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에 어느 정도 영어가 편안한지 답장에 적어달라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 대학원 때문에 급하게 공부했던 영어시험의 흔적은 모두 휘발된 지 오래였다. 챗GPT를 켜고 아이엘츠 스피킹 테스트 가상시험을 돌려 보았다. 평가 영역은 네 영역이었다. 유창성과 어휘 수준, 문법과 발음 네 가지 영역을 평가했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당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사가, 시제에 따른 형태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챗GPT는 테스트 결과를 보여줬고 지난 3일간 매일 해 본 결과 결과는 항상 일관된 패턴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 부족한 영어는 유창성과 어휘 수준은 높았지만 문법적으로는 심각하게 오류가 많았다. 시제는 거의 항상 틀리고 있었고 이 피드백이 참 웃겼는데, 내가 전치사를 ‘직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치사의 사용을 암기하지 않고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은 것을 대충 골라서 끼워 넣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받은 영역이 있었는데, 서른 살 넘어 늦게 공부한 것 치고는 아직 15년 정도의 텀이 있는데도 많이 잊어버리지 않은 것, 무엇보다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과거의 에피소드를 현재의 인사이트와 연결시켜 하나의 구조를 짜는 능력이 좋다고 칭찬받았는데, 이것은 15년 전 영어시험 공부를 한참 할 때는 들어보지 못한 피드백이었다. 뭔가, 지난 십오 년간 모국어인 한국어도 늘었나 보다.
유학 전에 카피 일러스트레이터(그 당시 유행했던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의 스타일을 흉내 내서 그림을 그려서 일을 많이 했었다.)로 활동할 때는 듣지 못했던 인상적인 단어들을 대학원을 다니면서 듣게 되었다. 그 단어들이 아직도 나의 그림을 조금 더 낯선 눈으로 지켜보게 하는 데 도움이 크게 된다.
‘분위기 있는 (Atmospheric)’
공기와 움직임, 바람이 느껴지는, 물체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그려내는.
스케치 라인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흔들리고 자연스러운.
얼굴 형태, 몸의 비율, 정확히 구분되는 개성적인 인체의 효과적인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지금도 매일같이 선명하게 자각하고 있다. 내 그림 속의 인물들은 마치 존재하는 눈앞의 아이들이 아니라 ‘기억 속 아이들’을 그리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는 평가.
기술보다 감각과 감정이 앞서는 일러스트레이터인 것이다.
잠들기 전 피곤한 눈으로 아이엘츠 스피킹 테스트 표를 보다가 네 가지 영역에서 유창함이 제일 높고 문법이 최악인 성적표를 보다가 웃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내가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말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빵을 만드는 방식도 그렇다. 집에 버터가 없다면 그냥 찬장에서 아무 기름이나 꺼내서 대충 계량하지 않고 섞어 버린다. 먹을 수 있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늘 그런 식인 것이다. 정확성이라든가, 기술적인 정밀성, 엄격한 구조, 융통성 없는 규칙. 이런 것은 내 그림과도, 어쩌면 나의 내면과도, 또 어쩌면 앞으로 내가 밖으로 꺼내게 될 수많은 이미지와 이야기와도, 내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것과 그것들은 깊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전치사를 ‘직관적’으로 마구잡이로 사용한다는 것도 웃겼다. 나는 가끔 이상할 정도로 충동적으로 아주 쉽지 않은 이야기를 갑자기 꺼낼 때가 있는데, 지난주가 그랬다. 미리 계획하는 일 같은 것은 지금도 익숙하지 않은데, 또 이상한 게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그다지 오래 망설이지를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내 안에서는 이미 직관적인 결정이 빠르게 끝나 있었고 나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분명 이 일을 해봐서 네가 잃을 것은 없다고. 해보라고.
꽃샘추위가 슬슬 밀려가고 산책길 앙상한 나무 끝에 보송보송한 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봄도 지난해같이 직관적이고 마구잡이로, 봄바람에 흥얼거리며 무언가를 뱉어내게 될 것 같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