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패왕별희> 각고의 수련
첫 장면의 대사에서 문화혁명이 얼마 전에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화는 1977년 즈음에서 시작된다. 22년 만에 경극의 두 주인공이 무대를 찾아와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장면이 전환되어 1924년 베이핑(베이징의 옛 이름) 북양정부시대로 돌아간다.
남루한 옷차림의 기생 옌홍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텐차오(天橋)의 번화가를 배경으로 걸어가고 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터운 것으로 짐작하면 시기적으로 적어도 11월 이후의 겨울임을 알 수 있다.
당시의 11월은 베이핑에서 큰 정변이 있을 무렵이었다. 황제 선통제가 출궁 당하고 군벌이 정권을 탈취했던 것이다.
사실 영화 <패왕별희>의 한자 뜻풀이를 하면 '패왕이 희와 이별하다'이다. 그리고 중국의 전통 공연 경극(베이징에서 공연되는 희극)의 제목이기도 하고 이 영화의 원전이 되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경극으로서의 <패왕별희>는 원래 1918년부터 '초한쟁(楚漢争)'이라는 제목으로 베이징에서 공연되었다가 1922년 양샤오루(杨小楼)와 메이란팡(梅蘭芳)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공연부터 제목을 바꾸어 <패왕별희>가 되었다.
경극의 반주에서 중심이 되는 악기는 호금(胡琴)이다. 경극의 경우 주역의 노래와 춤이 반주 음악과 함께 어울려야 하고 이 음악의 이해도에 따라 감상평이 엇갈릴 만큼 경극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흔히 우리나라의 옛사람들은 이를 '깽깽이 소리'라고 폄하하지만...
1985년 경극 <패왕별희>가 모티브가 되어 소설 <패왕별희>가 출간되었고 다시 이 소설을 본 영화의 감독 천카이거(陳凱歌)가 소설의 작가 리비화(李碧華)에게 시나리오를 쓰게 하고 영화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작가 리비화는 홍콩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패왕별희>가 나오기 전에 1981년 홍콩에서 2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만나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작가 리비화는 홍콩 사람이기 때문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베이징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다행인 것은 감독 천카이거가 전형적인 베이징 출신이었다.
시나리오가 나오고 영화가 촬영될 무렵에 작가 리비화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개정판 소설 <패왕별희>를 출간했는데 원래의 내용 200페이지의 소설이 400페이지로 변할 만큼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특히 그녀의 개정판 내용에는 리비화가 '동성애로 인한 갈등'이라는 주제를 많이 담고 있었지만 천카이거는 이를 영화 속에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정부 당국이 이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판 영화 <패왕별희>는 번역상의 오류가 많은 영화였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자막이 거슬려 영화의 감상을 방해했다.
아무튼 영화의 초반부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두지(豆子, 또우쯔, '콩알'이라는 의미, 작은 아이를 일컫는 말)의 손가락을 식칼로 자르는 장면이었다. 훗날 두지가 성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데 이 손가락의 의미는 남자의 음경을 자르는 은유적 표현이 아닐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