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생>으로 중국 이해하기

1. 장이머우 최고의 영화

by 발길 가는대로

1994년 제작된 영화 <인생, To Live, 活着, 산다는 것>은 장이머우 감독에게는 애증의 산물이며 내게는 장이머우 감독과 궁리의 출연 작품 9편 중에서 최고로 꼽는 영화이다.

궁리의 식사.jpg 촬영 당시의 장이머우 궁리

하지만...

이 영화는 그의 작품 중에서 당국의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해 영화관에서 공식 상영되지 못한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2008년 광둥 성 심천 보안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어 논란이 있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장이머우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맡았기 때문에 정부에서 해금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 보도를 내었으나 이는 방송국 관계자가 <인생>이 방송금지 영화인 줄 모르고 실수로 방송에 내보낸 것이었다. 일종의 해프닝...


<인생>이 중국에서 방영 금지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이 정도를 가지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장이머우가 쉬화(余华)의 원작 소설을 만들면서 중국 정부의 영화 정책에 대해 몰랐을 리가 없다. 따라서 그는 영화의 내용을 소설의 내용이나 실제 과거의 역사적 사실보다 훨씬 순화시켰지만 그래도 당국의 제재를 피할 수가 없었다.


영화에는 그야말로 중국의 과거 - 1927년부터 1949년까지 벌어진 좌우익의 충돌과 국공내전(국민당군과 공산당군의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전쟁사와 더불어 개혁 개방이 시도되는 1980년대까지 중국의 흑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영화에서 푸궤이가 롱얼(龙二)을 상대로 하는 도박은 파이지우(牌九)라고 하는 골패(骨牌) 도박의 일종이다. 마작패와 비슷하지만 마작이 4명이 한 조로 이루어하는 도박이지만 파이지우는 1:1로 승부를 가린다. 한국에서는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일본 유학에 실패하고 돌아와 한때 골패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장이머우는 지방 출신이지만 그래도 고향에서는 꽤 알아주는 식자 집안의 자제였다. 할아버지는 지금의 베이징대학 전신인 연경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었고 부친은 국민당 장교를 지내다가 공산당군에 투항하여 하급 관료를 지냈다.

12_18세_장이모우.jpg 18세 고교생 장이머우

1982년 베이징 영화학원에서 촬영을 전공했던 그는 자신의 페르소나가 된 궁리와 함께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귀주이야기>를 연출하면서 최우수 작품상, 취우수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한창 주가를 올렸고 중국 영화를 국제무대로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인생>에서 칸 영화제 심사위원 상을 수상하고 주연배우 꺼유(葛優, 갈우)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했다.


이런 수상 경력 때문인지 모르지만 중국 내에서 극장 상영금지 조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비디오, CD로 판매하는 허가는 받을 수 있었다.


외신 기자가 중국 당국에 이 영화가 방영 금지된 이유를 묻자 정부 관계자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답했다.


훗날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이 중국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가 상영 하루 전에 취소된 이유도 '기술적인 문제'라고 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영화 <택시운전수>, <신과 함께>, <부산행>, <변호인> 등도 같은 이유로 중국 내 방영되지 못했다)


영화는 주인공 푸궤이(福贵)가 사람들이 가득 찬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어 마디의 대화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4-1도박판.jpg

“福贵少爷,您又输了。”

푸궤이 도련님, 또 지셨네요.

“嘿!一晚上都没开。”

아! 밤새도록 아무것도 안되네.

"这一阵子帐欠了不少,字也练得大有长进。"

(장부에 빚진 금액을 적으며) 빚이 늘었네, 글 솜씨도 크게 늘었고.


그리고 그림자 인형극이 영화 가득 채워진다. 주인공 푸꿰이는 그림자극의 노래도 능숙하게 부른다. 그는 도박에 중독된 부잣집 도련님 한량인 것이다.


청나라 말기부터 정부의 도박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도박은 궁궐은 물론 민간에게도 널리 퍼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도박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궁녀들의 도박.jpg 귀부인들의 도박

또한 이 무렵에는 영국의 아편 무역으로 도박장과 매음굴에는 아편이 독버섯처럼 자리를 잡아 도박과 함께 청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다. 다행인 것은 영화에서 한량 푸꿰이가 매음이나 아편에 중독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매음.jpg 청대 사창가의 창녀들 모습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림자극(皮影戱 피잉시)이 중국이 발원지인지는 불명확하다. 대략적인 추측으로 기원전 1,000년 경에 중앙아시아 혹은 인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한무제 때의 기록이니 아무튼 기원전 200년 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송나라 시절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지방마다 노래와 행태가 조금씩 다른 특색이 있다. 원나라 때는 원의 세력 확장에 의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22_그림자극_아이들.jpg

그림자극은 도회지보다 농촌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여름보다 겨울이 그림자극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는 모닥불을 피워 그림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정 무렵에는 풍년을 축하하고 신에게 복을 비는 동네잔치와 함께 공연되어 때로는 열흘 넘게 공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시국이 시끄러워지자 어두운 밤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두려웠던 일부 지방 정부는 그림자극을 금지하기도 했다. 또 그림자극 공연자들을 처벌하기도 했는데 이는 극단 관계자들이 지방을 옮겨 다니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이유였다.


1949년 공산 정권이 수립된 후 민간 예술 육성책의 일환으로 그림자극 전수자들을 다시 소집하여 합동 경연대회도 개최하고 우수한 극단은 외국 순례 공연도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림자극의 배경음악으로 영화에서 푸꿰이가 부르는 노래는 산시(陕西) 지방에서 300년 이상 이어지던 희곡 완완공(碗碗腔)의 음악이다. 중국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이며 실제 목소리의 주인공은 명인 리쓰지에(李世杰 이세걸)이다.

명인 이세걸.jpg

1992년의 영화 <귀주이야기>에서도 장이머우는 리쓰지에의 노래와 반주를 배경음악으로 삽입했다. 2023년 향년 90세로 사망했으며 계승자가 없었다.

이세걸과 장이머우.jpg

유튜브에 그의 마지막 공연 모습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pnbanNuZOI&list=RDjpnbanNuZOI&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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