 꽃다발 속에서 한 장의 명함을 발견한다. 명함에는 선명하게 스펙터 조직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 폭발이 잃어나고 본드는 쓰러지고 만다.


부상을 입은 체 깨어난 본드는 마들렌을 찾아가는 중에 오토바이와 차를 탄 괴한들의 공격을 받는다. 죽어가던 조직원의 입에서 “마들렌은 스펙터의 딸”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기에 가까운 오토바이 묘기를 부리며 호텔로 돌아온 본드는 이미 짐을 꾸리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마들렌에게 “그들이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추궁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신기의 묘기를 부리는 다리는 Matera에 있는 다리가 아니라 Gravina in Puglia에 있는 다리에서 촬영했다. 마테라에서 서북쪽으로 28km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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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떠나자마자 다시 괴한들이 차와 오토바이로 본드를 추적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마들렌의 핸드폰으로 스펙터의 수장 블로펠트의 음성이 나온다. “너의 희생은 우리의 영광이 될 거야. 아마도 부친이 자랑스러워할 것이야.” 이는 마치 마들렌이 자신에게 본드의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본드의 차량은 괴한들의 차량에 포위되어 공격을 받지만 다행스럽게도 방탄유리로 인해 적의 공격을 막아낸다. 5분 정도 이어지는 이 장면은 글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그녀와 헤어지니까...


본드카의 위력을 영상으로 감상하자. ‘본드 카’의 위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zRn3mwbpU


본드가 레인지로버와 충돌한 후 본드카에 장치된 멋진 장비를 이용하여 포위한 적들과 대항하는 이 장면은 Chiesa di San Giovanni Battista에 있는 Piazza San Giovanni에서 촬영했다.


마들렌을 기차역으로 데리고 온 본드는 “이게 끝인가요?”라고 묻는 마들렌에게 “다시는 날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마들렌을 기차에 태우고 헤어진다. 이때 마들렌은 순간적으로 손을 배에 갖다 댄다. (임신한 사실의 복선?)


본드가 마들렌을 떠나보내는 기차역은 숙소가 있는 Matera 기차역이 아니라 거의 200km 떨어진 Sapri의 기차역이다. 이곳은 마들렌이 수영하던 곳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스펙터의 추적이 무서웠는지 참으로 먼 곳까지 가서 기차에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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