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와호장룡> 제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감독 리안은 자신이 만드는 새로운 스타일의 무협영화를 통해 중국의 문화와 사상, 관습 등을 서양인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무협영화가 보여주었던 화려한 무예와 기예의 황당함을 배제한 영화에서 (예를 들면 단 한 번의 칼부림에 수십 명이 쓰러지는 것 같은 장면) 중국의 독특한 강호의 은원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문제였다.
그는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각본, 각색 팀에 자신의 영화 <음식남녀>에서 함께 작업했던 타이완 출신의 작가 왕혜령(王蕙玲, 훗날 영화 ‘색. 계’에서도 함께 한다)과 채국영(蔡國榮) 외에 미국인 극작가 James Schaefer를 합류시켰다.
1954년생인 리안 감독은 이 나이대의 성인 남자가 성장 시에 꿈꾸었던 강호의 무협 세계에 대한 환상과 고대 중국의 모습에 대한 환상이 겹쳐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무협 세계에 대한 환상은 작가 왕도려가 꿈꾸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청명검(青冥劍)을 등장시켜 충족되었다.
강호를 떠도는 모든 협객들이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무기는 바로 강호 세계의 상징이었다.
이는 청명검이 바로 강호 제일의 협객 이모백을 상징하는 무기이며 동시에 옥교룡은 청명검을 통해 강호의 세계로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동시에 청명검의 주인이 이모백에서 옥교룡으로 바뀌며 강호의 세대교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유수련에게 청명검은 바로 이모백이었다.
사랑하지만 다가가지 못했던 이모백에 대한 연정은 청명검이 옥교룡의 손으로 만져지는 것조차 분노를 느끼는 일이었다. 이런 그녀가 옥교룡에게 던지는 한 마디는 바로 "검을 두고 가!(劍放下)였다.
영화는 평화로운 홍촌(宏村)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안 감독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보여주고자 하는 중국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호수 위를 걸어가는 이모백이 등장하고 장원으로 들어선다.
이 장원은 홍촌보다 200년이 더 오랜 세월을 지켜온 오랜 유적 남평 고촌의 엽씨 사당(南屏古村 叶氏支祠)이 영화의 웅원표국(雄遠镖局, 표국은 지금의 물류센터이다)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어서 카메라는 앵글을 바꾸어 두어 차례 고대 베이징 고궁 모습도 보여준다. 물론 CG이기는 하지만 유수련이 말을 타고 베이징 성으로 입성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카메라 렌즈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낙타, 불꽃놀이, 그리고 지금도 베이징 거리의 최고 간식으로 인정받는 당호(糖葫,탕후)를 파는 모습을 유수련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다시 하늘 높이 올라가 고풍스러운 누각을 보여주며 신비로운 고대 중국의 건축미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리안 감독의 카메라 앵글은 불과 1분여의 시간에 이를 지켜보는 관객, 특히 서양인들에게 고대 중국에 대한 환상과 함께 당시 민중들의 삶을 빠른 시간에 이해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는 영화 '해리 포터'를 통해 과거 런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도망치는 옥교룡을 쫓아가는 유수련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지붕 위, 좁은 골목, 그리고 어두운 베이징의 고가 기와 누각과 그 위를 날아가는 듯한 모습은
마치 알라딘이 요술 담요를 타고 세상을 누비는 것과 같은 최고의 시각적 효과와 함께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멋진 와이어 액션이었다.
소설 <와호장룡> 속의 라소호와 옥교룡은 작가 왕도려가 젊은 시절 다녔던 서역의 사막에서 사랑을 느끼고 꽃을 피운다. 이 두 사람은 낯선 사막의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
라소호를 통해 원초적인 열정에 목말라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옥교룡의 모습에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자신의 생각을 담았던 것이다.
원작 속의 라소호는 부모가 간악한 사람들에게 속아 해를 입고 형제자매가 뿔뿔이 흩어지는 신세가 되어 훗날 형을 만나도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 그의 이러한 처량한 신세는 도회지에서 나타난 옥소룡을 만나 비로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새로운 관계...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가 사막에서 부르는 노래 (신강 위구르족의 민요)
'아와러구리(阿瓦日古麗)'의 가사 속에 담긴 뜻이 매우 예사롭지 않다.
말을 타고 쟁기를 갈며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찾는 사람은 바로 너였다.
아름다운 사람아 천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왔구나
그대의 아름다운 모습, 천애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비할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