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의 숨겨진 이야기

1. 진실과 허구

by 발길 가는대로

영국 남부의 항구 도시 사우샘프턴(Southampton)은 타이타닉호의 출항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타이타닉과 관련된 흔적과 기념물 등이 있다. 이는 승무원 900명 중에서 3/4 정도가 이곳 출신이며 그들 대부분은 현장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우샘프턴에는 2012년 타이타닉의 침몰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한 박물관(SeaCity Museum)도 있고,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이곳에서 제공하는 타이타닉 트레일 지도를 받아 도시에 산재한 기념물, 랜드마크, 당시 승무원들이 살던 곳 등을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선사였던 White Star Line의 사무소인 캐넛 챔버스(Canute Chambers)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과거 사고 당시 가족들이 모여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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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의 사고 일지를 간략히 정리하면


1912년 4월 10일 12:00 영국 사우샘프턴 출발

1912년 4월 10일 18:30 프랑스 셰르부르(Cherbourg) 도착, 20:10 출발

1912년 4월 11일 11:30 아일랜드 퀸스타운(현 코브 Cobh) 도착, 13:30 출발

1912년 4월 14일 23:40 빙산 충돌

1912년 4월 15일 02:20 타이타닉 침몰 (뉴펀들랜드 남동쪽 600km 지점, 41.7325° N, 49.9469° W)


아래 사진은 사우샘프턴을 출항하는 타이타닉의 최후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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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모두 아일랜드 출신의 예수회 신부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프랜시스 브라운(Francis Browne)이 촬영한 것이다. 그는 선물 받은 구간 티켓으로 사우샘프턴에서 승선했다가 퀸스타운에서 하선하여 목숨을 구했다. 1등석 승객 전용 헬스장이 있었다는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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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후 헬스 시설.jpg



사실 타이타닉의 침몰 사건에서 생존자와 사망자 숫자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당시의 선박 관리 시스템상 탑승자 수부터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 상무성의 보고서에 따르면,


탑승자 수는 2,224명에서 2,240명,

사망자 수는 1,500명에서 1,517명,

생존자 수는 705명에서 712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카르파티아호(Carpathia)는 1912년 4월 11일 뉴욕을 출항하여 피우메(Fiume, 현재의 크로아티아 리예카)를 향해 대서양을 항해 중이었다.


4월 15일 00시 20분경 타이타닉의 조난 신호를 받은 후 카르파티아의 선장 로스트론(Arthur Rostron)은 즉시 항로를 변경하고 조난 현장으로 속도를 높였다. (약 58마일, 10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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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파티아가 도착했을 때는 타이타닉이 침몰한 지 2시간이 지난 03시 30분이었다. 700명 이상의 승객(705명~712명을 구한 후 본래의 목적지를 변경하고 항로를 뉴욕으로 돌렸다.

구조 승객.jpg 구조 당시의 승객 모습

4월 17일 뉴욕항 인근에 도착할 무렵 미 해군 소속 순양함 USS 체스터(USS Chester)가 카르파티아를 호위 인도하여 4월 18일 저녁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타이타닉이 원래 입항하려던 화이트 스타 라인 전용 터미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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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화배우 도로시 깁슨(Dorothy Gibson 1889-1946년, 향년 56세)은 1912년 타이타닉(Titanic)이 침몰한 사건에서 살아남은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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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 시대 할리우드의 인기 스타였던 그녀는 6주간의 휴가를 이탈리아에서 보낸 후 프랑스의 셰르부르(Cherbourg)항에서 승선한 1등석 승객이었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 그녀는 동료 2명과 함께 구명보트 #7을 타고 탈출할 수 있었다. 조선 카르파티아호(Carpathia)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도로시는 매니저의 설득으로 침몰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제목이 <세이브 프롬 더 타이타닉 Saved From the Titanic>인 러닝 타임 10분짜리 영화에서 그녀는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살려 각본도 썼다.


또한 그녀는 영화 촬영 시 타이타닉 호에서 입었던 것과 같은 옷, 즉 카디건과 폴로 코트를 입은 흰색 실크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다.


1912년 5월 16일 개봉된 이 무성 영화는 실제 생존자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예상외로 크게 흥행에 성공했지만 스튜디오의 화재로 인해 필름이 유실되어 몇 장의 홍보용 스틸 사진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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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깁슨의 후반 인생이 이채롭다. 영화의 흥행과 달리 비극적인 사건을 상업적 흥행에 이용했다는 비난이 거세진 탓으로 그녀는 영화계에서 조기 은퇴하고 말았던 것이다.


1년 후 그녀는 뉴욕의 고속도로에서 보행자를 치어 사망하게 했는데 법정 소송 과정 중에 죽은 사람이 그녀의 정부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밝혀졌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뉴욕을 떠나 파리로 이주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파리에서 보냈다. 이 무렵의 그녀는 나치에 동조한 탓으로 전쟁 후 심한 의혹을 받고 있던 중 1946년 머물고 있던 호텔의 아파트에서 의문사(뇌졸중)로 사망했다.


도로리 깁슨의 영화 이후 타이타닉의 침몰에 관련된 이야기는 꾸준하게 TV 드라마, 연극, 영화로 10여 편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1997년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 개봉되어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지는 최고 흥행의 영화 소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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