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계>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7. 미인계

by 발길 가는대로

당시의 중국은

1840년부터 시작된 아편전쟁이래 태평천국의 난, 신해혁명, 중일전쟁 등으로 이어지며

근 100년간 혼란 속에 허우적거리던 시절이었다.


영화 <색, 계>는

중국 대륙에서 전개된 혼탁한 역사의 자락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그들의 엇갈린 사랑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과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이다.


누가 애국자이며 누가 매국노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지친 두 주인공은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역사의 소모품으로 취급된다.


비극적인 영화의 주인공처럼 배우 탕웨이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때문에 조국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영화가 개봉되자 중국 정부는 탕웨이를 용서하지 않았다.


일부 보수적인 중국인들이 탕웨이에게 침을 뱉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7년이나 사귄 첫사랑 남자 친구와도 헤어진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위안부들은 오랜 시간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채 세상과 등지고 숨어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탕웨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평가는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연예인'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에게 약속된 일체의 영화, 드라마, 광고 출연이 금지되었고, 이미 촬영된 부분조차 가위질을 당했으며 심지어 위약금까지 물어야만 했다.


이에 대해 탕웨이가 말했다.

"영화가 성공하자 저는 갑자기 부자가 되었어요. 하루아침에 20억이 넘는 돈이 생겼죠. 하지만 저는 금방 빈털터리가 되었어요. 위약금을 지불하고 나니 수중에는 1억 정도밖에 남지 않더군요. 저는 그 돈으로 영국으로 떠났죠."


아래 사진은 그녀가 유학 시절에 찍은 거의 유일한 모습이다. 스마트폰이 없어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고 한다.

5유학_탕웨이.jpg 런던의 거리에서 동료와 함께


그녀는 유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살아야만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거리에서 신문지로 만든 종이옷을 입고 패션쇼를 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등 거리의 동전을 구걸하기도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1년이 지나자 그녀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주기 위해 나선 리안 감독의 주선으로

홍콩의 '인재 영입 이민' 형식으로 홍콩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중국이나 홍콩의 연예계에 복귀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중국이나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는 홍콩의 연예계는 여전히 그녀에게 냉담했다.


이러한 그녀에게 기회가 만들어진 것은 한국에서 제작되는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 출연 제안이었다. (2010년)


<만추>에 출연한 그녀에게 한국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현빈과 함께하는 방송 무대와 인터뷰가 줄을 이었고, 심지어 광고 촬영 요청도 잇따라 들어왔다.


인터뷰 때마다 보여주는 그녀의 선한 눈웃음과 재치 있는 답변은 기자들에게 인기 만점의 스타였다.

하나의 예를 소개하면,


<만추> 개봉을 앞두고 기자회견이 진행될 때였다.

"영화에서 어떤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나요?"


탕웨이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 Hi! Nice to meet you. I'm Anna."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녀의 이 말은 바로 <만추>에서 탕웨이가 했던 대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던 그녀의 SNS에 재미있는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5임신_사진.jpg 임신부 탕웨이

그녀의 서명과 함께 쓴 글의 내용은 "나는 아무것도 못하게 된 임산부"이다.


영화는 1941년의 상하이로 무대를 옮긴다.


3년 만에 돌아온 고향집 상하이는 전쟁으로 인해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처를 입고 쓰러져 신음하는 거리의 행인 모습과 골목에 널브러져 있는 전염병 환자들 모습,

또 한 편의 주택가 골목에는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도 보이다.


그 줄 속에는 찌아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식량 배급표와 쌀을 교환하고 이모집으로 향한다.

사족을 달면, 그녀가 내민 것은 지폐가 아니라 식량 배급표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량권(糧券)'이라고 한다.

5양권.png 세근이라고 도장이 찍힌 식량배급표

이어지는 장면에서 또 하나의 흑백영화가 등장한다.

그녀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의 담벼락을 지나가면서 벽에 붙은 포스트를 통해 2편의 영화가 소개되고 있다. 2개의 영화 모두 캐리 그랜트 (Cary Grant)가 주연한 1941년도 영화라는 점이 재미있다.


영화관 안으로 걸어가면서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포스터는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서스피션 Suspicion>이라는 영화이다.


하지만 찌아즈가 관람을 선택한 영화는 조지 스티븐스(George Stevens) 감독의 영화 <페니 세러네이드 Penny Serenade>였다.


몇 분 안 되는 이 장면을 통해 우선 리안 감독의 디테일에 놀랍거니와 그가 깔아놓은 복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우선 <서스피션>이라는 영화는

바람둥이 사기꾼에 속아 넘어가는 순진한 아가씨의 비극적인 결말을 담고 있는 '로맨틱 사이코 스릴러'이다. 반면에 찌아즈가 선택하여 보는 영화 <페니 세러네이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물이다.


그녀는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으로 앉아 있었을까?


사랑하지만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던 남자 광위민이 보는 곳에서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처녀를 바치는 희생을 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살인 현장에서 도망친 신세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로맨틱한 해피 엔딩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그녀 자신의 운명과 사랑이 계()가 아니라 색()으로 종결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관에서 나오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옛 친구이자 마음속의 연인이었던 광위민이었다.

그는 '이선생이 상하이에 있다. 지금 그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동참해 주면 좋겠다'라고 권한다.


이선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찌아즈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이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스파이 교육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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