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법원으로 가다
시 공안국에서 답변이 왔지만 판결의 내용은 원래의 보상금 200위안 외에 50위안이 더해져 배상금이 250위안이라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이 없었다. 치우쥐는 남편이 촌장에게서 받아온 250위안을 다시 촌장에게 돌려주기 위해 촌장의 집으로 갔다.
촌장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기세가 더 등등했다. 촌장에게 무시를 당한 치우쥐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공안국장을 찾아가 변호사를 소개받고 자신의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가 정식 소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 치우쥐의 패소였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공안국장에게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영화에서 치우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마다 들려오는 삽입곡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음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는 효과가 있다. 즉, 치우쥐의 고소 행보가 여전히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담고 있는 셈이다.
이 삽입곡은 장이머우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자주 애용하는 중국 서북지방의 독특한 민요가락 '關中碗碗腔'이라는 곡이다. 제목의 의미를 해석하면 '그릇의 구멍을 메우다'이다. (중국의 그림자 종이 인형극의 배경 음악으로 자주 이용된다. 장이머우의 영화 <인생>에서도 삽입된 곡이다)
치우쥐가 만난 도시의 세계,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일이 해결되는 방식은 도무지 그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세계였다. 비록 어리석은 그녀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고 영화의 관객들에게도 웃음을 주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1987년 여름밤,
영화 <붉은 수수밭>이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산둥 성 고밀현의 정부 초대소(여관)에 궁리의 전 남자 친구가 몇 명의 건장한 청년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 남자 친구는 며칠 전 이곳에 궁리를 만나러 왔었기 때문에 익숙한 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궁리가 묵고 있는 방으로 다가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궁리를 불렀다.
이 소리에 놀란 같은 층에 묵고 있던 촬영 스태프들이 잠에서 깨어나 상황을 살피던 중에 궁리의 방문이 열리고 건장한 남자들이 문을 낚아채고 일시에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욕설과 함께 궁리의 울부짖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이에 놀란 사람들이 일제히 방으로 들어가자 궁리의 남자 친구는 장이머우의 머리채를 잡고 두들겨 패고 있었고 궁리는 그 옆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달려들어 이들을 떼어 놓으려는 순간, 궁리의 남자 친구는 발로 장이머우의 가슴과 다리를 걷어찼다. 장이머우는 통증으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래 사진은 고밀현 인민병원의 병상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보다시피 장이머우의 머리는 장발이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장이머우는 퇴원을 했고 다시 촬영이 진행되었다. 장이머우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멍든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내용 중에 일본군의 강요에 의해 백정이 사람의 인두겁을 벗기는 장면이 나오는 데, 월래 대본에는 이 장면이 너무 잔혹하다고 여겨져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대본을 변경했다. 하지만 장이머우는 폭행 사건이 있은 후 다시 이 장면을 인두겁을 벗기는 장면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대본과 달리 진행된 이 장면은 어쩌면 장이머우가 당한 폭행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관계자의 전언이 있었다. 그리고 장이머우는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이후 다시는 머리를 기르지 않았다.
<붉은 수수밭>이 완성된 후 장이머우는 전처 샤오화(肖华)와 이혼 수속을 마쳤다. 다음 해 장이머우와 궁리는 또 하나의 작품에 돌입했다.
이번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장이머우, 여자 주인공은 궁리가 맡았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할 때는 <진용 秦俑>이었지만 원제는 <古今大戰秦俑情 고금대전진용정>이다.
사실 당시의 장이머우는 궁리와 결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수년간 전처와 이혼 소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생각은 변해갔다. 궁리에 대한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것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혼을 결합이나 축복이라는 생각보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굴레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는 전처와의 기나긴 이혼 소송, 또 전처가 자신과 궁리와의 관계를 폭로하여 이로 인해 빚어진 폭행사건 등이 그의 마음을 바꾸게 했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궁리였다. 나이는 이미 30이 되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채근도 점점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 두 사람이 영화 <트라이어드(중문 제목 搖呀搖! 搖到外婆橋)>를 촬영하고 있을 때 촬영장으로 궁리의 둘째 오빠가 찾아왔다. (궁리는 다섯 형제 중의 막내이다) 장이머우는 장소를 옮겨 궁리의 오빠와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왜 결혼하지 않느냐?"라는 오빠의 물음에 장이머우는 "전혀 생각이 없다. 결혼이라는 것이 종이 한 장으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 종이 한 장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라고 했다고 한다.
<트라이어드> 촬영이 끝나고 1995년 1월 제작발표회 때, 장이머우 감독 옆에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할 궁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장이머우는 "궁리와 헤어졌다"라고 답했다.
이후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장이머우는 호주로 피신하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고 궁리는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루부터 6개월 후, 궁리에 대한 결혼 얘기가 쏟아지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결혼 상대로 거론된 사람은 싱가포르의 사업가 황허상(黃和祥)이었다. British American Tobacco의 아시아지구 담당 총재였던 그는 장이머우와 같은 나이의 싱가포르 사람이었다.
1996년 2월 15일 궁리는 황허상과 홍콩에서 결혼식을 거행했다. 들리는 말로는 장이머우는 지인들에게 궁리의 결혼을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