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제로 즉흥적으로 두 시간 글을 써보았다. 꿈과 일상을 모아서
매일 가는 길이므로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릴 리는 없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 방금 전까지 집 근처의 익숙한 길이었는데, 내가 쳐다보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오래된 길들에서 볼 수 있는, 모서리가 마모된 네모지지만 동글동글한 돌들이었다. 그 돌들은 움직이면서 바닥을 깔고, 벽을 세우고 있었고 때로는 무릎 높이의 장애물을 만들고 있었다. 사선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되기도 했고, 그것은 보기에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막상 올라가려고 하면 보폭이 넓어져서 쉽지 않았다. 늘 지나가는 집 앞이니까, 안심을 했다. 그래서 조금 더 서두르면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돌릴 때마다 회색 돌들은 빠르게 회전하며 공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결국 집 바로 앞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매일 가던 내 집을 찾을 수 없다니.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눈을 떴다. 꿈이지만 기분이 나쁘다. 마음 한쪽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다. 이내 조금 슬퍼진다. 집 앞에서 집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는 꿈이라니.
다리를 쭉쭉 늘려보고 팔을 어깨 바깥쪽으로 꺾는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대충 바르고 모자를 쓰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바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방금 전 꿈속에서 길을 잃었던 친근한 다리를 지나, 사거리를 건너 고가도로 밑 홍제천이 이어지는 물길 근처로 천천히 달려 나간다. 겨울이라 길의 한쪽이 얼어있기도 해서 조심조심 걸으면서 음악을 틀었다. 아침부터 이소라라니. 선곡이 잘못되었다. 매우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팟캐스트로 넘어간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훨씬 나았다. 이른 아침에는 사람들도 자전거도 많이 없다.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길은 아직 해를 받지 않아 더 파랗고 서늘하다. 자전거길 옆에 초록길이 뛰는 사람을 위한 길이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길은 삐그덕 거려서 뛰기가 싫다. 얼음을 피해 초록길과 붉은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뛴다. 어플에서 시끄럽게 일 킬로가 넘었다고 큰 소리로 말해준다. 일 킬로가 넘어갈 때쯤 되면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한다. 살얼음이 언 한강이 나온다. 한강 위로 검정 오리 떼가 보인다. 날이 추워서 잘 움직이지는 않지만 여러 마리가 모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 더 가면 망원 유수지가 나온다. 망원 유수지에 3층짜리 건물인가? 아니, 2층인가. 한강 위로 새로 건축물을 새로 짓고 있었다. 언젠가 아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오면 이곳을 데려와야지. 아마도 카페 하나는 들어서겠지. 카페 통창으로 같이 한강을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다. 굴뚝이 보인다. 상수 화력 발전소의 굴뚝이다. 신기할 정도로 매일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의 모습이 다르다. 어떤 날은 까맣고 어떤 날은 밝은 회색이고 어떤 날은 길쭉하고 어떤 날은 바람에 휘청거리고 어떤 날은 사람의 얼굴 같이도 보인다. 매일 바람에 따라 날씨에 따라 바뀌는 굴뚝연기가 눈에 오래 머문다. 굴뚝을 바라보며 가다 보면 갈대밭이 나온다. 땅이 아직 얼어있어서 딱딱하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부러 더 천천히 뛴다. 내 키만 한 갈대밭에 가려져서 보이는 왼쪽의 도로 위 출근길 버스들, 오른쪽의 한강 변에 묶인 오리배와 낡은 배들을 본다. 여기서 양화대교가 지나가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강너머 선유도 공원으로 이어진다. 땅이 더 풀리면 양화대교를 지나서 공원에 가야겠다. 어플에서 사 킬로가 넘었다고 알려준다. 합정역 근처로 절두산 순교 성지가 나온다. 한강 쪽으로 낮은 절벽이 서 있고 그 위로 성지건물이 십자가와 함께 보인다. 그 맞은편에는 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여기 서의 하늘은 매일 표정이 다르다. 이른 새벽부터 바라보면 새벽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는 청색에서 보라색, 보라색에서 오렌지색으로 넘어가는 색들이 한강 위로 펼쳐진다. 여기서 더 멀리 가면 시간이 너무 지나버릴 것이다. 상수동 화력 발전소의 굴뚝이 아니라 공장이 보일 때쯤 꺾어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돌아올 때는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더니 땀이 다 식어버렸다.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허리를 펴고 배에 힘을 주고 천천히 걷는다.
확실하게 알고 있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과연 있기나 했던 걸까?
집은 항상 내 꿈속에서 나 자신이었다. 이십 년도 넘게 꿨던 꿈이었기에 나는 항상 집에 관한 꿈을 꾸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 그랬을까? 항상 집안에서 길을 헤매거나 멀어도 집 근처 벽에서 멀지 않은 곳을 꿈꾸었었다. 왜 나 자신 안으로 조차, 들어가지 못한 채 주변이 감당하지 못하는 속도로 뒤집어지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하늘이가 ‘엄마가 하는 말은 가끔 너무 어려워. 이해가 잘 안돼’라는 말을 했었다. 아홉 살이 되었다. 예전에는 그냥 듣기만 하다가, 엉뚱한 장난을 치고는 했는데, 내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반응해 준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었지?
‘하늘이가 마음을 주고 싶어도 그 사람들이 받고 싶어 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때면 울거나 화내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해. 그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 거는. 어떤 사람들은 하늘이를 아무 이유 없이 처음부터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하늘이에게 그러지 않을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때 친구한테 틀렸다고 우기고 화내면 안 돼. 사람 마음은 원래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알았지?’
‘아니, 엄마,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고 이해가 안 된다고 정확하게 말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내 말을 표정을 헤아려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게 느껴진다. 정말 갑자기 많이 컸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다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 살 때는 아이들이 말이 느리다고 걱정을 심하게 했었다. 대학생 노트를 펼쳐두고, 매일 새로운 단어가 입에서 나올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날짜별로 기록을 했었다. 어제는 까까, 오늘은 과자라는 말을 하는구나 그러면서. 그랬던 아이들인데, 며칠 나를 두고 아빠랑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눈에 띄게 아이들의 얼굴이 바뀌어져 있을 때가 있다. 마음도 그렇겠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그리고 점점 더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너희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겠지.
민호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15년 전에 주었던 책을 다시 선물해 주었다. 우리가 사귀기 전에 나에게 편지를 앞 면지에 적어서 선물해 주었던 그 책을 나는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이사를 다니면서 그 책을 잃어버렸다. 같은 책을 같은 사람에게 다시 선물 받다니. 15년 만에 다시 도착한 책 앞 면지에는 그때처럼 편지가 적혀 있었다. 트리 밑에서 아침에 처음 편지를 보고 조용히 접어 두었다. 2025년이 시작되었고 나는 올해 새롭게 읽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책을 집었다가 앞표지를 펼친다. 눈물이 난다. 왜 눈물이 나는지 생각이 들기도 전에 다시 표지를 덮는다. 2월의 중순이 넘어간 지금 나는 여전히 그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표지를 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간다. 계단실을 지나 도어록을 번호를 누를 때쯤, 등교 준비를 마친 너희들이 목소리가 들린다. 다리는 이미 나갈 때와 달리 조금 풀려있고, 내 다리 같지도 않은 기분이다. 후들거리지는 않지만 그저 발걸음이 가볍다고 하기도 어려운데. 귓가에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왔다!’
‘엄마, 집에 왔다.’
다행이다. 잘 찾아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