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로렌스> 숨겨진 이야기

1. 퇴역 군인의 자서전

by 발길 가는대로

1922년 7월 22일, 로렌스(T. E. Lawrence1888-1935년 향년 46)는 쇼(George Bernard Shaw, 영국계 아일랜드인 극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의 내용은 인쇄를 마쳤지만 아직 출간을 하지 않은 자신의 글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을 당신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편지의 내용에는 책을 쓰는 동안 로렌스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자신의 양면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아닙니다. 지난 30년 동안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나이를 성공적으로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학을 전공한 역사학도이기 때문에 역사학의 기초인 원본 문서를 숭배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전쟁 중에 저는 아랍의 군대에서 유일한 문맹자였지만 아라비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적인 의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조지 버나드 쇼는 로렌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로렌스가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쓸 때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고 로렌스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도 훌륭하게 옹호했다.


로렌스가 책의 내용을 처음으로 완성했을 때는 1922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연 자신의 글이 책으로 출판하여 대중에게 소개할만한 책이 되는지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비를 들여 책을 인쇄하기로 했다.


책의 표지는 아래와 같다. 전설적인 아랍의 쌍둥이 칼의 도안에 “the sword also means clean-ness + death”(칼은 깨끗함과 동시에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글을 넣었다. 이 인쇄물은 1926년에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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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2월에 정식으로 책의 제목이 정해졌다.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은 1927년 미국 시장에 발간될 때는 “사막의 반란”(Revolt in the Desert)으로 제목이 변경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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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은 성경 잠언집의 문구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잠언 9:1)”에서 따온 것이었다.


로렌스가 이렇게 책 제목을 정한 이유는 본래 자신의 회고록보다 자신이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여행했던 아랍의 7개 도시를 여행하고 느낀 학술서로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록은 그의 보관 실수로 인해 파기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남은 자료를 보충하여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으나 초기의 원고 역시 기차 안에서 분실되었기 때문에 그는 세 번이나 다시 써야만 했다. 1919년 2월 그가 잃어버린 분량은 10권의 책 중에서 마지막 두 권의 책을 제외하고 모두 잃어버렸다.


1920년 초부터 그가 기억을 되살려 3개월 만에 최종적으로 완성한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은 1916~1918년 ‘아랍의 반란’ 당시 로렌스가 요르단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경험을 자전적으로 묘사했다.


책이 발간된 후 1922년 중반부터 로렌스는 심각한 정신적 혼란감을 겪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1922년 발행된 초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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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의 정신 이상 증세는 지난 3년간의 문학적 노력으로 인한 피로감뿐만 아니라 아랍의 정세와 동지들에 대한 환멸을 느낀 상태에서 본인은 “국가의 영웅”으로 추대되어 대중의 시선을 받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같은 PTSD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1922년 8월 로렌스는 존 흄 로스(John Hume Ross)라는 가명으로 영국 공군 신병 모집 센터에 지원서를 내고 재입대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는 1923년 2월 그의 신원이 공개되어 영국 공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공군에서 쫓겨난 로렌스는 그의 이름을 다시 T.E 쇼(Thomas Edward show)로 바꾸어 영국 왕립 전차 군단에 입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영국 공군(RAF, Royal Air Force)에 재입대하기를 반복적으로 청원했고 1925년 8월 마침내 그의 입대가 받아들여졌다.


1926년, 1927년 그가 쓴 책이 영국과 미국에서 발간되자 그는 책의 홍보에 동원되어 언론과의 인터뷰가 지속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그는 영국령 인도(현재의 파키스탄) 카라치(Karachi )와 미람샤( Miramshah ) 기지에 배치되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본래 스파이였다”라는 이상한 소문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그는 결국 영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집에서 근무지인 보딩턴 캠프(Bovington Camp) 기지까지 그가 애용하던 모터사이클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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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말 로렌스는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 부제 “A Triumph”라는 제목으로 구독자 특별 에디션을 200부 한정 인쇄했다.


당대의 화가 몇몇이 삽화를 그려 넣었고 약 25% 정도의 내용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로렌스는 이로 인해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책의 판매 가격은 제작비의 1/3 정도였고 실제로 책값을 받은 경우도 별로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이 아랍의 반란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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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일반 대중에게 판매하는 버전으로 미국판 “사막에서의 반란”을 출간하기 위해 50%를 삭제한 약 13만 단어의 작품을 출간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비평가 모두로부터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2022년 마지막으로 발간된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에는 삭제되었던 아래의 내용과 같은 챕터가 삽입되었다.


“아랍 전선에서의 노력에 대해 저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각은 그 후 자치권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통해 아랍인들이 우리를 위해 싸우도록 했습니다. 아랍인들은 제도가 아닌 사람을 믿습니다. 그들은 제 안에서 영국 정부의 대리인을 보았고, 영국 정부의 서면 약속에 대한 지지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모에 가담해야 했고, 제 말의 가치에 따라 그들의 보상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2년간의 협력 관계 속에서 그들은 저를 믿고 저와 같은 정부를 성실하게 생각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좋은 일을 해냈기를 바라지만, 물론 우리가 함께 한 일에 자부심을 느끼기보다는 끊임없이 그리고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로렌스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수시로 버나드 쇼 부부를 방문했으며, 두 사람은 수년 동안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이러한 친밀한 관계로 인해 훗날 로렌스가 죽었을 때 쇼는 여러 차례 로렌스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설명해야만 했다.


당시 로렌스의 거주지는 도싯(Dorset) 주의 웨어햄(Wareham) 근처 외딴곳에 있는 작은 전원주택인 클라우즈 힐(Clouds Hill)에 살았다. 이곳은 그가 복무하던 영국 육군 탱크 부대인 보빙턴 캠프(Bovington Camp)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조지 버나드 쇼의 거주지는 하트퍼드셔(Hertfordshire) 주의 아이엇 세인트 로렌스(Ayot St Lawrence)라는 마을에 있는 쇼스 코너(Shaw's Corner)라는 이름의 집에서 190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 이 집은 현재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관리하는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구글맵으로 두 사람의 집과 거리를 측정해 보았다. 거의 220km 거리에 자동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런던에 가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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