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로운 가족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푸궤이는 고향에서 물배달을 하고 있는 아내 지아쩐과 마주친다. 그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그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농아가 되어버린 딸 펑샤(鳳霞)와 아들 요우칭(有慶)을 데리고 어렵게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의 아들은 어이없게도 학교에 가기 싫어 담장 밑에 숨어있다가 후진하던 트럭 때문에 담장이 무너져 깔려 죽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트럭의 주인은 자신과 함께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후배 춘셩(春生)이었다.
대약진운동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중국 대륙은 다시 한번 광기에 휩싸인다. 이른바 문화 대혁명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와는 상관없이 푸궤이의 일상은 계속된다. 춘셩은 미안한 마음에 푸궤이에게 좋은 일자리를 알아봐 주었지만 푸궤이는 부질없는 짓이라고 이를 거절한다.
어느덧 장성한 딸 평샤는 다니던 공장의 홍위병 지도자 얼씨(二喜)와 결혼을 한다. 얼씨 역시 공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지만 당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공장의 근로감독관이 되었다.
결혼식 장면이 재미있다. 결혼 예물은 마오쩌둥의 어록과 뱃지이고, 예복은 인민복, 축가는 마오쩌둥찬가가 동원된다. 춘셩이 푸궤이에게 결혼 선물을 보내지만 아내 지아쩐은 이를 돌려보낸다. 푸궤이가 말한다.
"이거 마오 주석님 초상화인데..."
이후, 사위 얼씨로부터 춘셩이 주자파로 찍혀 홍위병들의 비판 투쟁을 받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영화는 이를 통해 문화 대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문화 대혁명의 광기는 대약진운동보다 더 심하게 중국인들을 광풍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대약진운동이 중국의 경제를 망쳤다면 문화 대혁명은 중국인들의 정신세계와 사회질서까지 모두 파괴시켜버렸던 것이다.
전국 각지의 사찰과 비석, 불상이 파괴되고 다른 어떤 종교일지라도 일체 금지되었으며 모든 사찰의 스님이 환속했다.
심지어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고향 공자의 집과 무덤까지 파괴되었다. 집안에 소장하고 있던 구시대의 골동품이나 공예품들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졌다.
순식간에 전국의 문화유산이 남아나지를 않았다. 1958년 조사 당시 베이징의 문화국에 등재된 문물이 6,843개였으나 문화 대혁명 기간에 3,922개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아예 통계가 잡히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이 모든 파괴행위를 어린 학생들이 홍위병이 되어 주도하도록 했다. 스스로 홍위병 완장을 차고 학생들에게 힘을 보태어 주었다.
마오쩌둥이 어린 학생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대약진운동의 실패에 대한 부담으로 잠시 실각한 틈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다른 정적들(류샤오치, 덩샤오핑)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영화의 배경이 어떤 지방의 이야기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가장 많은 의견은 촬영지가 산둥 성이기 때문에 산둥 지방의 얘기가 아니냐는 것이고, 어떤 이는 항저우 지방에 유사한 얘기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훗날 장이머우는 티엔진(天津)을 가상의 지방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영화의 촬영지는 산둥 성 쯔보(淄博) 시 주촌고성(周村古商城)이었다. 현재 이곳에 가면 영화의 촬영지임을 증명하는 아무런 표식도 없이 상가가 조성되어 있어 촬영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영화가 중국 당국에 의해 상영금지된 탓인지 중국의 검색 사이트에서 관련 자료가 많이 없는 편이다. 또한 영화에 대한 감상문이나 평가에 대한 얘기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타이완의 사이트에 더 많은 자료가 있었다. 영화의 내용이 공산당의 과거 흑역사에 관한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자극의 소품들이 문화 대혁명을 겪으며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것은 그림자극의 인형처럼 자신의 운명이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조종되는 수동적인 삶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인형들이 불타는 것에 반해 소품들을 보관하던 상자가 끝까지 보존되는 것은 그래도 푸궤이의 삶이 계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문화 대혁명으로 타도되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에서 권세를 누리던 높은 사람 촌장이나 춘셩이었다. 이들은 문화 대혁명이 추구하던 '파구신립(破舊新立, 옛것을 파괴하고 새것을 세우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참!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영화에서 춘셩의 직위가 동장으로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발음이 취장으로 나오는데 중국어로 區長이다. 군수, 구청장급이다.
롱얼이 군중들에게 비참하게 끌려가 처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린 푸궤이가 황급히 집에 돌아와 아내 지아쩐과 함께 헤어진 인민군 전역증명서를 다시 붙이며 하는 말이 있다.
자막에는 '그럼, 그럼... 평민이 좋아'라고 나온다. 하지만 실제 대사 내용은 '가난한 게 좋은 거야. 평범한 사람보다 더 나온 삶을 사는 사람은 없어'라는 의미이다. 이 내용이 바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이며 메시지이다.
얼씨와 펑샤가 결혼할 때 부르는 노래는 1966년 문화 대혁명 초기에 나온 혁명가 중의 하나이다. 노래 제목은 '爹亲娘亲不如毛主席亲'이다. 이를 번역하면 '부친, 모친보다 마오주석이 더 낫다'이다.
장이머우 감독이 그 많은 혁명가들 중에 굳이 이 노래를 삽입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노래에 얽힌 사연 때문인 것 같다.
이 노래를 창작한 사람 리지에푸(李劫夫)는 마오 주석의 이인자로 군림하다가 1971년 마오주석에 반역을 저지르고 탈출하다가 죽은 린뱌오(林彪)의 반혁명집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그의 노래 역시 모두 반동분자의 노래로 낙인찍혀 금지되었다.
음악을 전공한 리지에푸는 선양(瀋陽)의 음악학원(학원=전문대학) 원장으로 재직하다가 1957년 '반우경화투쟁'에서 타도의 대상이 되어 엄청나게 고초를 겪었으며 이 고통은 문화 대혁명까지 이어져 홍위병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노래 한 곡을 만들어 순식간에 자신의 신세를 역전시켰다. 그 노래가 바로 '축복 모 주석 만수무강'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 한 곡으로 문화 대혁명 지도층의 주목을 받은 그는 잇따라 수십 개의 마오쩌둥 찬양가를 발표하여 당시 권력의 이인자였던 린뱌오까지 접견하여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마오에게 반역을 저지른 린뱌오의 칭찬을 받은 것이 다시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안타까운 사실 중의 하나는 공자의 문묘에 제사를 올리는 '제공대전(祭孔大典)'이 전수되지 못하고 소실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한중수교로 인해 한국과의 교류가 시작되자 한국의 석전대제(釋奠大祭)의 자료를 전수받아 재현해야만 했다.
중국의 사찰이 파괴되면서 사찰에서 전래되던 중국의 고대무술도 사라졌다.
원래 무술과 기예는 사제관계를 통해 전수되는데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이들이 모두 타도의 대상이 되어 전통 무술의 전승이 끊긴 것이다.
최근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여 중국의 무술이 창피를 당하고 있다. 중국의 한 아마추어 UFC 선수가 중국의 전통 무술을 계승했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하고 있다.
중국 무술의 고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두들겨 맞는 영상이 유튜브에 돌아다니고 있다. (유튜브에 '쉬샤오동과 무술고수'로 검색하면 된다)
얼시와 펑샤가 결혼할 때 거리에서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사탕과 담배이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중국의 어느 결혼식 피로연을 가든지 테이블에는 사탕과 담배가 풍성하게 놓여 있다.
사탕의 의미는 씨탕(喜糖)이라고 하여 감미로운 나날이 계속될 것을 기원하는 것이고 담배는 담배를 피운다를 중국어로 씨이엔(吸煙 흡연)이라고 하는데 이는 喜宴 혹은 喜緣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좋은 결혼, 좋은 인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