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픽션으로 쉽게 걸어 들어가지 않지.
옆에는 자전거가 쓰러져 있고 지갑도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 옆으로는 회색의 구두수선 노점상이 있다. 그 옆으로 빨강과 파랑의 색이 바랜 파라솔 의자들이 몇 개와 장기알들이 나뒹굴고 있다. 아마도 내가 넘어지며 자전거와 부딪힌 것이 아닐까? 옆 도로로 연두색 버스가 휙 지나간다.
지난 십사 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쓰던 동그란 그릇이 바닥에 떨어지고 세 조각으로 흩어졌다.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릇을 깨뜨린 아이가 내 눈치를 본다. 유리를 깨끗하게 치우고 아직도 주눅이 들어있는 아이의 눈을 보며 말한다.
-앗싸! 드디어 예쁜 새 그릇을 살 수 있겠다!
우리는 모두 얼마나 다른가. 새로운 컵을 하나 고르면서 파란색을 고르는 나와 붉은색을 가지고 싶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문이 컵에 찍히는 것이 싫으니 투명한 것이 싫다는 말도. 뜨거운 차를 담으면 급하게 뜨거워지는 것이 싫으니 두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그런데 어떤 컵은 투명하고 두께가 얇았다. 이런 컵을 디자인한 사람은 손자국 찍히는 게 싫지 않았던 걸까? 아닐걸. 그 사람은 그 컵에 작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게 반짝반짝 천으로 문질러 닦으면서 티끌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수시로 빛에 비춰보며 확인할 거야.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야금야금 즐기고 있겠지. 정말 그럴까? 그럼. 사람이 모두 얼마나 다른데. 진짜. 사람이 모두 얼마나 다른데. 같은 것을 보고도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한다니까. 그래서 그게 진짜 진짜 재밌는 거야.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은 항상 늘 신비롭다. 상대를 알아가는 것은 흥미롭다. 크게 혹은 작게 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사람의 성장기와 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 나와 완전히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비범한 일상들, 내가 전혀 읽지 않을 책들이 꽂혀 있는 그 사람의 책장, 말 같지도 않은 희망 같은 것을 조용히 듣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재밌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상대방도 그러지 않을까 그런 착각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상대방에 따라서 다른 말과 표정을 짓게 되는 나를 만나게 되는 게 사실 더 재밌었던 것도 같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내가 어느 정도 의도하고,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게 된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내 마음이 가는 것도, 가다가 쾅! 하고 부딪히고 휘말리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그리고 서둘러서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 모든 것에서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나라서 그렇게 반응한 것도 아니고 그때의 나라서 그렇게 반응했던 일이 더 많았다니. 믿기가 힘들었다. 몇 달이 지났는지 세어보았다. 겨우 여섯 달이 지났을 뿐인데. 처음에는 그림 그리다가 잔뜩 물감이 튀어버린 마우스 패드가 부끄러워서 깨끗하게 닦아 두었는데. 지금 내 옆에는 물감이 잔뜩 튄 마우스 패드가 당당하게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본다.
우리가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 약속 시간에 십분 씩 혹은 더 일찍 나온다던가, 어딘가 낯선 곳을 갔을 때 나를 생각하며 무언가 작고 귀여운 것을 챙겨 온다던가, 만날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작은 인사와 그에 대한 반응. 디카페인은 맛없으니까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던가. 그 신선했던 모든 것은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다가 나른해진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제멋대로 판단해 버리는 부분이 생겼고 어느 정도는 상대방에 대해 그동안의 경험으로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다고,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하며 이제는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점점 더 담담하게 서로의 반응을 제멋대로 예상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에는 그게 정답인지 아닌지도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익숙해지고 안정적이라는 단어 위로 함께 성큼 올라가게 된 거야?
누군가를 그리고 그로 인해 나를 새롭게 알아간다는 것은, 그런 기회를 만난다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의 파라솔 테이블을 쾅! 하고 들이받는 것 같은 일이다. 우리는 절대 아무나 쉽게 궁금해지지 않는다. 옆에는 자전거가 쓰러져 있고 지갑도 없다. 잠시 내가 누군지도 잃어버릴 만큼 띵! 하고 혼란스럽고 어지럽지만, 그 정도로 나를 잃어버리고 새롭게 찾아내는 과정을 만나기가 쉬운가. 전혀 쉽지 않다. 일부러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얼굴을 붉히거나 화내지 말고 정들었던 깨진 그릇을 차분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치우는 것이다. 남은 유리조각이 아이의 발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하며 생각한다. 온갖 이상한 이유와 기준으로 선택될 새로운 어떤 그릇을 상상하고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