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패왕별희> 우희와 청톄이의 비극
중국을 대표하는 단어에는 '한(漢, 汉)'으로 시작하는 말이 많다. 우리가 아는 한자, 한문, 한족, 한약 등등... 여기서 한(漢, 汉)은 바로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의미한다. 기원전 202년에 건국하여 220년까지 존재했으니 무려 400년 넘게 존속한 나라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을 좋아할까 아니면 4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패하고 죽음을 맞이한 항우를 좋아할까? 믿기지 않겠지만 압도적인 중국인 다수가 항우를 좋아한다고 한다. 두 사람의 생가를 복원한 유적지만 비교해도 그렇다.
유방의 생가는 2002년에 복원하여 전체 면적이 16,000m²에 불과하지만 항우의 생가는 무려 1935년에 복원했고 그 면적이 650,000m²에 이른다.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할 정도이다.
항우는 유방에 비해 출신 성분이 엄청 좋은 편에 속한다. 할아버지가 초나라 최후의 명장 항연(項燕)이었고 항우와 같이 살고 있던 작은 아버지 항량(項梁)도 오나라 땅에서 명망 있는 유지이자 유명한 장수였다.
항우의 패배는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는 4년간의 전투에서 무려 70여 차례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단 한번 패하여 불과 31세의 나이에 죽고 말았던 것이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국민당군의 사령관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다. 영화에서 그의 신분에 대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딱 봐도 엄청나게 신분이 높은 사람이다. 사실이 그렇다. 일본군이 물러나고 베이핑(베이징)에 파견되었던 국민당군의 인물은 바로 국민당 정권의 이인자 리쭝런(이종인李宗仁)이었던 것이다.
1945년 1월부터 1946년 7월까지 베이핑 지구 행영주임(行营主任)이었던 그는 전시였던 만큼 지역 사령관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종인이 경극을 좋아했다는 기록이나 메이란팡을 만났다는 흔적이 있는지 중국이나 타이완의 인터넷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중국의 최남단 광시성(廣西省) 출신이다. 남방 사람인 그가 베이핑의 전통 경극을 좋아했다는 설정은 영화만의 설정이었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당시에 경극을 본다는 것은 베이핑의 부유층 혹은 식자층의 최고 오락거리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일반 서민들은 경극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와 같은 것인지도...
참고로 사령관 역할을 맡은 배우는 감독 천카이거의 부친 천화이아이(陈怀皑 진회백)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아 장국영의 경극 연기를 도왔다.
영화 <패왕별희>는 초패왕 항우와 그의 애첩 우희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경극으로 풀어내며 이 희극을 연기하는 배우 청톄이의 비극적인 신세와 마음의 행로를 시공간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내용이다.
경극에 몰두할수록 자신이 맡은 '우희'라는 역할에 점점 빙의되어 가는 청톄이의 변화로 인해 샬로를 향해 우희가 죽음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면서 형성된 자연스러운 감정의 행로에다 자연적인 신체적 섭리까지 뒤틀리는 변화와 함께 자신에게 가해진 거역할 수 없는 폭력과 함께 그에게 가해진 인간의 잔인함에 죽음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 어린 나이에 당했던 청톄이에게 가해진 폭력과 함께 당시에 시대를 짓누르던 봉건적인 사상과 관습, 남성 제일주의에 희생되면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그의 몸부림이었다.
그의 몸부림을 통해 세기말적인 시대의 변모와 함께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과 양면성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은 인간성과 자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배역 청톄이를 연기하는 배우 장국영은 어떤 생각으로 이 배역에 임했을까? 비록 연기라고 하지만 여장을 한 남자는 몸을 비틀며 아양을 떨고, 교태스러운 손짓과 미소를 지어야 하는 그의 연기는 희황 찬란한 경극 속의 분장과 함께 어울리며 그의 미친듯한 연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본래 장국영은 엄청난 애연가였다.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배역에 몰두할수록 담배를 끊고 연기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턱수염은 남들에 비해 유독 빨리 자라고 무성한 편이었는데,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면도를 해야 했다. 그의 이러한 성실함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아니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