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륙의 스캔들
이 무렵 중국 대륙은 갈갈이 찢어져 무려 4개의 세력이 충돌하고 있었다.
일본이 중국의 북부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웠고,
난징(南京)에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설립되었지만 중일전쟁의 발발로 쓰촨(四川)의 충칭(重慶, 중경)으로 내륙 깊숙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한편 장제스와 함께할 수 없었던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의 공산당은 장제스의 공격을 받아 중부 내륙 옌안(延安)에 둥지를 틀고 있었고,
난징대학살을 계기로 대륙의 중부연안을 장악한 일본은 왕징웨이라는 꼭두각시를 내세워 또 다른 국민당 괴뢰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당시의 중국 민중들은 도대체 어느 편에 서서 어떤 정부를 지지해야 중국을 위한 애국인지 분별하기가 힘든 정치적, 사상적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었다.
4개의 세력 중에서 조국을 침략하고 난징에서 수많은 동포를 죽인 일본 놈이야말로 확실하게 타도의 대상이었다.
국민당의 총통 장제스는 1931년 공산당과의 연합이 틀어지자 당 내의 우파들과 함께 당에 침투한 좌파 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비밀 특무 조직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남의사(藍衣社, Blue Shirts Society, BSS)라는 조직인데, 나치의 게슈타포(SS)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독립투사 의열단의 김원봉 선생도 남의사 출신이다)
남의사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당 중앙 직속으로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조사통계국(中国国民党中央执行委员会调查统计局)이라는 비밀 방첩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이를 줄여 흔히 "중통"이라고 불렀으며 앞서 소개한 76호 보다 2년 정도 빠른 시점이었다.
영화에서 탕웨이가 역할을 맡은 정핑루는 부친이 일본 나고야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유학생 시절에 결혼한 일본인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중일 간의 혼혈 출생인 셈이다.
부친(鄭越原)은 일본에서 쑨원이 만든 애국단체 '중국동맹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고 하니 꽤나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찌아즈의 부친은 영국과 홍콩을 오가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이는 장아이링이 일본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며 대신에 자신이 잘 아는 영국과 홍콩을 일본과 대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핑루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미모를 발휘하여 급우들에게서 최고의 미인으로 인정을 받았고
대학에 진학했을 무렵에는 상하이의 연예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을 정도였다.
아래 사진은 잡지의 표지 모델로 데뷔했을 때 모습이다.
당시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국민당군의 공군 조종사로 복무 중이었는데 정핑루와 약혼까지 한 상태에서 일본군과의 상하이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정핑루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탔다.
이런 그녀의 상태를 눈치챈 국민당의 '중통'은 그녀의 부친을 내세워 그녀를 포섭하는 데 성공하고 점차 스파이로 만들어갔다.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를 갖춘 데다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그녀는 상하이의 사교계에서 금방 두각을 나타내어 왕정웨이 괴뢰정권의 지도자층은 물론 일본 측 고위 장교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일본 고관들의 댄스파티에서 딩모춘을 처음 소개받은 정핑루는 당시 그의 신분이 76호의 수괴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딩모춘은 달랐다.
17살 나이차이지만 22세의 정핑루는 딩모춘의 눈에 그야말로 양귀비였던 것이다.
첫 만남 이후 그는 계속적인 만남을 재촉할 정도로 정핑루에게 추근거렸다.
이와 같은 사정을 보고 받은 '중통'의 간부들은 즉시 딩모춘을 암살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정핑루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첫 시도는 안타깝게 실패하고 말았다.
1939년 8월의 어느 날,
딩모춘을 유혹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천둥 번개와 폭우로 인해 딩모춘이 문 앞에서 돌아서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