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와호장룡> 사부의 원수
<와호장룡>의 소설 원작자 왕도려(王度廬)는 1909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이름 '도려'는 그의 필명이고 원래 이름은 보상(葆祥)인데 이것도 나중에 보상(葆翔)으로 개명했다.
중국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만주족인 그는 7살 때 부친이 일찍 죽은 탓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12살 이후 생계를 어느 정도 책임지느라 학업을 유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고등학교는 졸업할 수 있었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베이징대학 국문과에 몰래 청강을 하기도 하고 베이징사범대학의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틈틈이 글을 써서 신문사에 투고도 했다. 이 무렵 그가 쓰는 소설은 주로 연애소설이었다.
이후 신문사에 취직도 하고 결혼을 한 그는 지방을 떠돌다 자식을 낳자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와 신문사에 투고한 글의 원고료를 받으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젊은 시절 산시성(山西省 산서), 간쑤 성(甘肃省 간쑤 성) 등 서역을 주유하던 경험이 <와호장룡>에서 그려낸 서역 묘사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937년 베이징에서 노구교(盧溝橋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가족을 데리고 베이징을 떠나 산둥 성(山東省 산동성) 칭다오(靑島 청도)로 이주했다.
그는 이때부터 지인의 소개로 칭다오 '신민보(新民報)'에 그의 첫 무협소설 <하악유협전河岳游侠传> 을 연재하기 시작하는 등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칭다오 역시 일본군의 점령하에 들어갔고 이로 인해 그는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래 사진은 그가 10여 년 살았던 칭다오의 집이다. (영파로 寧波路 4호) 그는 이곳에서 방 1칸을 빌려 5 식구가 살았다.
생활 여건은 어려웠지만 그의 집필 활동은 계속되었다.
1938년 6월 1일부터 1945년 여름까지 <하악유협전>을 비롯하여 <해빈어사>, <보검금채기>, <낙서표향>, <검기주광록>, <고성신월>, <무학명란기>, <와호장룡전>, <해상홍하>, <우미인>, <철기은병전>, <한매곡>, <자전청상록>을 잇따라 연재했다.
이들 작품들 중에서 이른바 '학철5부작(鶴鐵五部曲)'은 무려 280만 자에 달하는 대작이었다.
1부 <무학명란기 舞鶴鳴鸞記> 혹은 <학경곤륜 鶴驚昆崙>
2부 <보검금채 寶劍金釵>
3부 <검기주광 劍氣珠光>
4부 <와호장룡 臥虎藏龍>
5부 <철기은병 鐵騎銀瓶>
이들 작품 중에서 <와호장룡>은 1941년 3월 1일부터 1942년 3월 6일까지 근 1년간 연재된 작품이다.
‘5부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은원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신문에 연재가 끝난 후 부쳐진 이름이다.
예를 들면 영화에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있지만 이모백(주윤발 분)과 유수련(양자경 분)의 이야기는 이모백의 부친시대부터 이어져 왔으며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도 꽤나 길게 나온다.
또한 영화에서 애매하게 끝난 옥교룡의 죽음도 소설 속에는 죽음을 위장하고 다시 라소호를 만나 하룻밤을 지내고 낳은 아들과 의붓딸의 얘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좀 더 얘기해 보면...
1부 <학경곤륜>은 이모백(李慕白)의 스승 강남학(江南鹤, 무당파의 시조 장삼풍의 제자이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강남학의 부친은 강간범으로 몰려 부친의 스승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다. 이에 분개한 강남학은 10여 년의 수련을 마치고 부친의 원수를 찾아가지만 원수의 손녀는 강남학이 어릴 때부터 사랑하던 여자였다. 결국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애증의 관계로 갈등한다.
2부 <보검금채>는 이모백과 유수련의 이루진 못하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3부 <검기주광>은 라소호(罗小虎)의 친형제 양표(杨豹)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마지막 5부 <철기은병>은 라소호와의 관계에서 낳은 옥교룡의 아들 한철방(韩铁芳)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리고 있다.
1992년 우리나라 출판사 고려원에서 학철5부작 중에서 4부, 5부를 번역하여 <청강만리(清江萬里>라는 제목으로 총 15권을 출간했다. (아래 사진은 내가 서가에 소장하고 있는 초판본이다)
'와호장룡 臥虎藏龍'이라는 제목은,
춘추전국시대의 시인 유신(庾信)의 시구 '暗石疑藏虎,盤根似臥龍'(어둠 속의 바위 뒤에는 호랑이가 숨어 있을 것 같고, 바위 밑의 거대한 뿌리는 마치 웅크리고 있는 용과 같다)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마치 소설 속의 두 주인공 라소호(羅小虎)와 옥교룡(玉嬌龍)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이 두 사람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 얘기가 주를 이룬다.
두 사람은 현격한 신분의 차이로 인해 숨어살 수밖에 없는 세속적인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에 애절한 시랑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