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선택의 기로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서 들려온 찌아즈의 음성으로 그녀가 왔다는 것을 눈치챈 이선생과의 밀회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는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태도와 말로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이선생 역시 이에 반응한다.
"당신에게 줄 선물이 없네요."
"네가 돌아온 것으로 족해..."라는 말을 던지고 무심하게 돌아서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이미 3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은밀한 안가에서 성사된 두 사람만의 밀회.
그는 거칠게 찌아즈를 다루기 시작했다.
치파오를 찢어 버리고 혁대를 풀어 엉덩이를 후려치는 가학적인 행위는 원작에는 없는 리안 감독의 해석이었다.
이에 대한 찌아즈의 반응도 마조히즘이 깔려 있었다.
가해자와 또 다른 가해자가 공유하는 상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까지 담긴 성행위는 차라리 처절하기만 하다. 그것은 그가 떠난 뒤 처참하게 널브러진 그녀가 무서울 정도로 옅은 미소를 머금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보여주는 행위는 달랐다.
여성 상위 체위로 바뀐 섹스는 이글거리는 눈빛만으로도 이미 상대방에 대한 갈증을 표현하고 있었다.
시대의 희생양으로 살았던 찌아즈의 갈증이 <戒>가 아닌 <色>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섹스 후에 더 이상 붙어있기 힘든 자세로 서로를 밀착시키며 온 힘을 다해 껴안고 있는 것이었다.
이선생은 자신의 서재에서 또 그녀와 함께 타고 가는 차 안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의 말투는 그런 일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마치 연인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처럼 뱉어버린다.
이어서 행해지는 세 번째 만남의 섹스는
서로가 서로를 욕하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현실의 공포를 담고 있었다.
심지어 베개를 이선생의 얼굴에 덮고 진짜로 죽일 듯이 격렬하게 진행된다.
탕웨이를 캐스팅한 리안 감독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녀를 만난 후 더 이상 다른 배우들 오디션을 볼 필요가 없었다. 탕웨이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찌아즈였다."
오디션을 본 탕웨이는 어떤 차림, 어떤 연기를 선보였을까? 이에 대해 알 길은 없지만 탕웨이를 처음 만났던 또 다른 사람 - 브래드 피트의 얼빠진 표정으로 유추하면 어떨까?
탕웨이의 이러한 매력은 이선생과 함께 간 유곽에서 보여주는 춤과 노래를 감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노래를 마친 그녀 앞에서 냉혈한 이선생이 훔치는 눈물은 참으로 애잔하게 느껴진다.
이선생의 실존 인물 딩모춘(丁默邨)은 후난성 창더시(湖南省常德市 후난 성 상덕시)에서 옷수선과 표구점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가르친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정핑루이다.
1921년 상하이에서 노동자 봉기가 일으나자 친구의 권유로 사회주의 청년단에 가입한 후에 고향친구들과 함께 만든 조직에서 팀장 역할을 했다.
이후 국민당에 가입하고 광저우에서 중앙조직부 조사과에 근무하다가 1930년 정보부 수장이 되어 상하이로 파견되었다.
정국이 바뀌자 1938년부터 왕징웨이 괴뢰 정권에 포섭되어 국민당의 비밀 정보를 일본에 팔아넘기면서 일본 군부의 신임을 얻어 76호의 중앙위원으로 승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