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6. <패왕별희> 혼탁한 세상

by 발길 가는대로

영화에서 원대인(遠世卿) 역을 맡은 배우 꺼어우(葛优)는 베이징 출신이다. 중국에서 공리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꺼어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최고인 배우이다.


5-1갈우.jpg 대머리가 인상적인 배우 꺼어우

베이징에서 살고 있을 때 나는 꺼어우와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었다. 나이도 나와 동갑이었는데 베이징 사람답게 입담이 대단했다. 그는 다작배우로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1년 내내 그가 출연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정도였다. 연기가 뛰어나 많은 감독들이 그를 찾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연기를 너무 좋아하는 배우였다.


이런 그는 각종 영화제의 단골 수상자이기도 했다. <패왕별희>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으로 주가를 올렸다면 다음 해인 1994년 꺼어우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활착(活着, 살아있네라는 뜻)이라는 작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참! 활착은 한국에서 인생(人生)이라는 다른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상대역은 역시 공리였다.


5-3갈우와_공리.jpg 칸 영화제에 나란히 선 꺼어우와 공리

부잣집 망나니 아들 역할인데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서양인들의 유머 코드와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는 중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이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지만 대사의 적절한 표현이 생활 중국어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활착' 역시 내용 중에 중국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으로 대약진 운동, 문화혁명 등의 흑역사로 그려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개봉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칸 영화제에서 꺼어우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탓에 부랴부랴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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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인생과 중국에서 개봉된 영화 활착의 포스터 제목은 다르지만 같은 영화이다.

<패왕별희>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경극 <패왕별희>로 이름을 날린 메이란팡(梅蘭芳)이다. 영화에서 장국영이 분했던 '청톄이'가 맡은 영화 속의 경극 우희 역할이 바로 메이란팡의 단골 배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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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우희로 분장한 메이란 팡.jpg
젊은 시절의 메이란팡과 우희로 분한 메이란팡

1894년생인 그는 1930년대 이후 황금기를 누렸는데 당시의 열악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공연 3차례를 비롯하여 미국, 소련, 유럽 등 세계 순회공연까지 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메이란팡은 홍콩으로 피신을 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총리 저우은라이가 직접 편지를 보내 가장 먼저 베이징으로 모셔올 정도로 당시 중국 문화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5-11주은래_경극단_바문_1950년_7월_6일_매란방을_경극연구원_원장으로_임명.jpeg 1950년 7월 6일 메이란팡을 만난 저은라이 총리는 그를 베이징 경극 연구원 원장으로 임명했다.

1961년 메이란팡이 사망하자 중국 정부는 그가 살던 집을 개조하여 지금까지 개방하고 있다. 혹시 베이징에 가게 되면 이곳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 구글 지도나 베이징 사람 누구에게든지 梅兰芳纪念馆을 물어보면 알려줄 것이다.

5-6매란방_기념관2.jpg 메이란팡 기념관 정문 모습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 <패왕별희>에 나오는 문화혁명(1965년~1976년) 발발 전에 죽었기 때문에 혁명의 광풍은 그와 상관없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그도 영화 속의 청톄이 처럼 시련을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일본군에게 시달리는 경극 배우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로 일본군에 협력하는 중국 경찰들에게 폭력을 당하는데 이로 미루어 짐작건대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가 남쪽으로 피신한 사이에 친일 성격의 왕징웨이(汪精衛) 괴뢰 정부 시절의 경찰로 추측된다.


하지만 왕징웨이 정권이 베이징을 통치하던 때가 1940년 이므로 영화의 시대적 흐름과는 조금 어긋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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