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읽지 않았다. 어려웠다. 그리고 시인들이 자주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드는 것도 싫었다. 가난한 것도 싫었다. 그림책이나 시분야가 큰 다른 점은 없으려나. 내 안에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고 단단히 눌러둔 것을 굳이 들춰보는 기분이 들어서 더 싫었다.
'나는 시집을 읽지 않는다'라고 오래전부터 선을 그어 두고 있었다.
연초에 처음으로 돈 주고 산 그 시집 한 권을 읽고 흠, 이런 거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추천으로 두 권을 더 샀다. 한 권은 번역서였다. 흠, 이렇군. 조금 더 이해하기가 나은 것 같기도. 그러다가 주변에서 한 사람, 두 사람, 그리고 인터넷으로 한 권, 좋아하는 책에서 언급돼서 한 권.
지금 집에 네 권의 시집이 있고, 어젯밤에는 박준시인의 책중에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모든 시집을 구매했다.
한 두 권 빠졌다면 다 구매할 것이다.
특히 박준의 아버지 이야기가 참 좋다. 나의 아빠는 그렇게 따시게 말로 표현하는 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박준 시인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꾸 우리 아빠 얼굴이 겹쳐진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고 마음이 자꾸 일렁일렁거렸다.
예전에 어떤 글쓰기 수업을 몇 달 들은 적이 있다. 강사의 아버지는 유명한 문인이셨다. 영화 '굳 윌 헌팅'에 대해 감정선을 분석해서 쓰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나는 천재만 아닐 뿐, 윌이 가진 미성숙한 감정의 근원을 영화를 보면서부터 다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과제를 참 열심히 써서 냈었다. 그 강사분은 과제를 받아보고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윌과 같은 불우한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의 윌의 심리를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이 영화가 참 어려웠다고 하셨다. 반대로 그분은 명성 있는 아버지 그늘에서 문인으로써 인정받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선망, 그리고 아버지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조심했던 경험이 있으셨다. '어 퓨 굿맨' 과제 시간에 나는 얼어붙었다. 나는 아버지를 기준에 두고 내 인생을 설계해 보거나 의식해 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가 앉아계시면 무릎에 얼굴을 묻고 몇 시간이고 같이 티브이를 보고 똑같은 장난을 쉬지 않고 며칠씩 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선명하게 선을 긋도 있었다. 아빠의 인간적인 나약함과 슬픔에 '영향받고 싶지 않다'라고. 나 혼자만의 다짐이었지만 그 약속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으니, 분명히 한 인간이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을 하는 것에 부모님과의 관계를 배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점점 확신이 든다.
그 과제를 수박 겉핧기처럼 겨우겨우 완성해서 내면서, 나는 그 강사분이 또 다르게 보였다. 우리는 모든 삶을 살아볼 수 없다. 하지만 공평하게 시간이 주어진다. 저분의 아버지와 보낸 시간과 내가 아빠와 보낸 시간이 공평하게 우리의 삶에서 어떤 자국을 만들어 냈을 거고, 거기서 얻은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깊고 넓게 다를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집의 가난이 배고픔이라는 단어로 체험될 만큼 힘든 적이 있었다. 나는 툭하면 끼니를 걸렸고 신체검사 시간에 선생님께 밥 좀 먹고 다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하루는 저녁에 늦게 일을 끝내고 들어온 엄마가 '이렇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라는 내용으로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자주 되새긴다. 한 번도 부모님과 집의 가난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어차피 시간 앞에 우리는 공평하다. 내가 겪은 것을 누군가는 전혀 겪어보지 못했을 테니까. 누군가의 경험이 더 귀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있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저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매일이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르게 쌓여가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엿볼 수 있는 인생의 진실은 어차피 매우 개인적인 것, 그게 전부이므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
19p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26p
서로 오해가 쌓여 그런 적도 있었고 물론 내가 명백하게 잘못한 일도 많았다. 분명한 것은 내가 들었던 욕이나 비난들은 대부분 말로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오해가 풀리거나 화가 누그러졌을 때 종종 상대에게 사과를 받기도 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사과는 말보다 글을 통해 받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짧은 분향이라도 사과와 용서와 화해의 글이라면 내게는 모두 편지처럼 느껴진다.
45p
이 미병의 시기는 치료가 수월한 반면 스스로 잘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나는 이것이 꼭 우리가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보다는 사소한 마음의 결이 어긋난 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고 만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 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앓는다. 특히 서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의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될 만큼 커다란 마음의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51p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56p
다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만은 잘 알고 있다.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61p
문학을 하든 문학을 하지 않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꽤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또 감내하게 만든다.
63p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하지 않게 돼.
65p
그동안 나는 참 많은 말들과 사람들과 시간들을 믿었다. 믿음이 깨지지 않은 말도 있었고 믿음이 더 두터워진 사람도 여럿이었으며 생각처럼 다가온 시간들도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경우에서 내 믿음은 해지고 무너지고 깨어졌다. 딛는 마음, 마음마다 폐허 같았다.
그렇지만 이 마음의 폐허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믿음들을 쌓아 올릴 것이다. 믿음은 밝고 분명한 것에서가 아니라 어둡고 흐릿한 것에서 탄생하는 거라 믿기 때문이다. 밤이 가고 다시 아침이 온다. 마음속에 새로운 믿음의 자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만큼 좋은 때도 없다.
69p
배추는 먼저 올려 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70p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74p
그러다 본인의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싶으면 그만 말을 맺으시고는 내게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자신이 말을 하는 시간과 상대방의 말을 듣는 시간이 사이좋게 얽힐 때 좋은 대화가 탄생하는 것이라 나는 그때 김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
80p
상대와 나의 감정이 비슷하게 차오를 때 우리의 관계는 연애와 사랑의 세계로 전환된다. 연애의 세계에서 그리고 사랑의 세계에서 관계는 더없이 충만하며 인자라고 아름답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감정이라는 불안한 층위에 겹겹이 쌓아 올려진 이 세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고 결코 영원하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는 곧 관계의 죽음을 맞는다.
눈을 감고 내가 가장 즐거웠던 한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 나의 눈앞에는 더없이 아름다웠던 연인이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연인의 정한 눈동자에는 나의 모습이 설핏 비쳐 보인다. 어쩌면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 사랑했던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나의 옛 모습일지도 모른다.
93p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대상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은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나에게 유일해지도 싶은 감정은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라면 부를 방법이 없다.
94p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평소 자신에게 조차 내색하지 않던 스스로의 속마음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게 오랜 상처나 열등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사랑을 외롭게 한다.
하지만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다면 사랑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당신의 외모와 성격과 목소리와 자라온 환경과 어떤 것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이 나와 다르다는 점에서 사랑이 탄생한다.
116p
극약이 곧 극독이고 극독이 곧 극약이라는 말은 수사가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가 몸으로 들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고 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마음으로 들이는 숱한 사람들과 관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18p
고민할 필요가 없을 만큼 비를 맞은 것이 차라리 후련했다.
그즈음 나에게는 온통 마음을 쓰며 고민해도 잘 풀리지 않던 일이 하나 있었다. 일이 변모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면과 가장 아쉬운 장면 사이에서 한없이 어지러웠다.
그러다 나는 가장 좋은 장면을 머릿소에서 지우고 가장 아쉬울 장면만을 떠올리기로 했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 그것이 꼭 아쉬운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길을 걸으며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도 잘 접어두었다. 어차피 우산으로 막을 수 있는 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는 더 쏟아지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
136p
나는 왜 거절도 못하고 이렇게 일을 받아두었을까 고민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기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한없이 우울해졌다. 가난 자체보다 가난에서 멀어지려는 욕망이 삶을 언제나 낯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140p
내가 아버지를 따라나선 날이면 넝마주이들은 낮 동안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로봇 장난감 같은 것을 내 손에 쥐여 주곤 했다. 하나같이 팔이나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것들이었다. 언제 한 번은 한쪽 눈이 없는 봉제 인형을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작은 단추로 없었던 인형의 한쪽 눈을 만들어주셨다.
145p
그분들은 저마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어떤 경지에 이른 인물들이었고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이상을 그려 보이는 사상가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혁명가의 면모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꼭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상까지는 못 되지만 사유하며 살아가고 혁명은 어렵지만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가닿고 싶어 하는 어른됨 또한 그리 비범한 것은 아니다.
148p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한창 힘들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 가지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준이씨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이 드세요.
161p
오랜 시간 보고 또 먹어온 몸에 밴 것이다.
그리고는 곧 슬퍼졌다. 다른 양념이나 부재료 없이 음식을 먹어야 할 때 초간장만한 것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득 담은 따듯한 밥 한 공기와 초간장 한 종지를 유년의 아버지에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내내 아프기만 했던 속이 조금 편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