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본드의 위기
도박판이 진행되고 게임은 르쉬프의 독무대로 흘러간다. 본드가 계속 돈을 잃는 것을 보고 베스퍼가 힐난하자 본드는 르쉬프의 ‘블러핑’을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블러핑(Bluffing)은 허세 부린다는 의미이다. 영화 ‘타짜’에서는 아귀가 “이 씨발놈이 어디서 약을 팔아?”라고 했다.
1시간의 휴식 시간에 르쉬프를 찾아온 클라이언트 우간다의 테러리스트 스티븐 오반노(Steven Obanno)는 본드와의 격투 끝에 죽게 된다. 본드가 오히려 르쉬프를 구해준 셈이다.
오반노와 부하들과의 격투에 놀라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떨고 있던 베스퍼를 본드가 가만히 안아준다.
이 장면을 찍을 때 감독은 베스퍼가 속옷 차림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크레이그가 반대했다. 반대의 이유는 옷을 벗을 여유가 없어야 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크레이그의 말이 맞는 것 같지만, 그래도...
진짜 아프리카 정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무지막지한 테러리스트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 데 뱅골레(De Bankolé)는 프랑스 파리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석사 출신의 프랑스계 미국 배우이다.
그리고 매티스 역할을 맡은 배우는 이탈리아의 Giancarlo Giannini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배우, 성우, 영화감독, 영화 각본가 등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고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경력이 있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한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할리우드 영화에도 종종 선을 보인다. 영화 ‘한니발’에서 파치 경감 역할을 맡아 낯이 익었다. 5년 전 배역이니 좀 더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포커 게임에서 르쉬프의 블러핑에 속은 본드는 판돈을 전부 잃고 베스퍼는 500만 달러 추가 지원을 거절한다. 하지만 본드는 뜻하지 않게 미국 CIA 요원 펠릭스(Felix Leiter)의 도움을 받아 다시 게임에 참가하여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다.
본드가 즐겨 마시게 된 칵테일의 이름을 베스퍼라고 부르며 “한번 맛 들이면 딴 건 못 마시지”라고 한다.
“You know, I think I’ll call that a Vesper.”
“Because of the bitter aftertaste?”
“No. Because once you’ve tasted it, that’s all you want to drink.”
레시피는 영화 속에 등장한다. 본드가 포커 게임 중에 바텐더에게 하는 말이다.
"Three measures of Gordon's, One of Vodka, half a measure of Kina Lillet. Shake it over ice, and add a large thin slice of lemon peel."
흔히 본드 마티니로 알려져 있지만 IBA(International Bar Association, 국제바협회) 공식 명칭은 “Vesper”이다.
이안 플레밍의 소설 ‘카지노 로얄’에서 처음 등장하며 실제로는 플레밍의 친구 이바르 브라이스(Ivar Bryce)에 의해 만들어졌다. 원래 이름은 Besper이었는데 이를 잘못 듣게 되어 Vespa라고 했다.
르쉬프 역을 맡은 배우는 Mads Mikkelsen이다. 덴마크 출신인 그는 원래 체조선수이자 댄서였다. 이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타이탄’ ‘더 헌트’, ‘킹 아더’, ‘스타워즈 로그 원’ 등에도 출연했다.
영화 속의 르쉬프는 알바니아 출신 수학천재이자 체스 신동이었다. 그리고 우연과 확률의 게임인 포커 게임의 달인이다. 그는 왼쪽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Haemolacria라는 병을 앓고 있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백금으로 도금된 벤젠드린 흡입기(benzedrine inhaler)를 사용하고 있다.
헤모라클리아는 그냥 자궁내출혈처럼 생각하면 되고, 벤젠드린은 필로폰과 암페타민이 함유된 약품인데 만성통증 치료약으로 쓰인다. (그냥 중독성 있는 각성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자극성이 강해 2차 대전 당시 함선이나 전투기 조종사들이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많이 사용되었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병사들이 애용했다. 주로 알약으로 복용한다.
본드를 구해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본드카는 Aston Martin DBS V12 모델이다. 흔히 ‘애스턴 마틴 슈퍼레제라’라고 부른다. 2007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2012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 쉽게 말해 아직 출시도 안 된 차를 PPL로 제공한 셈이다.
참고로 후세대에 생산된 최신형 애스턴 마틴은 ‘Vanquish’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팔리고 있다.
본드와 대화를 나누던 베스퍼가 매티스의 문자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본드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매티스!’하면서 뛰어나가 베스퍼가 납치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는 장면은 약간 뜬금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차량으로 추적하다가 사고를 당한 후 르쉬프는 매티스가 자신의 친구였다고 알려주는데 그전 장면 어디에서도 매티스가 배신자라는 징후를 보인 적이 없었다.
본드는 과연 어떤 점을 떠올렸던 것일까? 길게 설명했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베스퍼가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한 근거가 무엇일까?’이다.
내가 가진 이런 의문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구글링을 해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팬덤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소개하면…
사실 이와 같은 장면은 소설 ‘카지노 로얄’에도 등장하는 장면이다. 단지 그때는 SMS가 아니라 웨이터의 메모 전달이었지만… 아무튼 본드는 매티스가 직접 베스퍼에게 뭔가를 알려준다는 사실에 위험을 직감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즉, 매티스는 몬테네그로에 파견된 MI6 요원으로 뒤처리에 관한 얘기를 나눌 것이 있으면 함께 레스토랑으로 왔을 것이고 또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도 본드 자신에게 직접 해야 하는데 베스퍼에게 얘기한다는 것은 MI6 요원이 일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사실 본드의 첫사랑 여인 베스퍼의 이야기는 향후의 007 시리즈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하기는 그렇지만 이쯤에서 또 하나의 사실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베스퍼가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에 관한 것이다.
사실 <카지노 로얄>에서 베스퍼가 첫 등장 때부터 착용하고 있는 옷도 목걸이가 돋보이도록 디자인된 의상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지금은 길거리 노점상들도 팔고 있는 이 디자인(알제리의 사랑 매듭)의 목걸이 “Algerian Love Knot”는 이 영화에 등장하기 위해 런던의 유명 보석상 소피 할리(Sophie Harley Studio)가 특별히 제작한 목걸이였다.
18K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오리지널 목걸이를 사고 싶다면 소피 할리의 매장에 가면 된다.
https://sophieharley.com/pages/bespoke-jewellery
바로 이런 목걸이…
참고로 본더카 애스턴 마틴은 사고가 나도 영화에서처럼 쉽게 구르지 않는다. 무게 중심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턴트 운전수는 차가 구르는 순간에 차량 뒷좌석의 에어펌프를 작동시켜야만 했다. (9바퀴 구른 것은 영화 사상 최고로 많이 굴러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포커 게임이 등장하는 영화가 한둘이 아니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긴장감은 정말 최고였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타짜’가 최고다. 물론 열연하는 배우들의 합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는 타짜 후속 편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아무튼 정적인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포커 게임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 특히 게임의 룰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질문에 감독의 말은,
“예전에 포커 중독자였던 제작자 마이클 윌슨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장면을 1분 만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PS. 본드가 포커 게임에서 싹쓸이하고 딜러에게 팁으로 무심코 던져주는 사각형 빨간색 칩은 50만 달러짜리이다. 소품으로 특별 제작한 칩인데 경매 시장에서 진작에 sold out 되었다. 대신 파란색 100만 달러짜리 칩은 현재 3,450파운드에 경매가로 나와 있다
팁을 받은 딜러는 (고마워하는 표정이 1도 없이) 덤덤하게 칩을 정리한다.
마치 이 정도 팁은 별것 아닌 것처럼…
갬블러들 사이에서는 본드의 팁이 너무 짜서 그렇다고 한다. (팁 액수가 1%도 안되기 때문에… 쩝!!)
하지만 본드의 신분이 정규직 국가공무원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