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거야.

독립과 자립

by 이수연

-이건 내 거야.

매일 같이 내 오른팔을 붙잡고 볼을 비비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홉 살의 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구나. 동그랗게 반짝 거리는 가는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그 머리통이 귀여워서 가만히 바라본다. 그런데 있지, 네가 아직 모르는 게 있는데, 사람은 아무리 좋고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어도 누가 누구의 것이 될 수 없어. 언젠가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설명해 주려고 했을 때, 너는 ‘엄마 말은 가끔 너무 어려워’라고 그랬었지.


너희들이 다섯 살 때쯤이었나. 우리는 ‘고 녀석 맛있겠다’ 그림책 시리즈를 선물 받고 자기 전 며칠 동안 그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두껍고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투박한 공룡들이 웃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항상 이야기가 진지하게 흘러갔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죽거나 이별을 했는데, 키워준 엄마 아빠 공룡과 아니면 정든 친구와 헤어지는 아기공룡 이야기가 많았다. 다섯 살의 아이들은 그래서 어느 순간, 이 책을 자기 전에 그만 읽자고 했었다. 슬픈 꿈을 꾸게 된다고. 다섯 살에게는 ‘독립’이라는 단어는 거부감이 드는, 두려운 무언가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일곱 살이 된 때부터 화가 많이 나거나 나에게 실망감이 들 때면 소리치기 시작했지. ‘나 조금만 더 크면 독립할 거야. 엄마랑 같이 안 살 거야!’ 아마도 어렴풋이 고 녀석 맛있겠다를 처음 읽었을 때 계속 ‘독립’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던 그때부터 일 것이다. 너희들은 언젠가는 엄마아빠와 이별해야 하는 게 삶이라는 것을 눈치챘고, 마음속으로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겠구나 싶다. 그 이전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개념인데, 그림책 몇 권을 만나면서 너희는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랑 헤어져 군대에 가야 한다고,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종종 울기도 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워서 몰래 동영상을 찍어뒀었는데, 그 영상은 어디에 있으려나.


방금 전 글을 쓰다가 잠시 우작가님과 전화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작가님이 실제로 겪은 야생 딱새와의 일 년 동안의 추억을 가지고, 어떤 메시지를 내가 생각하고 그려낼 것인지 질문을 받았다. 쓰고 있는 글의 주제가 ‘자립’이다 보니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작은 갈색의 아기 새와 작가님의 일 년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자립’에 대해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십 년 전, 함께 길을 걸으며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렸었다.


사실 엄마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사람은 아무리 좋고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어도 누가 누구의 것이 될 수는 없다. 그 어떤 관계도 소유하거나 영속되는 것은 없다. 언젠가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설명해 주려고 했을 때, 너는 ‘엄마 말은 가끔 너무 어려워’라고 그랬었지.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면 그것은 선택하거나 강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서로의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니까. 옆에 있기를 서로가 원해서 함께 있는 것이지, 네가 매일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이건 내 거야’ 그렇게 믿고 강요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 하단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아무리 함께 같은 곳에 있다고 해도 마음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면 그 관계는 생명력이 다했고,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는 거야.

이런 말을 하면서도 사실 엄마는 아주 이기적인 이유로 너희들을 낳았어. 더 행복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가끔씩, 내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 너희에게 미안해지고는 해. 아무리 부모 자식 관계라도 내가 낳았다고 해도 너희들은 내 것이 영원히 될 수 없어. 내가 지금 간절히 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국, 언젠가 너희가 투박한 그 공룡들처럼 ‘엄마. 난 이제 독립할 거야!’라고 말하며 둥지를 떠나 날아가 버리는 그날 일지도 몰라. 그만큼 너희들이 충분히 성장했고 준비가 끝났다는 거니까. 그건 슬퍼할 일이 전혀 아니라, 인생에서 크게 축하해야 하는 일이니까.


독립과 자립의 차이가 무엇인지, 사전을 찾아봤다. [독립]은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되는 것이고 [자립]은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서는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까 차이는 결국 기대는, 벗어나는 주체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네. 몇 권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인, 개인의 미묘한 취향을 무시하고 한동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여기저기 선물로 주었던 배려심이 부족한 때가 있었다. 그 책의 한 문장이 좋아서였는데 ‘사랑이란 타인과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문장이었다. 그 문장 대로 라면 나는 너희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 적어도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너희들이 태어나고 나서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졌거든. 그리고 어느 부분은 그렇게 되기 위해 행동하고 있으니까. 사실 이거 이미 너희도 눈치챘을지 모르는데, 엄마는 어른인데도 너희들에 따뜻함과 순수함 덕분에 많이 위로받고 의지하고 그러거든. 내가 너희를 키우고 있는 것인지, 너희가 나를 키워주고 있는 것인지. 잘 구분이 안될 때도 있어.

언젠가는 진짜로 너희들이 독립을 하겠지.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너희들의 마음을 당연하게 품었던 나의 팔을 뿌리치고,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되는 그날이 오겠지.. 엄마는 솔직히 그게 허전할 것 같긴 한데, 동시에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 언젠가 화나서 투덜대는 투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너희가 나로부터 독립을 외치는 그날이 아마도 나의 진짜 자립이 시작되는 날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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