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귀주 이야기>로 중국 이해하기

2. 남편의 부상

by 발길 가는대로

장이머우 감독은 <귀주이야기>를 구상할 때 이미 그의 영화 영화 3편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단번에 그의 페르소나(persona)로 자리매김한 궁리를 캐스팅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주연 치우쥐(秋菊)의 역할이 산골의 평범한 중년부인이었기 때문에 예쁘고 날씬한 궁리가 역할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궁리는 광고 촬영, 방송 출연 등으로 엄청나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궁리는 촬영팀이 현지에 도착하고도 한 달이나 지난 후 현장에 도착했다. 그마저도 그녀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독감에 걸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열도 많이 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궁리의 초췌한 모습은 분장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었다.


궁리의 상태가 오히려 영화에 도움을 주었다. 현장의 추운 날씨로 인해 궁리가 옷을 있는 대로 껴 입어 배불뚝이가 되었는데 이를 보고 대본을 급히 수정하여 임산부로 설정하고 목이 쉰 상태의 궁리 음성은 그야말로 시골 아낙네 그 자체였다. (촬영은 1992년 2월에 야외에서 시작되었다)

배불둑이.jpg

치우쥐가 남편을 리어카에 싣고 시내로 가는 이유는 부상당한 남편의 진단서를 끊어 촌장을 파출소에 고발하는 일과 사타구니를 다친 - 치우쥐의 표현대로 "要命的地方" 즉, 신체의 급소이자 목숨이 달린 남편 칭라이의 주요 부위 낭심의 상태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치우쥐가 가는 곳은 사실 도시가 아니라 시앙(鄕 향), 우리나라로 치면 면사무소 소재지이다. 중국의 행정 단위는 촌(村, 리) - 향(or 鎭, 면) - 시엔(縣, 군) - 쓰(市)의 순서대로 이다. 따라서 우리 식대로 표현하면 읍내로 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경우 면사무소 같은 것이 따로 없고 일반적인 주민등록 업무는 파출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치우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담당 이공안(公安: 이순경)을 찾아간 것이다.


공안국.jpg

영화에서 치우쥐는 설정상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을 가진 평범한 산골 아낙네이다. 따라서 언어 전달력이 매우 단순하다. 치우쥐가 나누는 남편과의 대화, 이공안과의 대화, 촌장과의 대화도 모두 장황한 수사가 없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단어의 나열이다. 더군다나 싼시 지방의 사투리를 사용한다.


이런 단순한 짧은 대화는 중국의 도회지 사람들에게 크게 웃음을 주었고 시골 사람들에게는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친근감을 느끼도록 만들어 영화의 흥행에 크게 일조했다.


마을로 찾아온 이공안이 나서 가해자인 촌장과 협상한 끝에 200위안(우리 돈 5만 원 정도)을 배상금으로 받아 치우쥐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이 돈은 촌장이나 치우쥐 모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해결책이었다.


사건의 내막은


치우쥐의 남편 완칭라이(萬慶來 만경래)는 자신이 경작하는 토지에 고추를 보관하는 창고를 짓고 싶었으나 촌장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촌장의 이유는 상부에서 이에 관한 문건(지시)이 있다는 것이었다.


칭라이(남편)는 그 문건을 보여달라고 했으나 촌장은 내가 왜 문건을 너에게 보여주어야 하느냐고 하면서 시비가 일어났다.


이에 화가 난 칭라이는 촌장이 딸만 셋 나은 것을 비꼬아 '혹시 그곳이 잘못된 것 아니냐'라고 빈정거렸고 이 말을 들은 촌장이 칭라이의 사타구니를 발로 차버린 것이다.


촌장과의 대화.jpg 촌장과 만난 치우쥐


영화에서는 촌장과 치우쥐 두 사람의 말다툼이 참으로 기이하게 진행된다. 말다툼이라고 하지만 큰소리를 치는 법이 없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대화처럼 진행되는 말다툼이다.


촌장은 '네가 감히 촌장인 나에게 항거하느냐'이고 치우쥐는 '아무리 촌장이라도 사람을 구타할 수 있느냐'이다. 치우쥐는 아는 단어가 별로 없는지 자신의 논리를 슈오파(說法 설)라고 줄곧 얘기한다.


중국에서 이런 식의 표현은 한국에서 해석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도리, 원칙 이런 정도가 아니고 '사람의 이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치우쥐에 슈오파에 충돌하는 것은 촌장의 미엔쯔(面子 면자)이다. 중국인에게 이 미엔쯔는 참으로 중요하다. 왕왕 한국식으로 '체면'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는 실로 단순한 생각이다. 어쩌면 목숨과 바꿀 정도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을 칠 놈이 있나"라는 표현은 이마에 경(鯨) 자를 새기는 형벌이다. 얼굴을 깎이는 것은 그야말로 중형 중에서도 큰 중형이었고 사회적인 낙인이 찍혀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낙인.jpg


작가의 이전글영화 <귀주이야기>로 중국 이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