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와호장룡> 연인의 약속
영화 <와호장룡>은 리안 감독이 직접 각색을 한 작품이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무협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구체적인 구상도 10년 동안 했다고 한다.
틈틈이 무협소설을 읽던 그가 <와호장룡>을 읽은 것은 이 영화를 만들기 5년 전,
영화 <음식남녀 飲食男女>를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로 1995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와호장룡>을 만들 결심을 하자 곧장 선양(瀋陽 심양)으로 가서 왕도려의 아내 리단천(李丹荃) 만났다.
아내가 말하기를
'필명을 "도려(王度廬)"로 한 이유는 도일(度日 일본으로 건너 감)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려'와 '도일'의 중국 발음은 비슷하다.
작가의 필명 속에 이미 그의 슬픈 현실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리안의 손을 거친 소설 <와호장룡>은 새롭게 각색되었다.
원작을 채우던 라소호의 역할을 줄이고 (주인공이 조연으로 전락한 셈이다),
대신에 옥교룡과 이모백의 애매한 감정
- 사제간의 감정과 남녀 간의 감정을 혼돈시켜 원작에 비해 이모백의 역할이 늘어났다.
사실 이 무렵의 영화계에서 무협영화는 잊혀진 존재였다. 하지만 리안은 무협영화를 통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전작을 뛰어넘어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욕심을 내고 있었다.
영화 판권을 정식으로 획득한 리안은 타이완의 제작사 외에 중국, 일본의 소니, 미국의 컬럼비아 픽처스까지 공동 제작에 참여시키는 데 성공했다. (배급사는 소니 픽처스가 독점하는 조건이었다)
그는 영화의 여주인공 옥교룡 역으로 처음에는 타이완 출신의 홍콩 배우 서기(舒淇, Shu Kei)로 낙점했다. 하지만 서기가 한 해에 영화 10편을 찍는 등 너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이머우 감독의 소개를 받아 캐스팅한 배우가 바로 장쯔이(章子怡)였다.
마침 장쯔이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 我的父親母親 1998년작>의 촬영을 끝낸 참이었다. 베이징 영화학교를 그해에 졸업한 그녀는 비록 무명이었지만 무용을 전공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그는 기존의 무협영화에서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의 화려한 무예와 영웅담보다는 여성인 옥교룡과 유수련의 역할을 통해 전혀 다른 내용을 자신의 무협영화에 전개하고 싶었다.
그의 이러한 구상은 일찍이 미국 유학을 통해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동양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 작용한 셈이었다. 그의 이러한 구상을 실현시켜 줄 또 한 사람의 적합한 배우가 바로 저우룬파(周潤發 주윤발)이었다.
당시의 저우룬파는 이미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한 오우삼( 吳宇森 John Woo) 감독과 함께 <영웅본색>, <리플레이먼스 킬러>, <애나 앤드 킹> 등으로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배우였다.
또 한 사람의 여자 주인공 유수련(兪秀蓮) 역의 양자경(楊紫瓊 Michelle Yeoh) 역시 <송가황조 宋家皇朝>, <007 네버 다이>를 통해 할리우드식 촬영에 익숙한 배우였고 그녀 역시 무용을 전공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소호 역에는 타이완 출신의 영화배우 장진(張震, 장첸)을 캐스팅하여 주요 배역들을 완성했다.
기본적인 캐스팅이 완료되었지만 난관이 하나 남아 있었다.
이들 주요 배역들 간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느냐는 문제였다.
각자의 출신 지역이 틀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어려운 숙제는 그들 간의 발음 악센트 차이였다.
홍콩 출신의 배우 주윤발은 광둥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고, 양자경은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이기 때문에 말레이어는 능통했지만 보통화(북경화)는 약한 편이었다.
또한 장첸은 타이완 출신이기 때문에 보통화를 하기는 했지만 이는 대륙과 다른 타이완 사투리였다.
이들 중에서 보통화로 제대로 대화할 수 있는 배우는 장쯔이 한 사람뿐이었다.
리안 감독의 이러한 애로 사항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