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7. <패왕별희> 패왕과 우희

by 발길 가는대로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들을 흔히 삼황오제(三皇五帝)라고 한다. 세 명의 황(皇)과 다섯 명의 제(帝)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의 얘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혹은 한국사의 단군왕검 얘기와 비슷한 전설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존재를 믿는 중국인들도 많은 편이다.


춘추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삼황오제의 글자를 따서 처음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불과 7년간의 황제 위를 누리고 죽고 말았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그가 죽자 중국 대륙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반란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들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王侯將相寧有種乎)라는 말로 전국적으로 민중 봉기를 일으며 세상을 혼란하게 했다. 이때 등장한 장수가 바로 항우(項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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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다)로 표현되는 그의 용맹 무쌍한 전투력은 실로 당할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패배를 모르는 장수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이런 그를 중국을 제패할 인물로 여겨져 사람들에게 '패왕(覇王)'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런 그의 행적은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의 역사서 <사기 史記>에 상세히 기록되었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은 편이다.


그는 용맹함과 더불어 잔인함으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경쟁자가 있었다. 바로 한나라의 장수 유방(劉邦)이었다.


두 사람은 각각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먼저 탈취하는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회왕이 말하기를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봉한다는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의형제 사이였던 두 사람은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전투하는 방법도 달랐다. 항우는 힘으로 성을 점령하는 반면에 유방은 적이 항복하면 살려주는 것으로 소문이 나서 진나라의 마지막 군주는 유방에게 먼저 항복을 하고 말았다.


항우는 뒤늦게 도착했지만 당초의 약속을 깨고 자신이 왕이 된 후 유방을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순각적인 기지를 발휘한 유방은 항우의 환심을 사는 계책을 발휘하여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유방은 게릴라 전으로 항우를 괴롭히고, 항우는 승리를 거듭했지만 실속이 없는 승리에 불과했다. 이는 인심을 얻은 유방의 군사가 갈수록 늘어난 반면에 항우의 군사는 나날이 줄어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항우의 초군(楚軍)은 유방의 한나라 병사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이때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의 계책으로 한나라 병사들은 밤마다 초나라의 노래를 불렀다. 고향의 노래를 들은 초군의 병사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나날이 전투력을 상실하고 급기야는 병영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는 바로 여기에서 탄생한 말이다.


시간이 흐르자 항우의 신변에는 그야말로 수백 명의 병사들 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 남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애첩 우희(虞姬)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되돌아보던 항우는 신하들과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해하가 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時不利兮騶不逝 때가 불리하여, 오추마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騶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虞兮憂兮奈若何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이에 대한 우희의 오언시 답가가 있다. 이른바 우희가(虞姬歌) 혹은 화해하가(和垓下歌)라고 한다.


漢兵己略地 한나라 병사가 이미 천하를 덮었고

四面楚歌聲 사면이 온통 초나라 노랫소리 들리니

大王義氣盡 대왕의 의기가 이미 다 했으니

賤妾何聊生 천첩이 더 살아서 무엇하리


노래를 마친 우희는 자신의 몸이 항우가 탈출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겨 항우의 칼을 뽑아 목을 그었다. 이별보다 죽음을 택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6-4항우와 우희.jpg 항우와 최후의 맞이한 우희의 모습


결국 항우는 죽을힘을 다해 탈출에 성공했으나 오강(烏江)에 이르자 자신을 따르는 장병이 수십 명에 불과한지라 항우는 이들 병사들을 억지로 배에 태워 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은 애마 오추마와 함께 강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


사실 항우를 따르던 애첩 우희에 대한 고사는 <사기>의 '항우본기(项羽本纪)에 불과 아래의 몇 자만 소개되고 있다.


有美人名虞, 常幸從... 自知大势已去,在突围前夕,不得不和虞姬诀别。이름이 ‘희’라는 미인이 있어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다… 항우는 대세가 이미 기운 것을 알고 밤중에 포위를 돌파하려고 했으나 부득이하게 우희와 이별해야 했다.


결국 <패왕별희 覇王別姬>의 경극 대사와 줄거리는 이 몇 자의 글에서 나온 셈이었다. '패왕별희'는 그야말로 '패왕이 희와 이별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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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주인공 청톄이가 샬로를 구출하고 차를 타고 떠난 뒤 일본군이 중국인을 처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찍은 곳은 유명한 자금성의 북문 앞 오문(午門) 광장이다. 자금성의 남문이 바로 우리가 아는 천안문(天安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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