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림자 같은 인생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에 그림자극을 등장시킨 것은 아마도 주인공 푸궤이의 인생이 그림자극의 인형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갈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푸궤이는 도박빚으로 집을 빼앗기고 그의 임신한 아내 지아전(家珍, 궁리 분)은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나버리고 만다. 푸궤이는 그림자극으로 인생의 재기를 노리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영화는 홍콩에서 최초로 개봉했다. 중국에서는 당국의 상영 허가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 제목은 '인생'이지만 원제는 '후오쩌(活着)'이다. 이를 영어로 To Live, 산다는 것, 또는 살아간다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원작인 소설의 제목도 <活着>이다. 저자는 1960년생 저장 성 항저우 출신의 위화(余華)이다.
1984년 24세의 나이에 과거의 중국 흑역사를 과감 없이 드러낸 이 소설로 말미암아 크게 인기를 얻고 중국의 90년대를 대표하는 제3세대 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소설의 내용이나 영화의 대사들이 매우 간결한 문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 아는 한자가 별로 없었던 탓이라고 작가가 고백했다.
우리가 아는 그의 또 다른 작품으로 <허삼관매혈기>가 있다. 이 소설은 2015년 한국에서 하정우 제작 주연으로 영화 <허삼관>으로 소개 되었다.
작가 위화는 소설 <후오쩌 活着>의 모티브를 미국의 민요 'Old Black Joe'에서 얻었다고 한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Old Black Joe'의 가사를 음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Gone are the days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내 마음이 젊고 활기찼던 때의 그날(세월)들은 가버렸다,
Gone. are my friends from the cotton fields away,
목화밭에서 일하던 친구들은 가버렸다,
Gone from the earth to a better land I know.
내가 알고 있는 더 좋은 땅(천국)으로 가 버렸다.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올드 블랙죠를 부르는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I'm coming, I'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머리를 푹 숙이고 나는 가고 있다, 나는 가고 있다,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 Old Black Joe.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올드블랙죠 노래를 나는 듣는다.
Why do I werp, when my heart should feel no pain?
내 가슴은 어떤 고통도 못 느끼는데 왜 나는 눈물을 흘리는가?
Why do I sigh that my friends come not again?
나의 친구들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왜 내가 슬퍼해야 하는가?
Grieving for forms now departed long ago,
오래전에 사라졌는데 왜 나는 지금 슬퍼(애도) 해야 하는가?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올드 블랙죠를 부르는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Where are the hearts once so happy and so free?
한때는 그렇게도 행복하고 그렇게도 자유롭던 마음(친구)들은 어디에 있는가?
The children so dear that I held upon my knee?
내 무릎 위에 안고 있던 그렇게도 소중했던 그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
Gone to the shore where my oul has longed to go.
내 영혼이 가고 싶어 했던(가고자 열망했던) 그 물가(천국)로 가버렸다.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올드 블랙죠를 부르는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장이머우가 위화의 소설 중에서 처음 접한 책은 <河边的错误 하변의 착오>라는 소설이었다.
책의 내용에 크게 감동을 받은 장이머우는 "당신이 쓴 책 전부를 읽고 싶다"라고 했다. 이에 위화는 아직 책으로 출판되지 않은 '活着’를 보여주었고, 원고를 읽은 후 당장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위화가 'Old Black Joe'를 듣고 묵묵히 살아가는 흑인들의 삶에서 감동을 받았듯이 장이머우도 소설 <活着>에서 온갖 풍파를 겪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푸궤이의 '평범한 인생'에 감동했던 것 같다.
인생이란 별것이 아니다. 사는 게 쉬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렵지만 그냥 연명하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것은 세월을 견뎌야 하는 것이며 그 세월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지만 세월이 주는 힘들고 고된 삶도 어느 순간에는 다 지나간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주인공 푸궤이가 아들을 업고 가며 들려주는 말, '병아리가 커서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되고, 양이 커서 소가 된다'라고 했을 때 아들이 '소가 된 다음에는?'하고 물었을 때 푸궤이의 대답은 '소 이후에는 공산주의가 된다.'였다.
얼마나 통렬한 비판인가!
아들의 대답 또한 걸작이다. '그럼 우리는 소를 탈 수 있겠네'였던 것이다. 푸궤이는 '그럼, 그럼... 살아있는 것이 좋은 것이야'라고 대꾸해 주었다. 푸궤이의 자조 속에는 자신이 겪어온 모든 지난날들이 녹아 있는 셈이었다.
자신의 삶과 재산을 도박으로 뺏어간 롱얼(龍二)이 반동 지주계급으로 몰려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그 자신이 본래 지주계급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하지만 푸궤이의 삶은 그대로 평범하게 머물게 하지 않는다. 다시 중국에 몰아친 민중운동 '대약진운동 大躍進運動'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1958년부터 시작된 급진적인 농촌 개혁)
1957년 스탈린의 뒤를 이은 소련의 지도자 흐루쇼프를 만난 마오쩌둥(毛澤東)은 흐루쇼프가 '소련은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다'라고 하자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그는 '중국은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자'라고 큰소리치면서 시작되었다.
영화는 제철 생산액을 높이기 위해 가가호호 모두 쇠로 만든 모든 것, 농기구는 물론 물레방아, 손수레, 수도 펌프, 파종기, 탈곡기 등 농업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장비까지 쓸어 담아 엉터리 같은 용광로에 쏟아부었다.
이뿐만 아니라 용광로의 불을 피우기 위해 집안의 가구는 물론 인근 산천의 나무는 모두 벌목되었고 심지어는 과수원의 과수목까지 벌목해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1억 명에 가까운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천지 들판을 돌아다니며 고철과 땔감을 찾으러 다녔고 이로 인해 농사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 밖에도 마오쩌둥이 '참새는 해로운 새'라고 규정하자 전국의 농민들이 동원되어 참새잡기에 혈안이 되어 삽시간에 중국의 참새가 멸종되고 말았다.
참새가 사라지자 참새의 먹이 파리, 모기가 창궐하고 농작물과 인간에 해를 끼치는 해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그 피해가 막심했다.
참새를 잡아 농산물이 증대했다는 보고를 하기 위해 엉터리 조작 사건도 발생했다. 벼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이 앉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일시적으로 높아졌던 생산액은 다음 해에 접어들자 모든 지표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한 민중들의 삶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처참한 생활이 이어지자 아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의 민중들은 아무런 항거도 할 수 없었다. 공산당이 두려웠던 것이다.
훗날 중국 정부는 흐루쇼프에게 사정하여 연해주의 참새 20만 마리를 공수해 왔다. 조선시대 때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연산군이 황새에 놀라자 전국의 황새를 잡는 운동이 벌어져 황새의 씨가 말라버린 것이었다. (연산군일기에 나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