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강도를 만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처녀 구순이는 노새 한 마리를 받는 조건으로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이웃 마을 나이 많은 양조장 주인에게 시집을 간다. 이름이 리다토우(李大頭)인 신랑은 나이가 50세가 넘었고 문둥병까지 앓고 있었다.
가마꾼들 중의 한 사람 위잔아오(餘佔鰲)는 이미 구순이를 가마에 태우는 순간부터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강도들이 나타났지만 위잔아오는 용감하게 강도를 물리치고 구순이를 구출한다.
며칠이 흐른 후,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구순이를 납치한 위잔아오는 수수밭 한가운데서 구순이를 겁탈한다. 처음에는 저항하던 구순이는 결국 체념을 하고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구순이는 친정아버지에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구순이를 따라가며 위진아오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妹妹你大膽地往前走(여동생아 용감하게 앞으로 가거라)이다.
이 역시 감독 장이머우가 자신의 고향 싼시의 민요 가락에 가사를 바꾼 노래이다. 이 노래는 중국인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것을 자주 들은 적이 있다. 꽤나 인기를 끈 노래인 것 같다.
장이머우와 궁리의 관계에 대해 앞서 연재한 <패왕별희>에서 잠깐 소개한 바가 있다. 우선 두 사람의 연령차는 상당하다. 장이머우가 1950년생이고 궁리가 1965년생이니 15살 차이다.
1987년 여름 당시 33세의 장이머우는 산시 성 시안(山西省 西安)의 영화제작소에서 일하는 촬영기사였는데 가진 돈을 탈탈 털어 까오미로 가서 작가 모옌(莫言)을 만나 그의 소설 <红高粱家族>의 영화화 판권을 달라고 떼를 썼다.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하던 모옌은 장이머우가 정말 간절하게 매달리자 결국은 동의해 주었다. 영화의 내용은 전체 5부작 소설 중에서 1부의 내용만 담았다.
판권을 확보한 장이머우는 여주인공을 찾기 위해 베이징으로 와서 여러 곳에 수소문했다. 최종적으로 2명이 후보에 올랐으나 장이머우의 선택은 영화대학(中央戏剧学院)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궁리였다.
최종 후보 중 한 사람은 쓰커(史可)였다. 그녀 역시 영화대학에 재학 중이었는데 당시 3학년이고 궁리보다 한 살 많았다.
훗날 그녀도 대박 친 작품은 없지만 각종 드라마, 영화, 심지어 뮤지컬에도 출연하며 인기 연예인이 되었다. 얼굴이나 알고 가자. (그녀도 장이머우와 동거했다는 설이 있다)
장이머우가 언제부터 궁리를 침대로 데려갔는지는 당사자 만이 아는 일이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촬영을 시작할 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연인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이었지만 촬영만은 진심이었다. 장이머우는 연기 초짜인 궁리를 열심히 지도했고 궁리 역시 대학 시절의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장이머우를 향한 사랑에다 존경까지 더해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두 사람의 이런 관계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장이머우는 개의치 않았다.
"감독과 여배우는 작품에 대한 해석을 같이해야 한다. 특히 연기에 서툰 배우를 가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사람이 같이 생활하는 것이다."
이 무렵 장이머우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입원한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말 많은 중국 연예계는 또 한 번 시끄러워졌다. 궁리와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장이머우를 찾아와 폭행했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장이머우는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변명했다.
실제 사건의 내막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으로 노출된 것은 장이머우에게 보낸 궁리의 연서를 그의 아내 샤오화(肖華)가 집으로 돌아온 장이머우의 짐에서 발견한 것이다.
화가 난 샤오화는 장이머우게 따졌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자 두 사람의 관계를 세상에 폭로해 버렸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 사실은 궁리의 전 남자 친구도 알게 되었다.
화가 난 전 남자 친구는 먼저 학교를 찾아가 궁리에게 따졌고 이어서 시안의 촬영장, 산둥 까오미의 촬영장까지 돌아다니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은 숙소에게 자고 있던 장이머우에게 다짜고짜 폭력을 행사했다.
훗날 장이머우의 고백에 따르면 그때까지 궁리와 동침하는 관계는 아니었다고 했다. 아무튼 장이머우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었고 가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