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베스퍼의 죽음
본드는 만능의 사나이가 아니었다. 침몰하는 건물 속에서 게틀러를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돈이 든 가방도 잃고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도 막을 수 없었다.
베스퍼는 갈등하고 있었다.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의 주인공 '알제리계 애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본드를 배신하지만 그것은 또 본드의 목숨을 구하는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는 늦었지만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본드를 배신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아래는 보너스로 삽입하는 사진이다. 본드의 가장 이상적인 드림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무너지는 건물은 17세기에 지어진 Palazzo Pisani Moretta의 부속 건물이다. 실제로는 이렇게 멀쩡하다.
이 건물은 러시아의 황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을 비롯하여 이루 말할 수없이 많은 명사들이 다녀갔던 유서 깊은 곳이다. 베네치아 최고의 페스티벌 가면무도회 'II Ballo del Doge'가 매년 이곳에서 개최된다.
(참고로 2020년 2월에 개최된 무도회의 입장료 티켓 가격은 저녁 포함 400명 한정 972달러였다. 반드시 18세기 무도회복 의상을 완비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물속에서 찍은 화면이 깨끗한 이유는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건물의 촬영을 위해 메인 스튜디오인 Pinewood Studios에 3층 높이의 거대한 세트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보면 베네치아 대운하의 물속은 이 정도로 깨끗하지 않다.
물에 잠기는 건물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수조에 90톤 이상의 물이 채워졌고 약 1/3 크기의 모형 건물을 만들었다.
본드가 사랑하는 여인 베스퍼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촬영 당시 크레이그는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고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그의 이러한 연기 투혼에 보답하듯 베스퍼 역의 에바 그린도 스쿠버 다이빙 연습을 2주 동안이나 했다고 한다.
영화의 엔딩 신을 장식하는 Mr. 화이트의 집은 코모 호숫가의 Villa Gaeta에서 촬영했다. 이곳은 본드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Villa del Balbianello에서 불과 11km 떨어진 곳이다. (아래 지도의 빨간 점)
이곳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투숙객이 아니면 입장을 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아쉽게 발길을 돌린 기억이 있다. 코로나 19 때문인지 현재 이곳의 가격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박당 300 달러 정도이다.
중세풍 건물이기는 하지만 중세 시대에 지은 건물은 절대 아니다. 주소는 SS340dir, 12, 22010 San Siro CO
베스퍼가 마지막 남긴 단서 - Mr. 화이트의 전화번호를 추적하여 도착한 이곳에서 본드는 멋진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지만 그의 손에는 훌륭한 총이 들려 있었다.
다리에 총을 맞고 바닥을 기어가는 화이트에게 마지막 대사 "Bond, James bond"를 던진다. 이때 그가 들고 있는 총은 독일제 HK UMP-9이고 소음기가 장착되어 있다. 이 총의 특징은 아래 사진처럼 개머리판을 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목적용으로 사용되는 이 총은 세계적으로 범용 되고 있고 심지어 한국의 경찰 특공대나 청와대 경호실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HK는 회사 이름 Hecker & Koch UMP의 이니셜이다. 민간용으로 판매되고 있는 모델 MP5-SD 9mm의 가격은 약 3천 달러이다.
한국에서 2006년 12월 21일 개봉했다. 12월 11일 출연 배우들이 내한하여 판촉활동을 하고 갔다. (에바 그린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판촉 활동 당시 에바 그린이 참석하지 않은 탓인지 국내 언론과 팬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실물을 본 본드걸에 실망을 하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금발에도 실망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중국 본토에서 상영된 최초의 007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중국인들이 영화에 나오는 포커 게임룰을 모르기 때문에 영화에 룰을 설명하는 자막을 따로 넣어 상영했다. 중문 제목은 <大戰皇家賭場>이었다.
중국 개봉은 2007년 1월이었지만 이미 한 달 전부터 불법 복제 DVD가 시중에 나돌았다. 영화 판촉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크레이그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베이징의 길거리에서 불법 복제 DVD를 구입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본드는 천하의 바람둥이이다. 이 영화가 이언 플레밍의 첫 소설 작품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베스프의 배신과 죽음으로 인해 그가 여자들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는 천하의 바람둥이가 된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본드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래와 같은 멘트를 날렸다.
"The job's done and the bitch is dead"(일은 끝났고 그년은 죽었다!)
베스퍼 역을 맡은 배우 에바 그린(Eva Green)을 처음 만났던 영화는 2003년작 <몽상가들 The Dreamers>이었다. 물론 대형 스크린으로 극장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위대한 명장 베르나르도 베르툴루치 감독(그는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 9개를 휩쓸었다)의 이 영화는 동성애, 자위, 섹스, 나체가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는 충격적인 연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에바 그린은 스무 살에 처녀성을 바치는 가슴 떨리고 애절한 연기를 너무도 신선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생얼로)
물론 그녀는 2005년작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명작에 출연했지만 이 영화는 <카지노 로얄>을 본 후에 보았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킹덤 오브 헤븐>을 본 후에 전혀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선택했다고 한다.
에바 그린은 본드걸 '제임스 본드의 첫 여인 베스퍼는 섹시하게 비키니를 입고 총을 쏘는 역할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인물 분석을 끝내고 본드와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참 그녀는 스웨덴 출신의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의 유대계 어머니를 두고 있으며 또 전혀 닮지 않은 이란성쌍둥이 (2분 차이) 동생이 있다. 어머니를 비롯하여 식구 전체가 유대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그녀는 프랑스어는 물론 완벽한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녀는 할리우드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할리우드가 그녀에게 요구하는 '팜므파탈 프랑스 여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독립영화나 연극 무대 출연을 선호하고 있다.
비록 가족과 떨어져 미국에서 혼자 살고 있지만 여느 배우들과 달리 쇼핑, 파티를 싫어하고 클럽에도 전혀 가지 않기 때문에 유명 남자배우 등과의 스캔들이 전혀 없는 배우이다. 그녀의 취미는 독서와 곤충 채집이라고 한다.
1980년 생인 그녀는 영화의 출연료를 받을 때마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인스타 그램으로 팬들과의 소통도 자주 하고 있다. 회신도 곧잘 준다고 한다.
007 시리즈의 21번째 영화 <카지노 로얄>은 다른 영화와 달리 '세계 정복'이라는 과대망상적인 설정보다 훨씬 현실적인 '돈'에 집착하는 악당이 출연하고 황당한 신무기조차 등장하지 않는 영화이다.
그리고 또 여느 영화와 달리 애절한 '러브 스토리'가 있다. 영화 속의 이러한 전개는 그동안 007 영화에 식상해하던 사람들까지 찬사를 보내게 만들었다.
영화의 결말은 많은 것을 미스터리로 남긴 체 끝나고 말았다. 다리에 총을 맞은 Mr. 화이트의 운명, 베스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후 인물과 조직의 정체 등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은...
베스퍼의 남자 친구는?
그리고 2년 후...
<퀀텀 오브 솔러스>가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