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4. <패왕별희> 질투

by 발길 가는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후원자 원대인(遠世卿)은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의 차남 원극문(袁克文)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원극문의 출생지는 조선이다. 모친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잠시 살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조선에서의 파견 생활이 끝나자 원세개는 조선에서 얻은 처첩과 자식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당시 원극문의 나이는 5살이었다. 그는 귀족의 자제답게 온갖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장기와 마작의 경우 당대 최고의 실력자라는 칭호를 들었고, 서예와 수목의 대가라는 소리도 들었다. 다양한 취미를 가진 그는 미술품, 골동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당시 경극의 발전에도 많은 기부를 하여 경극계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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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원대인으로 분한 꺼어요우.jpg
원극문의 실제 모습과 원대인으로 분한 갈우


그의 부친 원세개는 조선에서 9년 동안 청나라 정부를 대표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으로 온 그의 신분은 총독, 상무대표 자격이었다.


당시 조선의 황제 고종은 그의 사생활을 염려하여 조선의 귀족 양반집 처녀 안동 김 씨를 아내(이미 본처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첩이었다)로 천거했다.

조선에서의 원세개.jpg 조선에서의 원세개 (좌측에서 두 번째)

귀국 길에 오른 원세개는 아내 김 씨와 함께 김 씨의 유모와 하녀까지 데리고 갔다. 베이징(당시의 이름은 베이핑)에 도착하자 본처는 이들 세 여자가 모두 원세개의 첩으로 오인하여 나이 순서대로 첩실의 순서를 매겨 주었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유모 이 씨가 둘째가 되고 그다음 셋째가 김 씨, 하녀 오 씨가 넷째가 되었다.



4-7-5_원세개의_234부인.jpg 원세개가 조선에서 데리고 간 세명의 여자와 자식들

원세계는 슬하에 17남 15녀를 두었는데, 본처 외에 모두 9명의 애첩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이고 간혹 거느렸던 758명의 시녀들 중에도 자식을 낳은 사람이 있었다.


이들의 후손들에 관한 얘기를 좀 더 소개하면 원극문의 아들 원가류(袁家騮)는 미국으로 건너가 물리학 박사가 되었고 미국에서 만난 같은 중국계 물리학자 오건웅(우지엔슝 吳健雄)과 결혼했다.


4-8오건웅.jpg 프리스 대학 시절의 오건웅

오건웅은 당시 미국 물리학계를 대표하는 최초의 여성 물리학회 회장이었고 미국의 비밀 프로젝트 원자폭탄 개발 계획 일명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비록 노벨상 수상에 불발했지만 그녀의 제자들 중에 무려 3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훗날 중국에도 자주 들락거리기도 했는데 그녀에 대해 중국 정부는 엄청나게 융성한 접대를 했다고 한다. 당시 총리 주은래(저우언라이 周恩來)가 항상 그녀를 수행했다. (그녀가 중국의 핵개발을 도와주었다는 의심은 있었지만 FBI의 결론은 무관하다는 것으로 판명했다)

4-9오건웅과 주은래1jpg.jpg 오건웅을 안내하는 저우은라이 총리

각설하고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후 영화는 한 여자 주인공의 등장으로 3각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여 주인공 쥐샨(菊仙, 쥐센)으로 분한 배우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공리(鞏俐)였다.

3-6_1992년_4월_24일_장국영_공리,_장풍의_천안문.jpg 1992년 4월 24일 천안문 광장에 선 영화의 세 주역 장의부, 장국영 공리


공리가 <패왕별희>의 천카이거 감독에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은 중국 영화계의 엄청난 가십거리였다. 이는 본디 공리가 당시 중국 최고의 영화감독 장예모(장이머우張藝謀) 페르소나이자 실질적인 동거녀 애인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상식적으로는 당시 중국 영화계에서 장예모의 경쟁 관계였던 천카이거의 영화에 출연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장예모와 공리의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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