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4. <와호장룡> 영악한 아이

by 발길 가는대로

영화 <와호장룡>에 등장하는 주윤발, 양자경, 장첸 등은 모두 쟁쟁한 배우이지만 옥교룡 역할을 맡은 장쯔이(章子怡 장자이)야 말로 실질적인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여겨진다.


장쯔이 역시 훌륭한 배우임에는 틀림없다.

그녀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비운의 여인 역할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그녀는

1년 전 1999년에 방영된 스크린 데뷔작 <집으로 가는 길 我的父亲母亲, 감독 장이머우>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여 하루아침에 중국 영화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녀의 <와호장룡> 출연 역시 이 영화를 감독했던 장이머우의 소개로 리안 감독을 만나 이루어진 것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한국 개봉 포스

1979년생인 그녀는 너무 일찍 출세를 한 탓인지 자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고위층 성 상납 스캔들도 있었고,

특히 유대인 부호 비비네보(Vivi Nevo)와의 약혼 스캔들은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걸려 한 동안 세상이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카리브 해변의 장쯔이와 비비네보

하지만 그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연기파 배우이다.

그녀가 얼굴과 몸매만 예쁜 배우라고 저평가하는 것은 실제로 그녀가 각종 영화제에서 얼마나 많은 수상을 했는지 안다면 함부로 할 말이 아니다.


작가 왕도려는 1953년 칭다오 생활을 청산하고 랴오닝성(遼寧省 요령성)의 선양(瀋陽 심양)으로 가서 국어 교사로 채용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듯했지만 1965년부터 문화대혁명(문혁)이 시작되자 '반동 문인'으로 지목되어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이때의 탄압으로 인해 문혁 기간 내내 고생을 하다가 문혁이 끝난 1977년 병사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작품은 10년 넘게 지속된 문혁으로 인해 거의 다 자취를 감추었지만 대륙이 아닌 홍콩과 타이완에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저작권, 판권이 없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해적판 소설이 출간되었다.


특히 80년대 초 중국의 통속 소설 작가 섭운람(聂雲嵐)은,

왕도려의 소설 <와호장룡>과 <철기은병>을 각색하여 각각 <옥교룡>, <춘설병>이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연재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어 잡지의 발행 부수가 41만 부에서 273만 부로 급등하는 횡재를 누리기도 했다.


훗날 저작권 문제로 왕도려의 가족에게 소송을 당했는데 섭운람은 '왕도려가 청나라 사람인 줄 알았다'라고 했다. 참고로 아직까지 나무위키 등에는 왕도려를 대만출신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왕도려의 작품 <와호장룡>이 최초로 영화화된 것은 1959년 타이완에서 <라소호여옥교룡 羅小虎與玉嬌龍>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이다.

타이완에서 개봉된 영화의 선전 내용

두 번째로 영화화된 것은 1967년 홍콩에서 만들어진 영화 <도검 盜劍>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원작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의검 義劍>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영화 <도검>은 당시의 인기 감독 악풍(岳楓)이 역시 당대의 최고 인기 배우 이려화(李麗華), 이청(李菁 리칭)이 캐스팅하여 만들었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영화에서 청명검은 청상검으로, 주인공 옥교룡은 종교룡으로, 라소호는 라익호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시대 설정도 청나라가 아닌 것이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던 것이다.


이후 중국의 사천 방송국에서 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고

타이완에서도 34부작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또한 이 영화 이후 2016년에는 속편이 제작되어 현재 넷플릭스에 <와호장룡 운명의 검>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고 있다.


<엽문>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원화평(袁和平)이 감독을 맡고 전편에 출연한 양자경이 여전히 유수련 역을 맡는 외에 견자단(甄子丹)이 상대역으로 출연했지만 네티즌 평점이 별 2개도 못 받을 만큼 졸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 선전물


작가의 이전글영화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