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로렌스> 숨겨진 이야기

3. 영화와 실제 사건

by 발길 가는대로

1915년 10월 24일, 맥마흔이 후세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고의로 애매모호한 문장으로 가득 차 있어 사실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의 편지에는 시리아 동쪽의 도시들은 포함하고 있었지만 서쪽의 애매모호한 지역은 언급하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 정부 고위 외교관의 서명이 든 편지를 받은 후세인 왕은 매우 고무되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영국 정부에서 파견되어 온 로렌스가 함께 하고 있었다.


아래 지도는 로렌스가 활동했던 지역을 연도별로 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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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가 죽은 후 27년이 지나 제작된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는 로렌스가 집에서 나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해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장례식을 하던 장면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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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의 장례식이 거행된 후 로렌스의 흉상을 보고 있던 남자가 곁에 있던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특이한 사람이었죠.” 그러자 신부님은 “여기에 있을 만큼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요?”하고 묻는다.


장면이 바뀌어 카이로에 있던 로렌스 중위는 사령관의 명으로 정보부의 명령으로 사막에 있는 파이잘 왕자를 찾아간다.


사실 영화의 내용과 실제 내용은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가상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었다. 예를 들면 영화 속의 아카바 전투 장면은 실제의 전투와 많이 다른 모습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다시피 아카바(Aquaba)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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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화 속에서 로렌스를 도우는 사람은 브라이튼 대령 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시릴 윌슨 대령, 스튜어트 뉴콤, 피어스 조이스 등 수많은 영국 장교들이 로렌스보다 더 일찍 아라비아에서 활동했다.


또한 영화에는 로렌스가 헤자즈 철도 공격을 처음 시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기관차를 파괴하는 헤자즈 철도 공격을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로렌스가 공격하기 한 달 전인 1917년 2월 허버트 갈랜드 소령이 주도했다.


영화에서 반란을 주도하는 세력이 베두인 게릴라들로 구성된 군대로 나오지만 하셰마이트 군대의 핵심 병력은 오스만 아랍 전쟁의 포로에서 모집된 정규 아랍 군대 병력이었다.


또한 로렌스 역할을 맡은 배우 피터 오톨(Peter O'Toole)은 188cm의 장신이었지만 실제의 로렌스는 165cm의 작은 키였다.


이와 같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로렌스의 역할에 대해 가장 크게 불만을 나타낸 사람은 로렌스의 동생 A.W 로렌스 교수였다.


그는 “지혜의 일곱 기둥”의 영화화 판권을 슈피겔에 25,000파운드에 매각했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후 영화를 “가식적이고 거짓”이라며 비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실제의 로렌스가 아카바를 공격하고 철로를 공격한 시점은 1917년 9월이었다. 위의 지도에서 아카바(Aqaba)와 그 오른쪽을 지나가는 아래 지도의 철로를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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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지도는 구글맵으로 검색한 아카바에서 로렌스가 철로를 공격한 곳으로 추측되는 무다와라(Mudawara)까지의 행로를 표시한 것이다.


165km의 거리는 자동차로 2시간, 도보로 37시간 걸린다고 나온다. 물론 구글맵에서의 37시간은 쉬지 않고 걸어갈 경우의 시간이다. 로렌스가 이 죽음의 사막을 통과하는데 소요한 시간은 거의 2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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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요르단의 최남단 국경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는 무다와라는 9세기경부터 하지에서 시리아까지 연결되는 주요 기착지로 알려진 곳으로 수천 년 동안 지중해, 레반트, 아라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전통적인 무역로의 중심 역할을 했다.


로렌스는 이곳 무다와라 역과 할랏 암마르(Hallat Ammar) 역 사이의 다리를 파괴했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 군대 병력 70명이 죽었고 90여 명의 포로를 잡았다.


오스만 제국이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약 3,000km 떨어진 아라비아 반도의 메디나까지 연결하는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던 이 철로는 1차 세계 대전 중에 로렌스의 공격을 받아 79개의 다리가 파손되었다.


아카바에서 무다와라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와디 럼(Wadi Rum) 사막을 경유해야 한다. 현재 페드라에 이어 요르단의 최고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이곳 와디 럼 보호구역의 기묘한 풍경들은 그 이름조차 로렌스의 집 혹은 로렌스 온천으로 불리고 있다.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이니 아래 유튜브 영상으로 감상해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I2theVibR-g


원래 이집트 총영사로 재직 중이던 허버트 키치너(Herbert Kitchener)는 전쟁이 발발하자 1914년 11월 1일, 아랍국에 주둔하던 영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받았다.


그는 후세인에게 접촉하여 영국이 헤자즈 아랍인들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샤리프의 모든 외부 침략, 특히 오스만 제국의 독립과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전보를 수차례 교환했었다. 하지만 후세인은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이어서 1915년 7월 14일부터 1916년 3월 10일까지 헨리 맥마흔 경과 샤리프 후세인 왕자는 각각 5통과 10통의 편지가 오고 가기도 했다.


후세인 왕자는 맥마흔에게 금 5만 파운드와 무기, 탄약, 식량을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고, 우리가 가진 병력은 1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샤리프 후세인이 영국의 요청에 응한 이유 중에는 자신의 라이벌 가문의 지도자 샤리프 알리 하이다르(Sharif Ali Haidar)가 오스만 제국의 지원으로 메카의 샤리프로 추대될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실제 샤리프 후세인이 주장했던 자신의 병력은 5만 명도 되지 않았고 그나마 소총을 소유한 병력은 1만 명도 되지 않았다.


1916년 6월부터 샤리프 후세인의 두 아들 ‘알리와 파이잘’은 메디나의 오스만 제국 군대를 공격하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영국의 이집트 군대의 포병대와 합류하기 전에는 메카를 점령할 수 없었다.


아래 사진의 책자는 McMahon-Husain 서신 (McMahon-Hussein Correspondence)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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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3월 발간된 이 보고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 경(Sir Henry McMahon)과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Husain bin Ali) 사이에 오간 서신을 검토하기 위해 1939년에 구성된 위원회의 보고서이다.


이 서신들은 영국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아랍의 독립을 지지하기로 약속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포함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유명합니다. 이 논란은 이후 수십 년간 영국-아랍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렌스가 후세인 왕을 만난 시점은 1917년 1월이었다. 로렌스 이전에 영국은 이미 시릴 윌슨 대령, 피어스 조이스 대령, 로버트 갈랜드 중령 등 많은 장교를 파견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후세인 왕을 접견하고 있는 로렌스의 뒷모습이다. 그 옆의 사람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웰 토마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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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의 첫 승리로 기록되고 있는 아카바의 전투는 진작에 이곳에서 고고학을 연구하던 역사학자 거트루드 벨(Gertrude Margaret Lowthian Bell) 여사가 제공한 정보가 매우 역할을 했다.


여사는 로렌스가 태어나던 1888년부터 광범위하게 아랍 지역을 여행한아랍 정보의 보고였으며 그녀는 로렌스에게 헤자즈 철도와 네푸드 부족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던 것이다.


후세인에게 파견된 로렌스의 주요 임무는 아랍의 지도자 파이잘과 압둘라가 영국의 대 아랍 전략을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로렌스와 파이잘의 관계는 매우 돈독했지만 압둘라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랍의 동부 지역을 관장하던 압둘라의 군대는 파이잘의 군대에 비해 영국의 원조를 많이 받지 못했다.


아래 사진은 1917년 11월 아카바 인근의 로렌스 부대의 본부에서 찍은 것이다. 영국 공군 소속의 신원 미상의 비행사가 찍은 이 사진은 로렌스의 상징적인 모습을 담은 것으로 그의 사후 공개되어 경매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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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의 셋째 아들 파이잘은 아랍의 전통 의상 셰이크를 입고 이미 아랍의 문화에 동화되어 가는 로렌스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 중의 한 명으로 여겼다. 하지만 당시의 로렌스는 영국 정부가 아랍과의 약속을 깨고 이미 프랑스와 비밀 협정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15년 가을부터 이미 오스만 제국을 대신할 아랍 지역의 새로운 지도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지도는 영국의 젊은 보수당 의원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와 영국 런던에 주재하던 프랑스의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 피코였다. 이 두 사람이 절충안을 마련한 시점은 1916년 1월 3일이었다.


또한 영국은 로렌스를 후세인과 파이잘에게 파견하고 나서 1917년 11월 2일 외무부 장관 아서 벨푸어(Arthur Balfour)가 월트 로스차일드를 만나 “영국 정부는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적 고향을 팔레스타인에 수립하는 것을 적극 찬성하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제공하는 전쟁 자금을 받는 대가였다.


영국 정부의 이러한 이중 플레이의 배경에는 수에즈 운하의 확보뿐만 아니라 1908년 이란 지역에서 발견된 중동 지역의 석유 자원 확보에 있었다.


로렌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조국 영국의 사기 행각을 자신을 신뢰하는 파이잘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그의 내적 갈등을 결국 그의 PTSD로 인한 모터사이클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로렌스가 파이잘 왕자와 함께 아카바를 점령한 것은 결국 아랍 민족의 독립이 아니라 이곳을 통해 들어온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진출을 도운 셈이었고 이를 통한 아라비아의 반란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온 셈이었다. 아래 사진은 1917년 아카바에서 찍은 로렌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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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아카바는 요르단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유일한 해안도시이다. 따라서 와디 럼 보호지구와 페트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요르단을 여행하는 황금의 삼각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요르단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로렌스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해안 산책로 근처에 남아 있는 작은 돌 요새와 먼지가 쌓인 방 4개짜리 박물관 정도가 전부이다.


박물관 앞의 작은 광장에는 아카바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430피트(131미터) 높이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깃대가 있다. 이곳이 바로 1917년 7월 6일 아침 로렌스와 그의 반군들이 승리의 환호를 지르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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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의 아카바 공격은 사실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로렌스는 몇 개월 동안 병력을 규합했지만 그와 동행한 반란군의 숫자도 불과 50명 내외였던 소규모 낙타병 병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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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 점령은 팔레스타인의 오스만 군에게 가로막혀 있는 이집트의 영국군과 헤자즈 지역에서 일어난 아랍의 병력이 합류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매우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아카바는 북쪽과 동쪽이 높은 산악지대로 가로막혀 있었고 서쪽은 팔레스타인의 오스만 군, 남쪽은 홍해로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아카바의 점령은 1917년 7월 1일의 한밤중에 아카바를 수비하고 있던 아바 엘 리산의 1천여 명에 달하는 오스만 병력을 야간에 기습하는 것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로렌스의 병력은 단 2명만 전사했지만 오스만 군은 550명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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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의 이러한 업적은 20세기초 영국이 거둔 위대한 군사적 승리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특히 그의 승리는 두 번의 공격 실패로 해임당한 사령관이 교체되고 새로운 사령관 앨런비가 취임하면서 더 빛날 수 있었다.


로렌스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10월 30일 조지 5세 국왕의 부름으로 버킹엄 궁전을 방문하여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로 했으나 영국 정부가 아랍인의 독립 약속을 배신했다고 믿었던 로렌스는 기사 작위의 영광을 거절한다고 말했다.


로렌스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은 ‘잠비야(jambiya)라고 불렀다. 강철과 은으로 제작된 이 검은 1917년 7월 6일 아카바의 승리 후에 샤리프 나시르(Sherif Nasir)가 선물한 것이다. 현재 영국 육군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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