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계>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6. 위장된 신분

by 발길 가는대로

당시의 중국에서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애국운동을 시작한 사례는 1919년 발생한 5.4 운동 이후 보편화된 현상이었다.


중국의 5.4 운동은 학생들을 비롯한 진보 지식층과 민족주의자, 노동자 계층이 함께 뭉쳐 일제에 항거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로 인해 중국 대륙에 공산주의가 싹틀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영화 얘기로 돌아가면


홍콩에서 대학 졸업 기념 공연으로 만든 연극 무대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자 광위민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항일투쟁을 무력을 통해 시도해 보자는 쪽으로 결의를 한다.


우선적으로 그들이 내세운 첫 시도는 왕징웨이 괴뢰 정권 밑에서 일하고 있는 광위민의 고향 선배 차오를 통해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친일 국민당 괴뢰 정권의 76호 특무대장이 홍콩에 지부를 설립하기 위해 곧 홍콩을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들은 고향 선배를 앞세워 특무대장 이선생에게 접근하여 암살을 시도한다는 계책을 마련하고 총까지 준비를 했다.

테러 계획.jpg 테러의 리허설

고향 선배를 술과 여자로 구워삶은 후, 홍콩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젊은 부부로 위장한 찌아즈와 광위민은 마침내 특무대장 부부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막부인으로 신분을 바꾼 찌아즈는 이선생의 부인과 동반하여 홍콩 거리를 안내하기도 하고 이선생의 집에 초대를 받아 마작판의 상대가 될 정도로 친분을 쌓는 데 성공한다.

막부인의 홍콩 가이드.jpg 부인을 안내하는 찌아즈

거사일을 정한 이들 아마추어 테러분자들은 홍콩의 한적한 해변에서 사격 연습도 하며 결의를 다지고,

이선생까지 참여한 마작판에서 이선생에게 추파를 던지든 찌아즈는 마침내 이선생과 단둘이서 데이트를 하고 밤늦은 시간에 배웅을 핑계로 집까지 데려온다.


하지만 뭔가 꺼리침함을 느낀 이선생이 '차 한잔하고 가세요'라는 찌아즈의 요청을 묵살하고 문 앞에서 돌아서자 이들의 첫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한번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만약 이선생이 다시 연락을 한다면 이는 이선생이 찌아즈를 애인(情婦)으로 삼고 싶은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한 가지 난제에 부딪힌다.


이들의 걱정은 막부인 찌아즈가 유부녀로 위장했지만 여태껏 처녀 상태였기 때문에 섹스 경험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찌아즈가 그녀의 동료 한 사람과 섹스 연습이 아닌 실제로 관계를 가지는 참으로 웃픈 장면이 연출되지만 그들의 진지한 행위는 두려움보다 애국에 대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계획과 희생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선생 부부가 돌연 홍콩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사건이 이들에게 다가왔다.


이들의 정체를 눈치챈 광위민의 고향 선배 차오가 이들을 찾아와 협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총을 꺼내 든 그의 겁박을 참지 못한 동료들은 네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차오를 칼로 찌르는 데 성공하고 차오가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찌아즈는 황급히 집을 나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친구들과 헤어진다.


영화 <색, 계>는 우리나라에서 그전에 개봉한 리안 감독의 영화 중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브로크백 마운틴> 34만 명, <와호장룡> 56만 명과 블랙버스트에 속하는 영화 <헐크> 86만 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4_영화_포스터 (1).jpg 첫 개봉 영화 포스터

이는 무려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조건과 상영시간 157분이라는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기록한 성적이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 관객의 대부분이 2~30대 젊은 여자들이었다.


탕웨이는 이 영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단번에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로부터 7년 후 2014년 7월 탕웨이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탕웨이가 한국의 영화감독 김태용과 결혼한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보다 더 뒤집어진 곳은 중국 대륙이었다.

대륙의 여신으로 칭송받던 "우리의 탕웨이가 한국 놈과 결혼하다니!"

그것도 김태용은 이미 혼인한 적이 있는 남자였던 것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 전체 매체들도 한동안 두 사람의 결혼 소식과 동정을 지면과 방송에서 끊임없이 쏟아내었다. 이는 마치 한국판 '노팅힐'이었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분노와 함께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우리가 탕웨이를 시집보냈으니까 이제 한국은 송혜교를 중국으로 시집보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전국적인 서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서명에 참여한 사람이 수백 만 명이었다)

4한국데이트.jpg 홍대 앞 데이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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