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배신자
16세기 무렵부터 미국의 동남부 플로리다 지역과 그 남쪽의 섬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특히 당시의 쿠바는 플로디다 해협과 멕시코 만으로 들어가는 항로를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은 쿠바에 일찍부터 사탕수수 농장을 조성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스페인의 국력이 쇠약해지자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내세워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개입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이에 쿠바는 미국을 믿고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미국 역시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치감치 1819년 플로리다를 스페인으로부터 구매하고 추가로 1.5억 달러를 제시하며 쿠바를 마저 구매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19세기에 접어들자 미국인들이 쿠바로 건너와 사탕수수 농장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자본이 점점 쿠바에 스며들었다.
쿠바의 독립전쟁이 격렬해지자 1898년 1월 25일 미 해군은 쿠바 거류 미국인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메인함을 아바나로 급파했지만 2월 15일 원인 불명의 폭발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이를 기점으로 6월 6일 스페인과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쿠바의 동쪽 관타나모 만의 요새를 함락한 후 지상군을 상륙시키고 반 스페인 게릴라들과 함께 순식간에 쿠바를 점령했다. 이때 점령한 관타나모 지역은 현재까지도 미국이 점유하고 있고 미국에 해악을 끼친 테러분자들을 주로 이곳에 수용하고 있다.
이후, 쿠바는 3년간의 미 군정을 거친 후 1902년 독립을 했지만 1959년 1월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거의 60년간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할 무렵의 쿠바 대통령은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였다.
영화에서 하이먼 로스가 마이클에게 하는 얘기 중에 위에 언급한 쿠바의 역사가 언급되고 있다. 하이먼 로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쿠바의 당밀이 플로리다에 판매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동시에 쿠바의 카지노까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이먼 로스는 마이클이 투자를 약속했던 200만 달러를 건네주기를 주저하면서 판탄젤리를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캐묻자 오히려 그는 <대부 1>에서 죽은 옛 친구 모 그린의 얘기를 하면서 마이클의 추궁을 빠져나간다. 모 그린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렇게 죽었다.
하바나에서 마이클이 타고 가는 차량은 Mercury Montclair Sedan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차량은 1955년 처음 출시된 초창기 모델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던 시점인 1973년은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가장 안 좋은 시기였다. 따라서 쿠바의 하바나에서 로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플라 감독이 하바나 대신 선택한 곳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 도밍고였다.
마이클이 하바나에서 묵는 호텔은 하바나의 Capri Hotel이지만 실제로는 산토 도밍고의 Royal Hideaway Hotel에서 촬영되었다.
하바나의 카프리 호텔은 1957년 개장 당시 250개의 룸을 가진 19층 건물로서 당시 하바나 최고의 호텔이었다. 당시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은 투자금 100만 달러 이상의 호텔을 지을 경우 세금 우대는 물론 정부 대출과 카지노 운영권까지 덤으로 주었다. 실제로 이곳은 마이애미의 마피아 패밀리가 투자하고 경영했다.
하이먼 로스의 실제 모델은 마이어 랜스키(Meyer Lansky)이다. 그는 마이애미는 물론 라스베이거스, 뉴올리언스, 바하마, 쿠바 등에 카지노의 지분을 갖고 있었고 거의 50년 동안 조직범죄의 일원이었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래 사진은 1958년의 모습이다.
하이먼 로스는 원래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다가 클레멘자의 소개로 비토와 친구가 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편집 삭제되었다)
로스와 비토는 금주령 기간 동안에 쿠바에서 당밀을 수입하여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 공급하는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그리고 이 사업에는 모 그린도 동업자였다. 삭제된 장면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ajFTPq0GgM
그는 사업을 확장하여 쿠바에서 호텔, 카지노 등의 사업을 하다가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도주한 후에 이스라엘 등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사실은 영화의 내용과 모두 일치하고 있다. 하바나에 Riviera Hotel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과 달리 미국으로 송환되어 폐암으로 병원에서 죽었다. 1983년 향년 80세로 죽었으니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도 살아 있었다. 그리고 모 그린의 실제 모델인 벅시 시갈을 영화에서는 마이클이 죽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은 마이어 랜스키였다.
그가 쿠바를 떠날 때 당시 금액으로 2천만 달러(현재 가치 2억 달러 이상)를 소유한 자산가로 알려졌지만 1983년 사망할 때 그의 재산은 57,000달러에 불과해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가진 돈은 대부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숨겨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 미국과 쿠바가 수교를 했을 때 그의 손자가 쿠바 정부에 압류된 호텔을 보상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쿠바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영화에서 하이먼 로스가 묵고 있는 호텔로 촬영한 곳은 산토 도밍고에 있는 1958년에 지은 Hotel El Embajador이다.
마이클이 보낸 히트맨 부세타(Bussetta)는 로스의 측근 쟈니 올라를 옷걸이로 목을 졸라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하이먼 로스를 죽이려는 찰나 갑자기 나타난 군인들에 의해 실패하여 오히려 죽고 말았다.
신년 파티장에서 프레도 형이 배신한 것을 알아차린 마이클이 프레도에게 낮은 음성으로 속삭인다.
"형이 했다는 거 다 알아. 형은 내 가슴을 찢어 놓았어.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고!"
(I know It was you, Fredo. You broke my heart. You broke my heart!)
이어서 마이클은 "로스는 아침이 오기 전에 죽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 하이먼 로스를 구한 것은 이 정보를 프레도가 흘렸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말을 마친 마이클은 프레도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는 마피아 조직에서 보스가 조직원에게 내리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의미한다. 이른바 '죽음의 키스(Il bacio della morte)'인 것이다.
하이먼 로스 역할을 맡은 배우는 Lee Strasberg이다. 그는 뉴욕에 있는 유명한 연극학교의 선생이자 마이클 역을 맡은 알 파치노의 연기 지도교사였다.
하이먼 로스와 같이 실제로 유대인이며 이 영화에 출연한 것도 알 파치노의 권유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아카데미상 남우 조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1959년 새해맞이 파티 장소인 바티스타 대통령궁으로 촬영된 곳은 산토 도밍고의 대통령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