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귀주이야기>로 중국 이해하기

3. 고소장

by 발길 가는대로

현의 파출소 공안은 취우쥐의 고소를 건성으로 취급한다. 무식한 시골 아낙네를 무시하는 태도이다. 말투에도 약간 빈정거림이 묻어있는 것 같다. 접수 후 5일 내로 답을 줄 것이고, 만약 불복한다면 다시 상소할 수 있다는 형식적인 절차를 알려줄 뿐이다.


이공안이나 현의 공안국 담당자들 모두 성의 없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치우쥐의 항변은 "나는 그래도 중학교는 다녔다"이다. 긍지 가득 찬 항변이다. 이는 치우쥐의 말이 맞는 말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치우쥐 정도의 학력 - 중학교 중퇴는 고학력에 속할 정도로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의 이런 학력 때문에 그 자신의 슈오파(說法 설법)를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아무런 지식이 없는 무지렁이였다면 이마저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법 체계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치우쥐는 정식으로 소장을 접수하기로 하고 대필하는 장 씨를 찾아간다. 공안국 앞에서 소장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그는 나름대로 법 전문가로 자칭하지만 그의 말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장 씨의 말에 따르면 촌장의 죄는 살인미수죄에 해당한다고 하고 자신이 만들어준 소장 6개 중에서 4개가 사형을 받았고 2개가 무기징역을 받았다고 큰소리친다.

소 장대필.jpg

수천 년 전부터 중국인의 사상과 문화를 지배해 오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공자와 맹자의 '유교(유가) 사상'이다. 억지로 하나 더 얘기하면 '불교 사상'이라고나 할까...


'유교 사상'은 모든 현상을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유교 경전에는 하늘, 죽음, 귀신 이런 것들이 없다. 다시 말하면 유교에는 '비현실적인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대신 인간 세상의 효, 수양, 교제, 교육 등과 같이 '현실적인 것'을 중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의 '미엔쯔'는 어디에서 왔을까?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둔 유교 사상에는 '내세'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죽음'을 해석하는 데 애를 먹는다. 대신에 '현세'에서 '이름을 남기는 것'을 중요하다고 여긴다.


문화 대혁명 당시 군중들 앞에 죄인들을 잡아놓고 형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자아비판'을 하도록 했다. 그 순서는 이렇게 진행된다.


죄인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스스로 내뱉는다 - 군중들이 죄인의 죄를 더 추가한다 - 다음 날에도 같은 형식을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더 진행하다 보면 죄인의 죄는 엄청나게 불어나 있기 마련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미엔쯔.jpg


그림 속에 적혀 있는 '死要面子 活受罪' 이 말의 뜻은 '죽을 만큼의 고통이 있어도 미엔쯔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생고생을 하더라도 미엔쯔는 지켜야 하는 것이다.


치우쥐와 촌장의 충돌을 이공안은 200위안의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짐작하면 중견 간부의 1개월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촌장이 돈을 바닥에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10원짜리 돈으로 던졌으니 돈을 주우려면 스무 번 엎드려 절하고 가져가라는 의미이다. 행정관료로서의 오만함과 미엔쯔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공안의 해결 방안과 촌장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치우쥐는 농사지은 고추를 판 돈으로 이제는 현(縣, 군청 소재지)로 향한다. 상급 기관에 다시 고소하기 위해서이다.


<귀주이야기>는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이다. 작가 천우엔빈(陳源斌 진원빈)의 중편 소설 <萬家訴訟>이 원작이지만 중요 부분을 장이머우가 따로 각색을 했다.


그리고 요즘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몰카 기법으로 촬영한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현지 사람들의 50% 정도 (실제로는 거의 70%에 가깝다) 이상을 자신이 영화에 출연하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필름이 돌아갔던 것이다.


이로 인해 촬영을 거듭하다 보니 일반 영화 촬영분의 거의 5배에 이르는 10만 자(尺 척, 자=33.3cm) 길이의 필름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하는 전문 배우는 4명 정도에 불과하다. (치우쥐 외에 그녀의 남편, 촌장, 이공안) 그리고 치우쥐에 항상 같이 다니는 남편의 동생(올케)역의 양류춘(楊柳春) 역시 배우가 아니라 현지에서 캐스팅한 사람이다. 나머지 가족들 역시 촬영이 진행되던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양류춘의 경우 영화에 출연하고 유명세를 탔지만 대학 시험에 여러 번 낙방한 후 시장에서 만두를 구워 팔기도 하고 식당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평범한 남자를 만나 평범한 시골 아낙네로 살고 있다고 한다.


양류춘.jpg


촬영을 몰카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장이머우는 본격적인 촬영이 진행되기 두 달 전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데리고 촬영지 宝鸡市 陇县 天城镇 石尧村(보지시 용현 천성진 석요)으로 가서 현지 생활 체험을 하며 주민들과 얼굴을 익히고 그들의 말투와 생활 습관을 연구했다.


그리고 주민들이 당황하지 않고 카메라에 익숙해지도록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필름도 없는 카메라를 매일 3대씩 동원하여 촬영했다고 한다.


실제 촬영이 시작될 때도 아무런 싸인 - 레딧 고 혹은 컷 같은 지시도 없이 진행했다. 따라서 배우는 물론 주민들조차 언제 촬영이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 지도 몰랐다.


심지어 치우쥐와 시누이 동생이 사람이 많은 시장통이나 거리에서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고 단지 몸에 장치한 무선 수신기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로 연기가 시작되었고 이 메시지도 단순하게 '우측으로 걸어라' 혹은 '뒤로 돌아봐라' 정도에 불과했다.


촬영 초기에 치우쥐에 함께 하던 시누이 동생 양류춘의 행동이 하도 부자연스러워 같은 촬영을 스무 번 넘게 찍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양류춘이 하도 울어서 궁리까지 덩달아 울기도 했다.


영화를 보다가 빵빵 터지는 웃음 코드가 출현진들이 나누는 대화에 있다.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유독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중국에 상영될 때 중문 자막이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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