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패왕별희> 아이의 성장
작가와 감독이 만나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되자 다음에 남은 문제는 배우의 캐스팅이었다. 감독이 주인공 청테이(程蝶衣, 성인이 된 두지) 역할로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존룡(尊龍 John Lone)이었다.
홍콩계 미국 배우인 그는 미국으로 가기 전에 홍콩에서 경극학교를 다닌 적도 있었다. 특히 1987년에 개봉된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 '푸이'역을 맡아 한창 주가를 올리던 배우였다.
하지만 존론이 소속되어 있던 미국의 에이젠트가 제시하는 조건이 너무나 까다로웠다. 대충 소개하면, 개 두 마리와 함께 숙식을 해야 한다. 전속 수행원으로 경호원 2명, 하인 2명, 통역 2명을 요구했고 이외에도 외국에서 공수되어 온 생수는 물론 호텔에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었다.
이외에도 천카이거가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조건은 당시 중국에서 너무나 생소했던 캠핑카를 촬영장에 항상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천카이거에게 존론 대신 장국영을 제안한 사람은 바로 작가 리비화였다. 때마침 1987년에 리비화의 원작 소설 <인지구 咽脂口>가 영화와 되었을 무렵이었기에 그 영화에 출연했던 장국영과는 언제든지 연락 가능한 사이였다.
하지만 장국영 역시 쉽지가 않았다. 우선 장국영은 대부분의 홍콩 사람들처럼 베이징에서 사용하는 보통화를 할 줄 몰랐다. 또한 1990년 은퇴한다고 발표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영화 출연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아무튼 이런 장국영을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 감독 천카이거는 장장 6개월 이상을 공을 들여 장국영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장국영이 배역을 맡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이후의 장국영에 대해 놀라고 말았다. 촬영 시작 6개월 전에 베이징으로 온 그는 낮에는 개인 교습을 받으며 경극 연습에 몰두했고 밤에는 또 베이징 보통화를 배우는 등 너무나 성실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자살했다. 자살한 이유 중의 하나로 자신의 성 정체성 - 양성애 문제로 고민했다고 하는데,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1997년> 두 영화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맡은 것이 그의 성 정체성을 무너뜨렸다는 후문이 있다.
장국영은 <패왕별희>를 촬영하는 내내 주인공 청톄이로 빙의되어 지냈다고 한다. 자신의 촬영이 없는 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촬영장에 나타났고 이런 장국영의 모습을 보고 영화의 스태프들은 '그가 미쳐버렸다'라고 할 정도였다.
영화에서 8년의 세월이 흐르고 당시의 실력자 장내관의 눈에 띈 두지가 유리병에 오줌을 누는 모습을 지켜본 장내관이 두지를 강간하고 말았다.
다시 5년의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두지는 마침내 장국영으로 변신했다.
영화에서 경극 후원자 원대인에게서 나비 장식 모양의 패물을 선물로 받는다. 이는 청톄이의 중국 이름이 程蝶衣인데 톄이가 바로 나비 옷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