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배신의 배신
영화에 등장하는 반지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찌아즈(佳芝)라는 이름과 반지(戒指)의 발음은 상하이 방언으로 거의 동음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선생이 선물하는 6캐럿짜리 '비둘기 알' 핑크빛 다이아 반지의 등장으로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촬영을 위해 파리 까르띠에 본사로 직접 찾아가 여러 차례 사정한 끝에 빌린 것이다)
반지를 직접 본 찌아즈의 눈빛은 여지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영화는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딩모춘과 정핑루 간의 실제 사건은 다이아 반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1939년 12월 21일 난징루의 러시아 모피점이었지만 영화의 다이아 반지 사건은 1941년으로 설정되었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모피점 모습이다. 가게 이름이 SIBERIAN FUR STORE이다.
이선생은 자동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그녀와 손을 맞잡고 점차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죽여주는 멘트까지 날려 찌아즈를 감동시키며 계(戒)에서 색(色)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아름답고 값비싼 다이아보다 그 다이아 반지를 뀐 당신의 손을 보고 싶었을 뿐..."
하지만 그는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준 그녀를 어쩔 수 없이 죽음으로 처단했다. 단지 심한 고문 없이 신속하게 처형하라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집으로 돌아온 이선생은 10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10시는 찌아즈와 그 일당들이 처형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눈을 감는 이선생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의 내용과 달리 딩모춘은 정핑루에게 즉각 처형을 지시하지 않았다. 3개월 동안이나 처형이 미루어지자 정핑루를 빨리 죽여야 한다고 나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딩모춘의 아내였다.
그래도 딩모춘이 미적거리자 그녀는 사람을 시켜 감옥에 있던 정핑루를 불러내어 길거리에서 총살을 시키고 말았다. 당시 정핑루의 나이 26세였다.
왕징웨이 괴뢰 정권은 1944년에 끝장이 났다.
왕징웨이는 일본으로 도망쳤다가 나고야에서 골수암으로 죽었다.
일본 정부는 왕징웨이의 시체를 중국 난징(南京)으로 보내 무덤을 만들었는데 무덤이 파손될지도 몰라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하지만 난징으로 다시 돌아온 장제스는 무덤을 폭파하고 유골을 산산조각 내어 양쯔강에 뿌려버렸다.
딩모춘은 장제스가 항복을 권하자 얼른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장제스의 수하들 중에 지인들이 많아 이들이 줄기차게 구명운동을 한 덕분이었다.
딩모춘의 변명은 이러했다.
"나는 항일투사이다. 내가 왕징웨이에 충성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충징 정부의 동지들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제스는 일단 딩모춘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일단 구속시키는 처벌을 내렸다.
아래 사진은 재판정에 선 딩모춘의 모습이다.
하지만 구속된 딩모춘이 감옥에 조용히 지냈으면 별일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온갖 핑곗거리를 만들어 감옥에서 빠져나와 시내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기도 했다.
이런 그들 언론이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재판이 속개되었고 1947년 사형을 언도받고 총살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