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귀주이야기>로 중국 이해하기

4. 치우쥐의 끈기

by 발길 가는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공안(경찰)들이 의외로 친절하다. 내가 알기로 중국의 공안은 이처럼 친절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중국 공안들은 도시 혹은 농촌을 막론하고 (아무래도 농촌이 더 심하기는 하지만) 민중들에게 상당히 고압적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안들의 친절한 민원 처리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 정도로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귀주이야기>의 한국 개봉일은 1994년 10월 8일이었다. 중국과의 수교일일 1992년 8월 24일이니 한국에서 중국 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점이었다.


중국의 농촌에서 몰카로 촬영하여 당시 중국의 농촌 현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였기 때문에 아마도 중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중국의 현실이 드러난 영화이지만 대부분의 중국 영화가 담고 있는 정치적인 색깔, 국수적인 표현 등은 전혀 없는 영화이다. 심지어 정치적 통제의 제1선에 있는 정부 측 관료나 공안조차도 이와 비스무레한 발언을 일절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당의 혜택, 혹은 체제의 우수성 등등)


치우쥐가 찾아간 현(县 시엔) 공안국의 판결은 "이미 향(鄕 시앙) 공안국의 조정을 거친 안건이고, 또 쌍방이 대동소이하게 잘못을 인정한 상태에서 안정과 단결을 중시하기 위해 1차적인 경제적 손실부담 조정안을 그래로 유지하고 의료비, 치료비 등은 왕시엔탕(王善堂 왕선당) 촌장이 부담하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현 공안국의 이러한 조정 내용은 치우쥐나 촌장 모두에게 만족한 결과를 주지 못했다. 특히 촌장은 치우쥐의 고소로 인해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갔다. 즉, 미엔쯔가 여지없이 구겨졌다고 생각했다. 이는 치우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적 배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촌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 중국에서는 이를 '認錯'(런추오, 인착)이라고 한다 - 먼저이고 자신의 남편이 욕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촌장이 폭력을 행사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촌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버스타기.jpg 버스를 타야 하는 먼 길을 떠나는 치우쥐

결국 치우쥐의 선택은 더 높은 상급 기관(시 공안국)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제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길이 남아 있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이해가 된다.

시 공안국 위치.jpg 녹색 출발점이 치우쥐의 집, 파란색 점이 현, 빨간 점이 시 공안국이 있는 곳

치우쥐와 그녀의 시누이는 아마도 처음 가보는 도회지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그래서 두려운 곳이지만 그래도 가야 하는 곳이었다.

버스 안.jpg 치우쥐의 눈은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

치우쥐에게 시 공안국을 소개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는 그녀가 묵고 있던 값싼 숙소 공농여사(工农旅社 여인숙)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법리에도 밝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여인숙이 공안국과 가깝기 때문에 송사에 얽힌 사람들이 많이 묵는 곳이었던 것이다.


내가 베이징에서 목격했던 얘기를 소개하면, 베이징의 CCTV에서 일종의 민원처리 '신문고' 같은 억울한 사람들의 사정을 폭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방송국 주변의 두 여관이 항상 만원이었다.


한 여관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주로 묵는 곳이었고, 또 다른 여관은 이 사람들의 투서를 막으려는 지방 정부의 공무원들이 묵는 여관이었다.


촬영 중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치우쥐와 시누이 메이쯔가 상점에서 옷을 사 입고 나오면서 잠깐 거리 모습을 비춰주는 장면 중에 솜사탕을 먹고 있는 여인이 약 4초간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솜사탕녀.jpg 솜사탕 녀 지아구이화(贾桂花)

이름이 贾桂花(지아구이화)인 그녀는 1992년 2월 宝鸡市에서 몰카로 촬영된 장면에 등장하는데, 그녀는 초상권 침해와 명예 훼손으로 영화 제작사를 고소했다.


그녀는 천연두를 앓아 곰보 얼굴인데, 영화를 본 친지와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정신적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베이징 법원에서 진행된 이 소송 전은 1심에서 원고의 소송이 기각을 당했으나 지아구이화가 불복하여 2심에 상고한 후 법원의 조정으로 피고 측이 원고 측에 3,500위안을 지불하고 원고는 법원의 판결에 동의한 후 상고를 취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중국 인터넷에서 '궁리'를 검색하면 가장 많은 연관 검색어가 '장이머우' 감독이다. 아주 오랜 기간 두 사람의 관계는 중국 대중들의 관심사였고 또 그만큼 풍부한 얘기거리를 만들어냈다.


궁리와 장이머우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87년이었다. 1950년생인 장이머우가 37세, 1965년생인 궁리가 22세가 되던 해이다. (궁리의 생일은 12월 31일이다)


궁리는 야오닝성(遼寧省) 선양(瀋陽)에서 출생했지만 1세가 되기 전에 가족들이 전부 산둥 성(山東省) 지난(濟南)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적부터 뛰어 난 몸매와 이쁜 얼굴로 인해 재학 중에도 연극, 문예 활동에 참여하고 지방의 TV 방송국에 출연하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 선발고사에서 두 번이나 떨어지자 1984년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잠시 출판사 임시공으로 일을 하다가 1985년 다시 대학 선발고사에 응시했으나 아깝게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베이징의 중앙희극학원(中央戱劇學院, 예술 전문대학) 교수진의 도움으로 특별 전형 자격을 얻고 입학할 수 있었다.

궁리와 장이머우.jpg

1987년 당시 장이머우는 자신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첫 작품을 위해 거금 800위안을 주고 <붉은 수수밭(紅高梁)>의 판권을 구입한 후 여주인공 역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중이었다.


원작 내용 중에 여주인공을 묘사한 '풍만한 가슴과 큰 엉덩이(丰乳肥臀)'에 어울리는 배역 궁리를 만났을 때 그는 마침내 딱 맞는 배우를 만났다고 뛸 듯이 기뻐했다. 당시 궁리는 중앙희극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장이머우와 궁리.jpg

장이머우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이미 뛰어난 배우였다. 이런 장이머우에게 연기 지도를 받으며 궁리는 '붉은 수수밭>에서 신인 치고는 엄청난 연기력을 선보이게 되었다.

연기지도중인.jpg 궁리에게 연기 지도 중인 장이머우

한 사람은 감독의 재능을 숭배하는 마음이 사랑으로 변하고, 또 한 사람은 여배우의 연기 재능에 감동하며 사랑으로 변한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 촬영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문제는 장이머우에게 있었다. 이미 아내와 딸을 가진 기혼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는 그의 딸과 아내에 의해 세상에 폭로되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장이머우의 짐 속에서 궁리가 보낸 편지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절절했다.

"你走了,把我的心也带走了…"(당신은 떠났군요, 나의 마음도 가져갔어요..." 이렇게 시작된 편지는,


"我认为人要活的自在,要勇敢地去追求幸福、爱情,你应该得到幸福和爱情……我想结婚, 我希望能得到答复, 我期望上天赐给我幸福…"

(사람은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행복과 사랑을 용감하게 추구해야 해요. 당신은 행복과 사랑을 얻어야 합니다. 저는 결혼하고 싶어요. 회신을 기대합니다. 나는 하늘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합니다)


장이머우는 이때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장애가 남아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영화<귀주이야기>로 중국 이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