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화양연화> 이별의 고통
영화의 제목 <화양연화 花樣年華>는 1947년에 제작된 홍콩의 영화 <長相思>의 삽입곡 <花樣的年華>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는 유치한 흑백영화이기 때문에 다시 감상할 필요는 없지만 가사는 음미해 볼 만하다.
花樣的年華 月樣的精神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달빛과 같은 마음
冰雪樣的聰明 차가운 얼음과 같은 총명함이 있다면
美麗的生活 多情的眷屬 아름다운 생활 다정한 가족이 되어
圓滿的家庭 원만한 가정을 이루고 싶지만
驀地裏這孤島 籠罩着殘霧愁雨 외로운 이 섬은 안개와 비에 가려져고 있네
殘霧愁雨 안개처럼 퍼지는 슬픈 비처럼
이러한 그녀의 심정은 이별을 앞둔 첸부인이 입고 있는 보라색, 초록색, 파란색이 겹치는 치파오를 통해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삽입곡 냇 킹 콜의 스페인어 노래 <Quizas, Quizas, Quizas>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의 가사 역시 음미해 볼 만하다.
항상 난 그대에게 묻곤 하지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대는 늘 내게 대답합니다. 글쎄요,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날들은 지나가고 나는 절망에 빠져갑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대답합니다. 글쎄요,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지요”
라틴 탱고풍의 이 노래의 가사는 누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까? 아마도 첸부인의 심정일 것 같다. 이는 그녀가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입고 있는 초록색 치파오가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괴테는 초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항상 머무르는 곳에는 초록만 있을 뿐이다" 그녀가 초록색 치파오를 입고 처량하게 눈물지으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현실을 탓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1963년의 싱가포르와 1966년의 캄보디아로 건너간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오래된 고대 유적 돌덩이 속에 자신의 기억 - 화양연화를 묻어 버린다.
영화에서 또 프랑스의 대통령 드골이 캄보디아를 방문하자 프놈펜 시민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뜬금 없이 나온다. 이 황당한 장면은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해 자긍심을 잃어버린 홍콩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만들고 있던 시점이 1999년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먼지 낀 창틀 속에 보이는 희미한 기억"이라고 간단하게 번역되어 나온다. 하지만 자막의 중국어 원문은 꽤나 길다.
他記得那些往日褪色的歲月。그는 여전히 지난날의 퇴색한 세월을 기억한다.
彷彿隔著一塊積著灰塵的玻璃 마치 먼지가 쌓인 유리처럼
看得到,摸不著。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는
一切已經模糊不清。모든 것이 이미 모호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 역시 왕자웨이의 독특한 표현이다. '회색빛 유리'를 통해 기억과 현실의 단절 상태를 구체화하고 1960년대 홍콩에 대한 감독의 향수를 은유적 으로 표현인 것이다. 어쩌면 과거에 대한 감독 자신의 회상성 기억 조작 (Retrospective falsification)이 한몫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왕자웨이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린 시절 홍콩의 모습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워야 하고 또 정당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들이 저지른 불륜을 합리화하기 위해 서로의 무의식을 조작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엔딩의 자막 역시 복잡한 감독의 마음을 담고 있다.
那些消逝了的岁月,그 사라진 세월들은
仿佛隔着一块积着灰尘的玻璃,마치 먼지가 쌓인 유리처럼,
看得到,抓不着。보이지만 잡을 수는 없다.
他一直在怀念着过去的一切,그는 줄곧 과거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如果他能冲破那块积着灰尘的玻璃,만약 그가 먼지가 쌓인 유리를 깨뜨릴 수 있다면,
他会走回早已消逝的岁月 그는 이미 지나간 세월로 돌아갈 것이다.
사라진 세월은 두 주인공의 짧지만 깊은 정과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의미한다. - 화양연화
먼지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희미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거의 일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미 멀리 떨어져 있어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유리는 두 사람이 끝내 깨뜨리지 못한 결혼이라는 굴레와 세속적인 소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를 상징한다. 즉, 지난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상실감이 절절하게 표현하며 자신에 대한 무력감으로 괴롭지만 냉혹한 현실 속에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래 왕자웨이는 두 사람의 엔딩 장면을 베이징으로 하고 싶었지만 중국 당국에서 대본 심사를 하겠다고 하여 결국 포기하고 촬영 장소를 태국으로 옮겼다.
태국에서 촬영한 장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길거리 데이트 장면이다. 이곳은 현재 방콕의 구세관(Old Custom house) 건물의 담벼락이다.
현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음은 엔딩 장면에 나오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석벽의 구멍인데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는 것 같다.
아래 사진은 2020년 4월 18일, 영화개봉 20주년 기념 세레머니로 양조위와 장만옥이 앙코르와트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해외에서의 촬영이 길어지고 장만옥이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자 왕자웨이는 그녀의 기분을 UP 시켜준다고 태국의 호텔 방에서 양조위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찍고 편집했다.
이때 두 사람의 케미가 워낙 좋아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실제 불륜을 의심했지만 양조위의 아내 유가령(劉嘉玲 류자링)이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