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색, 계> 혼란의 시절
감상평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영화 중의 하나이다.
그중의 하나가 주인공 량차오웨이(梁朝偉 양조위)의 정확한 신분이 뭐냐는 것이다.
친일파인 것은 알겠는데 대체 언제부터 중국에 친일 정권이 있었지?
만주국은 들어봤지만 상하이에도 친일 정권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중국 사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11년,
쑨원(孫文 손문)은 중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신해혁명을 일으켰지만 총칼을 앞세운 북양군벌의 거두 위안스카이(袁世凱 원세개)에게 밀려나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두 심복을 거느리고 있었다.
문(文)의 왕징웨이(汪精衛 왕정위), 무(武)의 장제스(蔣介石 장개석)이다.
일본 유학생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쑨원이 장제스와 자매를 나눠 가지는 동서지간이 되자 이에 크게 실망한 왕징웨이는 배신감을 느끼고 장제스와도 사이가 멀어졌다.
결국 두사람은 쑨원이 죽은 후에 후계자 자리를 놓고 국민당을 차지하기 위한 필생의 라이벌이 되었다.
당시 대중적인 인기는 왕징웨이가 장제스보다 한 수 높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뚜렷한 공적이 없었던 장제스에 비해
왕징웨이는 쑨원과 활동할 당시 마지막 황제 푸이의 아버지 순친왕의 폭탄 암살 미수범으로 투옥당한 경력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왕징웨이는 근대 중화민국 10대 미남에 꼽힐 정도로 훤칠한 키의 미남이었고 민중들의 속을 긁어주는 시원하고 과격한 연설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쑨원의 죽음 이후 황포군관학교 사관 생도들과 함께 군벌 탄압에 성공하고 정국을 장악한 장제스는 1936년의 시안사변(西安事變 서안사변)을 계기로 공산당과 합작하여 항일전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왕징웨이는 장제스와 결별하고 1940년부터 상하이를 본거지로 하는 새로운 국민당 정권을 세우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일종의 괴뢰 정권이었던 것이다.
당시 왕징웨이가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역은 아래 지도에서 보다시피 베이징을 포함하여 꽤 넓은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와 국교까지 맺을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영화 속의 량챠오웨이(양조위)는 바로 이런 왕징웨이 정권의 방첩대(정보부) 대장 정도의 직분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가 속한 기관의 정식 명칭은 꽤나 길다.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특무공작위원회 특공총부(国民党中央执行委员会特务委员会特工总部)이고 이곳의 주소지가 76호이기 때문에 흔히 "76호"라고 부르는 기관이었다.
이곳은 현재 상하이시 만항도로 435호(上海市万航渡路435号)로 주소가 변경되었는데 현재 이 주소대로 찾아가면 건물의 형태는 남아있지만 무슨 직업학교가 있다.
영화 속의 량챠오웨이는 바로 76호의 책임자였던 실존 인물 딩모춘(丁默邨)을 극화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 <색, 계 色, 戒>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P.S 사진이 야하다는 지적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IMDb에서 공개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