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불을 수건들을 버린다. 영유아 아기 책도 따로 상자에 담아 정리해 둔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이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지 묻은 낡은 인형들, 커다란 듀플로 블록들 안쪽으로 작은 나무 상자가 보인다. 상자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고 세모, 네모, 동그라미, 별표의 모양으로 여러 구멍이 뚫려 있다. 바다가 세 살 때 가지고 놀았던, 지금은 아무도 가지고 놀지 않는 상자이다. 뽀로로도 버리고, 커다란 레고 블록도 다 버렸는데 이건 버리지 않았다. 이제는 버릴까? 생각이 든다.
바다는 19개월이 되도록 이름을 불러도 제때 뒤돌아보지 않았다. 눈도 오래 맞추지 않고 표정도 변화가 크지 않았다. 하늘이와 다르게 ‘엄마’라고 나를 자주 찾지도 않았다. 쌍둥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간, 안기는 빈도수도 너무 달랐다. 조용히 혼자서 순하게 잘 놀았기에, 나는 잠시나마 졸기도 하고 숨을 돌리기도 했었다. 하늘이처럼 쉴 틈 없이 울면서 안기지 않아서 순한 바다가 늘 고마웠다. 그러다 조리원 동기방의 다른 아이들과도 바다의 반응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더딘 걸까? 걱정을 하던 수준에서, 어느 날 갑자기, 무서워졌다. 너는 도대체 언제 제대로 된 문장으로 말을 할 거야? 바다는 단순한 놀이에 지나치게 집중했다. 네모난 블록을 도미노처럼 줄을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고를 반복했고, 누워서 손가락을 바라보고 몇 시간을 한참 보낸다던가. 돌아가는 모든 것을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돌렸다. 집에는 내가 이십 대 중반부터 모은 그림책 전집이 가득 꽂혀 있었다. 육아에 지친 나는 하늘이 바다에게 책을 그때까지도 아직 읽어주지 않았었다. 23개월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도토리반 선생님이 바다가 추피 시리즈를 아주 좋아한다고 알림장에 남겨주셨다. ‘추피가 회전목마를 타요’ 추피의 생활동화 29번. 그게 우리의 첫 책이었다. 알고 보니 아기를 키우는 모든 집이 추피를 집에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유명한 책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이제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는 시기가 되었을까? 나는 그때부터 하루에 한 권, 두 권, 때로는 다섯 권을 두 아이를 붙잡고 자기 전에 매일 읽어주었다. 20년 가까이 내 책장에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했던 영유아 그림책들이 한 권 한 권 나오기 시작했던 때도 이때였다. 아이들은 특히 추피시리즈 중 ‘추피는 폭풍우가 무서워요’도 좋아했다. ‘우르릉 꽝꽝 꽝!’을 나는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을까? 번번이 다시 읽어달라고 조르는 책들은 정해져 있었다. ‘우르릉 꽝꽝 꽝!’을 과장해서 읽어줄 때마다 바다는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던 몸동작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무시무시하다는 듯, 양손으로 팔을 꼭 감싼 다던지, 눈썹을 찌푸리고 ‘무섭다’는 추피의 대사를 따라 했다. 어린이집의 사랑 넘치는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의 머리를 색색의 고무줄로 자주 묶어주셨는데, 앞머리가 말끔하게 올라가서 위로 묶인 아이들의 동그랗고 하얀 앞이마가 반짝반짝 빛이 나서 참 귀여웠다. 기억도 안 나던 오래된 동영상 속 바다는 무시무시하다면서 우르릉 꽝꽝 꽝! 을 따라 한다. 갑자기 일어나 나에게 달려오는 다급한 바다의 하얀 앞이마와 종종 뛰는 발동작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은 끝나버린다. 아쉽다. 조금 더 오래 찍을걸. 이렇게 귀여웠었나. 그때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도 볼 수 없을 만큼 눈앞이 어두워져 있었다. 말을 다른 아이들만큼 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걱정이 되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표정들을 다 놓치고 있었다. 영상 속 바다는 참 작고 통통하고 귀엽다. 그게 가끔 슬프다. 오래전 사둔 전집 중에는 그림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 표지가 눈에 띄지 않아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책들이 잔뜩 책장에 꽂혀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기대 없이 작은 책 ‘고함쟁이 엄마’를 읽어주자 둘 다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고 짜증 내는 엄마 펭귄 때문에 아기 펭귄의 머리와 팔과 다리, 날개는 모두 전 세계로 흩어져 버린다. 그래, 내가 소리를 많이 지르기는 했지. 인정한다. 아이들은 이것은 우리들의 이야기라며 흥분해서 그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달라고 했다. 어린이집에 싸가지고 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소리 지르는 엄마의 얼굴을 바다는 몇 번이나 따라 그렸다. 이십 대의 나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책들은 항상 나의 예상 밖이었다. 같은 책을 몇십 번이나 다시 읽어달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림책 한 권이 엄청나게 강력한 콘텐츠라는 것을 이 분야에 발을 들인 지 이십 년이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낭독이 익숙하지 않아서 목이 자주 아팠고, 극도의 피곤함을 참고 책을 매일 같이 읽는다는 게 노동같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모든 것은 잔잔한 훈련이 분명하다. 몇 년이 지나자 나는 책 읽는 것이 점점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 아이들의 반응은 항상 예상 밖으로 신선했고, 나에게 새로운 그림책의 매력에 눈뜨게 해 주었다. 바다의 긴 문장을 기다리며 읽었던 모든 그림책들이 나도 모르는 새 다시는 없을 큰 공부가 되었다. 얼마 전 주말반 수강생 중에 세 살 아이 엄마가 계셔서 집에 마지막으로 모셔두고 있던 추피책과 바바파파 시리즈를 모두 물려주었다. 가장 아끼던 책들이어서 꼭 필요한 분에게 드리고 싶어서 아껴두고 있었다. 두 아이의 허락도 받고, 확인도 받았다. 그러다가 두 권, ‘추피가 회전목마를 타요’와 ‘추피는 폭풍우가 무서워요’는 결국 물려주지 못했다. 바다와 하늘이가 ‘그건 추억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서툴게 읽어주었던 첫 책이라 나도 누군가에게 주기에 망설여졌다. 결국 두 권은 책꽂이에 도로 들어갔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그럴 것 같다.
나무상자를 버릴까 다시 들어본다. 19개월 바다가 처음으로 나무 상자를 가지고 놀았던 날이 생각난다. 나무 상자에 네모 구멍으로 네모 블록을 모양을 맞추는 것을 처음으로 성공했던 그 순간, 바다는 항상 그렇듯 조용히 아래쪽으로 눈을 깔고 바라보고 있었다. 지켜보던 나와 어른들이 축하 박수를 치자, 바다의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는데, 입술을 천천히 오므리더니, 다음 순간 씩 웃었다. 수줍다는 듯이. 기쁘다는 듯이.
그런 바다의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나는 19개월 만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바다는 그 뒤로 그 나무상자를 몇 달은 더 가지고 놀았다. 처음 지었던 수줍고 기쁜 표정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잊히지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무 상자를 도로 제자리에 놓아둔다. 나는 한참은 더 이 상자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