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5. <와호장룡> 서역의 연인

by 발길 가는대로

영화의 엔딩 자막에 '王度廬小說改編'이라고 일곱 글자가 나온다. 왕도려의 소설을 각색했다는 말이다.

51_왕도려_소설_개편_자막.jpg 엔딩 자막

<와호장룡>의 엄청난 히트로 왕도려의 존재가 세간에 회자되었지만,

사실 그에 대한 진가는 80년대부터 중화권 무협소설 작가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었고,

심지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새로운 무협소설의 창시자'라는 칭호를 듣고 있었다.


현재 중화권 무협소설 작가들은,

활동 시기에 따라 중국 대륙의 해방 전, 후를 기준으로 구파와 신파로 분류하고 있다.


구파는 일명 '북파 5대가(北派五世家)'로 분류되어 왕도려, 환주루주 이수민(還珠樓主 李壽民), 궁백우(宮白羽), 정등인(鄭證因), 주정목(朱貞木) 등 다섯 명을 꼽고 있고,


신파로 분류되는 작가들 중에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김용(金庸), 양우생(梁羽生), 고룡(古龍) 등의 작가가 있다.


지금은 익숙한 스토리 전개지만 왕도려의 작품은 무협소설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연애소설의 필법으로 부모 자식 간의 갈등, 인간적인 몸부림, 애증이 교차하는 복잡한 상황을 가미하여 강호 무사들의 협기를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무협소설에는 다른 무협소설과 달리 간교한 두뇌 싸움이나 음흉한 계책, 화려한 무림 기학이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하고 소박한 면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의 무협소설에 나오는 최고의 절기는 겨우 점혈 수법 정도이다. 영화에서 이모백 (李慕白, Li Mu Bai)이 점혈 수법을 보여주며 그가 엄청난 고수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왕도려의 무협소설 특징 중의 하나는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가난에 찌든 배경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주인공들이 겪는 세속적인 묘사는 인간 세상의 무정한 현실과 무자비함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과 촬영지는 서역 사막의 풍경과 이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옥교룡과 라소호의 만남과 애증이다.

서역 사막.jpg

하지만 감독 리안은 의외로 이 부분에서 특히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로 그들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스타일 서부 영화의 전형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라소호의 기습.jpg

행열을 습격하는 라소호의 마적 떼 모습과 말을 타며 온갖 기술을 선보이는 라소호의 기마술 등은 전형적인 서부 영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촬영은 미국의 서부 유타가 아니라 중국의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오이마귀성(烏爾禾魔鬼城, 乌尔禾魔鬼城 세계마귀성)에서 로케이션을 했다.


아직도 이곳에 가면 아래 사진과 같이 영화의 촬영지임을 증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5-2와호장룡_촬영지.jpg 촬영지 증명 표지

서역 사막은 단조롭고 북적거리는 베이징 성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곳이었다. 유난히 넓었고 그만큼 쓸쓸한 곳이었다.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난 옥교룡은,

바로 이곳에서 자신과는 너무 다른 라소호를 만나 함께 말을 타고 달리며 끝없는 사막을 질주하고,

밤하늘에 빛나는 아름다운 별을 보며 원시적인 생활에 젖는다.

이곳의 생활은 바로 옥교룡이 꿈꾸던 강호의 세계였다.


<와호장룡>의 크랭크 인은 바로 이곳 서역의 사막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촬영은 시작부터 고생길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사막인데도 불구하고 비가 며칠간 퍼부었다는 것이다.


세심하기로 소문난 리안 감독은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불편한 이곳에서 진행된 장장 8개월 간의 촬영 기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고 한다.


감독과 마찬가지로 출연 배우들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특히 이 영화의 모든 액션 장면은 대역배우(서턴트) 없이 직접 말을 타고 와이어에 매달려 소화했다고 한다.

라소호의 빗.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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