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
10년이 지났다.
내가 고원원을 다시 만난 것은 비행기 안이었다. 지겨운 항공 여행 중에 우연히 모니터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영화에 그녀가 출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중합작영화 <호우시절 好雨時節, A Good Rain Knows>, 잠깐! 한중합작은 아닌 것 같다. 한국 감독 허진호가 만든 영화에 중국 배우는 고원원 한 사람만 나오고 중국에서 촬영한 것이라 착각한 것 같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그녀가 출연하고 미남 인기배우 정우성이 출연해서가 아니라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의 신파물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영화의 촬영지 중국 청뚜(成都)의 모습과 화면에 자주 나오는 메이 역할의 고원원이 일하는 곳 두보초당(杜甫草堂)이 매우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호우시절>의 줄거리는 허진호의 과거 영화들처럼 매우 간단하다.
중국 청뚜로 출장을 간 동하(정우성)는 두보초당에 갔다가 우연하게 옛 여자 친구 메이(고원원)를 만난다. 그녀는 두보초당의 전속 영어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미국 유학시절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지만 메이의 귀국 후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메이는 동하를 알아보기는 했으나 두 사람이 사귀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하는 그녀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미국의 동창생에게 연락도 해보고 더군다나 메이가 중국 사람이면 누구나 타는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억에 미국에서 메이에게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메이의 기억상실은 이유가 있었다. 쓰촨 성 대지진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죽은 남편의 참혹한 모습 때문이었던 것이다.
기억을 되살린 메이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동하는 메이에게 자전거를 선물로 보낸다. 두보초당에서 다시 자전거를 타는 메이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과거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고 심지어 일상생활의 일부 기능(자전거 타는 법)까지 잃어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메이의 자전거는 남편의 죽음 이후 멈추어 버린 자신의 삶과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녀가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남편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동하와 함께 새로운 사랑을 향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의 개봉은 2009년 10월 18일이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비행기 안에서 보았을 때는 2011년이었으니 내가 고원원의 모습을 다시 본 것은 10년 만이었다.
그녀는 예쁘게 변해 있었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여배우가 좋다. 화려하지 않지만 미소가 아름다운 얼굴에 낮은 목소리를 갖춘 여배우…
아래 유튜브 영상은 제작현장 기록 영상이다. 6분이 조금 넘지만 꽤 볼만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qh0OEvMRXo
영화의 흥행성적은 참패에 가깝다. 29만 명이었으니 투자비도 건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원원을 처음 본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중국의 김태희”
“아름답고 청순한 중국 배우”
등으로 표현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렇다. 영화에서 보여준 29살의 그녀는 <북경 자전거>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2011년 개봉한 <만추>에 출연한 탕웨이가 영화사와 김태용 감독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한 것과 비교하면 그녀의 인기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제목 <호우시절: 좋은 비는 때를 안다>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에서 따온 말이다. 764년 두보가 초당에 자리 잡은 지 2년째 되던 어느 날 봄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봄에 내리는 비가 농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지은 시이다. (그는 직접 농사를 지어 생활했다)
好雨知時節,當春乃發生。
좋은 비는 계절을 알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내린다.
隨風潛入夜,潤物細無聲。
산들바람과 함께 밤에 내리는 비는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신다.
野徑雲俱黑,江船火獨明。짙은 구름은 들판의 오솔길을 어둡게 만들고 강가에 떠있는 배의 불빛만 홀로 반짝이고 있다.
曉看紅溼處,花重錦官城。
새벽에 바라보니 비에 젖은 꽃이 만개하여 금관성 전체가 꽃으로 채워진 것 같다.
동하를 다시 만난 메이에게 동하라는 옛 친구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때를 알고 내리는 봄비’가 되었던 것 같다.
탕웨이가 김태용과 좋은 인연을 만들었듯이 고원원과 정우성이 좋은 인연을 지속하기를 얼핏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두 사람의 케미가 워낙 좋았던 탓이기도 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아련함을 느꼈고 보고나서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원원은 2012년 타이완 출신의 배우와 결혼했고 딸아이 하나를 낳고 베이징에서 잘 살고 있는 중이다.
PS.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