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임스 카메론의 열정
제임스 카메론(James Francis Cameron 1954년생)은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1년 다닌 후 트럭커, 청소부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1978년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을 만나 결혼까지 했다.
술과 대마초, LSD에 젖어 살던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1977에 개봉된 <스타워즈>였다. 그는 자신의 진로를 영화 산업으로 정했던 것이다.
그는 1960년대 어린 시절을 캐나다 온타리오주 내륙에서 자랐지만 해양 탐사에 대한 꿈과 열정은 대단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보았던 공상 과학소설을 읽고 미지의 세계에 흥미를 가졌던 것이다.
14세가 되었을 때 토론토에 있는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을 방문하여 수중 서식지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신비로운 수중의 세계에 감동한 그는 자신만의 수중 탐사기를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를 갖고 전시회의 설계자인 해양 탐험가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17세가 되었을 때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 해양 탐사에 대한 꿈을 계속 키워 나갔다.
영화에 대해 독학을 하던 그는 몇 편의 공상 과학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기도 하고 1978년에는 친구의 도움으로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영화계에서 인정을 받는 계기는 1984년 직접 쓴 <터미네이트> 대본으로 영화 제작사들과 접촉하던 중 자신이 감독을 맡는 조건으로 대본료 1 달러만 받고 오리온 픽처스와 계약한 후 이 영화가 투자비의 10배가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에어리언 Aliens>, <터미네이트 2>, <트루 라이즈 True Lies>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확실하게 흥행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는 해양 탐사에 대한 꿈은 여전히 품고 있었다. 특히 해저 깊숙이 숨어있는 "난파선의 에베레스트 산" 타이타닉호에 대한 꿈은 당시에는 영화를 만들기보다 자신이 해저 깊숙이 들어가 직접 타이타닉호를 보고 싶은 열망이 더 강했다.
타이타닉 난파선은 해저 수심 3,800m 지점에 숨어 있었다. 해수면 기압의 380배에 달하는 수압을 이겨낼 기술적인 잠수정이 필요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조차 어려운 사정이었다.
1985년, 마침내 미국의 해양학자 로버트 발라드(Robert Ballard)가 이끄는 탐사팀이 타이타닉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위치만 확인했을 뿐 기술적인 문제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1987년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러시아가 제작한 미르(Mir) 잠수정이 해저 6,000m를 잠수하는 데 성공하고 타이타닉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는 1991년 개봉한 IMAX 다큐멘터리를 통해 타이타닉 난파선을 탐사하는 과정이 소개되었던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즉시 러시아로 가서 미르 잠수정의 개발자들과 만나기 위해 러시아 해양학 연구소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잠수정의 설계는 연구소가 했지만 실제 건조는 핀란드의 라우마 레폴라(Rauma-Repola)가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엔지니어인 동생 마이클 카메론과 협력하여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특수 카메라 케이싱과 조명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했으며, 난파선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소형 원격 조종 로봇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95년 여름, 제임스 카메론은 두 대의 미르 잠수정을 운영하는 모선 '아카데믹 므스티슬라프 켈디시(Akademik Mstislav Keldysh)'호를 타고 타이타닉이 잠자고 있는 북대서양으로 가서 모두 12차례의 탐사를 진행했다.
당시 그의 촬영물은 2003년 아이맥스 다큐멘터리 <심해의 유령들 Ghosts of the Abyss>로 편집하여 세상에 공개했다.
그가 개발한 심해 원격조종 로봇의 이름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명명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타이타닉 영화를 "타이타닉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탐사를 마친 그는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는 영화의 시나리오 집필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