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임스 본드의 아버지
007은 이안 플레밍(Ian Lancaster Fleming ,1908 – 1964, 향년 56세)에 의해 탄생한 인물이다. 작가인 이안 플레밍이 쓴 11편의 본드 소설은 007 시리즈 영화 27편을 탄생시켰고 모두 6명의 배우가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할을 했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와 접하고 있는 부유촌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9세) 소령 계급의 부친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서부 전선에서 사망하자 재능이 많았던 그의 형 피터의 그늘에서 성장했다.
네 형제 중 가장 노릇을 했던 맏아들 피터는 이튼과 옥스퍼드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외국 여행을 많이 하며 베스트셀러 책을 출간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이안은 형의 삶을 동경하기는 했으나 도무지 자신으로서는 쫓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이튼에 다니면서 학업보다는 운동에 몰두하고 여자 밝히기에 빠져 살았다.
이안의 모친 이브는 이안을 육군에 입대시켰으나 이안이 견디지 못하고 군 내부의 소란으로 그만두게 되자 다시 외무부에 취직을 시켰지만 이곳 역시 실력이 부족한 그가 있을 곳이 못되었다.
1927년, 20세가 된 이안은 외무부에 재취업하기 위해 모친의 소개로 오스트리아 키츠뷔헬에 있는 테네르호프(Tennerhof in Kitzbühel)에 보내졌다.
당시 이 학교는 전 영국 스파이였던 사람과 그의 아내(소설가)가 운영하는 작은 사립학교였다. 이안은 알프스 산악지방의 조그만 마을인 이곳에서 독일어와 스키를 배운 후 뮌헨과 제네바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외무부에 취직되지 못했고 대신 모친의 도움으로 1931년 로이터 통신에 들어가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 취재 신청을 했으나 거절하는 친서를 받기도 했다)
1933년 그는 은행에 입사하고 2년 후에는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의 바람기는 여전했다. (상대는 주로 귀족의 유부녀였다)
1939년 해군에 입대한 그는 해군 정보국장인 존 고드프리 제독의 부관으로 임명받아 중위 계급으로 복무하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불과 몇 달 만에 중령으로 진급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이안 플레밍이 군 생활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는 제독의 명령을 수행하며 전쟁 집행부, 합동정보위원회는 물론 총리의 참모진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고집불통으로 소문이 난 제독의 연락책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그는 독일 해군이 사용하던 에니그마 암호(Enigma codes)를 해독하기 위해 독일의 U 보트 내부에 설치되어 있던 에니그마 기계를 영국으로 가져오는 작전을 수행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 외에도 전쟁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보 작전을 지휘하며 능력을 보였고 전쟁 말기에는 해군 정보국장을 대신하여 극동지역(중국, 일본)까지 정보 수집을 위한 여행을 하기도 했다.
1942년 이안 플레밍은 자메이카에서 열린 영, 미 정보국 정상 회의에 참석했는데, 자메이카에 반해 전쟁이 끝나면 자메이카에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곳에서 사귄 현지 친구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살 땅을 구매했는데 1945년 자메이카 북부에 위치한 이 땅을 본 플레밍은 땅의 이름을 골든아이(Goldeneye)라고 불렀다.
1947년 덴마크 점령 기간 동안 덴마크에서 영국으로 탈출하는 덴마크 장교들을 도운 공로로 덴마크 국왕의 훈장까지 수여받은 그는 1952년 중령 계급을 끝으로 해군 정보국(RNVR, Royal Naval Volunteer Reserve 복무를 마쳤다.
이후 그는 기자 생활을 병행하며(사실 기자라기보다는 특파원들 관리 업무였다)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 그는 선데이타임스에 입사하는 조건으로 매년 겨울 3개월간의 자메이카 휴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1953년 4월 13 그의 첫 번째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이 출판되어 인기를 끌자 그는 1953년부터 1966년까지 전부 12권의 장편 소설과 2권의 단편 소설을 잇따라 발표했다. (2권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의 집필 활동은 자메이카 북쪽 해안가에 있는 그의 사유지 골든아이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1946년 자메이카로 돌아온 플레밍은 15 에이커(약 6만 평방미터) 부지의 해안가 절벽 끝에 집을 지었다.
절벽과 이어진 모래 해변은 현재 제임스 본드 비치로 불리며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
1956년에는 영국 수상이 한 달 이상 머물며 휴가를 즐길 정도로 수많은 명사들이 방문했던 이곳은 플레밍이 죽은 지 12년 후 1976년 음악가 밥 말리(Bob Marley)에게 잠시 매각되었다가 이듬해 크리스 블랙웰 (자메이카계 영국인, 음반 프로듀서)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블랙웰은 주위의 부지를 확장하고 빌라, 코티지, 해변 오두막 등을 추가하여 현재 고급형 휴양시설로 개조한 후 "Goldeneye Hotel and Resort"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이안 플레밍의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1억 권이 넘게 팔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문란한 여자관계, 심한 흡연과 음주 등으로 건강을 해쳐 1964년 8월 12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는 생전에 ‘Dr. No’(1962년, 살인번호)와 ‘From Russia with Love’(1963년, 위기일발) 등 2편의 영화 밖에 보지 못했다.
그의 묘지는 건강 악화 후 말년을 보내던 런던에서 서쪽으로 150km 떨어진 세븐햄튼(Sevenhampton)의 St. James's Church, Sevenhampton 교회 묘지에 있다. 그의 아내와 자식도 함께 이곳에 있다.
2011년 자메이카 정부는 골든아이 리조트 인근에 개장한 공항의 이름을 Ian Fleming International Airport로 명명했다.
아래 유튜브 영상은 본드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짜깁기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wG97do_D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