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망설임 없이

by 이수연

제멋대로 꿈을 해석할 때가 있다.

꿈속에서는 자주 생각하는 사람과 장소와 상황을 찾아갔던 일들은 아마도 내가 간절히 원하니까 내가 바래서 꿈으로 찾아온 일들이겠구나 싶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제멋대로 읽어내는 꿈들은 아주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면 어릴 적 제일 싫어했던 가구들은 항상 조악하게 합판보드 위에 접착제로 붙여진 민트색에 대리석 무늬 필름지였다. 실제 나무도, 대리석도, 진짜 그 안이 같은 민트색도 아닌 그 얄팍한 마감이 나에게는 진짜가 아닌 가짜라고 외치고 있었다. 꿈속에서 민트색 필름지가 벌어진 낡은 주방을 만났다면, 진실하지 않은 일에 대해 무의식이 나에게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고.


몇 달 전 꿈속에서 구불구불 꼬여진 배롱나무를 만났는데 나무의 윗부분이 현란하게 불타고 있었다. 그맘때쯤 나는 내가 돌바위산에 자라는 나무 같다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흙도 물도 없는 바위틈을 깨고 뿌리가 집요하고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었다. 생명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돌바위에서도 나무는 사방으로 꼬여가면서 살아남아 자라나고 있었다. 보통 나무가 불에 타고 있고, 그 불길이 아주 세면 무서워야 할 텐데, 그 불타는 나무를 보면서 첫인상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오렌지색과 초록이 뒤섞인 그 불이 내심 더 심하게 타올랐으면 하고 바라었다. 더 화려하고 커다랗게 피어나서 모든 걸 태워버렸으면. 나에게 그 불은 해로운 것이 아니라 척박하고 메마른 나무의 나뭇잎이고 활짝 피어난 꽃이었다. 나무는 뜨거운 불에 의해 비로소 자기의 숙명을 다해내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본 꽃 중 가장 자유로운 형태에 생명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꽃이었다.


아침에 찾아온 꿈은 검고 반짝거리는 통통한 개미들이었다. 개미는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바닥을 걸어가고 있었다. 몇 마리가 규칙을 깨고 행렬에서 벗어났다. 벗어난 개미들은 뒤로 돌아가서 끼어들어가 멀쩡히 줄을 지어가는 동료들의 허리를 똑 끊어버렸다. 몇 마리의 개미들은 허리가 잘려서 행렬 옆으로 뒹굴 거렸다. 그 괴상한 행렬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에게 개미는 정해진 자신들의 규율과 책임을 따르는 성실하고 순종적인 생명이다. 혼자서 주도하고 결정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그들이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허리가 똑똑 끊어지며 낙오되는 죽어가는 개미들을 보는데 아무런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마치 마땅히 벌어질 일이 일어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꿈들이, 나만의 개인적인 이유로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지나가고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바람 같은 꿈 하나도 이럴 텐데,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에 꾸는 꿈들은 얼마나 더 그렇게 주인을 고집스럽게 닮아갈까?

서른 살 즈음에 영어를 급하게 공부하면서 좋아하는 책의 한글판과 영문판을 함께 사서 같이 비교하며 읽었던 적이 있다. 어떤 단어는 공부로 지나가지 않고, 꽤 오랜 시간, 몇 년을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아마도 그 단어를 내 안에 남겨두고 가지고 있다가 그 단어처럼 살다가, 결국은 그 자체가 되어 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엄격한 부분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런 하나도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 뿐이다. 되고 싶지 않은 것을 입에 올리고 상상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 것. 나에게 이것은 평생에 걸쳐서 남겨진 지긋지긋한 훈련이다. 내가 제멋대로 해석하는 꿈처럼,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로 성장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유쾌하게 망설임 없이 나무를 불사르고 까만 개미의 허리를 똑똑 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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