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1>의 숨겨진 이야기

1. 프롤로그

by 발길 가는대로

- 작가는 이 작품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마리오 푸조는 파산 상태였기 때문에 돈이 되는 책을 먼저 발간하려고 했다.


- 영화사는 이 영화를 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파라마운트는 <대부> 직전에 만든 갱스터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자 더 이상 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 어떤 감독도 이 영화를 연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을 맡기 전에 무려 12명의 감독이 연출을 포기했다.


- 무명의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다.

유일한 예외는 말론 브란도였지만 그는 흥행 성적과는 상관없는 배우였다.


- 반대 여론이 심했다.

영화가 크랭크인되기도 전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영화 제작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거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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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리오 푸조(Mario Puzo)는 1920년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1965년 당시 그는 도박 때문에 2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그는 도박빚을 갚기 위해 시놉시스 제목을 '마피아'라는 10쪽 분량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모두 8개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그러던 중에 다행히 관심을 가지는 한 출판사를 설득하여 선인세 5천 달러를 받아 작업을 시작했으나 막상 마피아나 갱스터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책이 완성될 즈음에 60쪽 정도의 원고를 완성한 다음 파라마운트와 12,500달러를 받고 판권 계약을 했다. 영화로 만들어질 경우 8만 달러를 추가로 받는 조건이었다.


1969년 대부(The Godfather)가 출간되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무려 67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2년 동안 9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일반적인 경우 원작자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지 않지만 마리아 푸조는 파라마운트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가로 10만 달러를 받는 외에 모든 경비를 영화사에서 부담한다는 조건과 흥행 수익의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1971년 3월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지만 영화 작업이 처음이었던 그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어떤 과정으로 영화화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리오 푸조와 프란시스 코플라.jpg 마리오 푸조와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

사실 당시의 파라마운트는 이 영화를 제작할 여력이 없었다. 1968년에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갱스터 영화 <The Brotherhood>를 제작했다가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1970년 거의 투자 없이 독립영화 정도의 예산으로 만든 영화 <러브스토리>가 대박을 쳤다. 220만 달러를 투자하여 무려 1억 6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것이다.


이후 저예산 영화에 재미가 들린 파라마운트는 전략을 수정하여 <러브스토리>와 같은 방식으로 <대부>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것은 소액의 제작비 투자와 유명 배우를 기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은 1939년 디트로이트 출생이다. 그도 처음에는 초기 시나리오를 보고 "꽤 사구려 물건"이라고 평가하며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의 스튜디오는 워너 브라더스에 4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고 이를 갚기 위해서 파라마운트의 제안을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동료와 가족의 조언을 받아들여 감독직을 수락하자 파라마운트는 즉시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1970년 9월 28일일 공식 발표된 그의 감독직 수락은 흥행 총수익의 6% 외에 125,000 달러를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사사건건 파라마운트와 코플라는 충돌했다. 우선 영화사는 예산 문제로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코플라는 1940년대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밖에도 촬영 장소 문제, 배우의 문제 등 모든 것이 예산과의 싸움이었다. 우선 비토 역을 맡는 배우로 영화사는 어니스트 보그닌(Ernest Borgnine)이나 대니 토마스(Danny Thomas) 중에서 선택하라고 압박했지만 코플라는 말론 브란드(Marlon Brando)를 기용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말론 브란드가 과거의 출연료에 비해 훨씬 적은 개런티를 받아야 하고 먼저 스크린 테스트를 받아야 하며 영화 촬영에 절대 지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코플라는 자신이 만드는 갱스터 영화를 조직범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토가 마이클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고 하면서 미국 자본주의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아래 사진은 1971년 4월 제작 발표회를 마치고 모인 영화 제작의 주역들이다. 좌로부터 마리오 푸조,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 로보트 에반스 파라마운트 부회장, 프로듀서 앨버트 루디이다.

제작의 주역들.jpg

코플라는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 소설책을 전부 한 장씩 뜯어내어 커다란 스케치 북에 붙인 다음 그 여백에 자시의 촬영 아이디어를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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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설 전체를 분해하여 몇 개의 스토리로 구분한 다음 같은 카테고리에 따라 약 50개의 장면으로 나누었다. 실제 촬영이 시작되자 코플라는 시나리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이 메모지를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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