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리뷰 금지운동이 있었다길래 나도 최대한 스포 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무 정보 없이 가서
보아 더 좋았기 때문이다. 2025년 본 몇 편의 영화 중에 최고의 영화로 [세계의 주인]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직 안 보셨다면 나의 리뷰를 더 보지 마시고, 영화관으로 가시기 바란다.
우리들, 우리 집도 참 좋았는데 세계의 주인까지. 윤가은 감독님이 만든 세편의 영화가 참 좋다. 아름답지만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는. 현실에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소녀들이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건강함으로 스크린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 집]의 시작과 함께 부부싸움하는 부부 사이로 눈치를 보고 있는 열두 살 하나의 걱정 어린 눈빛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이는 내내 눈치를 보다가 겨우 입을 뗀다. 같이 밥 먹자, 아침 먹자. 아마도 중학생인듯한 오빠도 싸우던 부모님들도 하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가운데 하나가 차린 아침밥이 천천히 식어간다.
하나의 집은 오빠도 하나도 이미 눈치채고 있지만, 엄마 아빠는 곧 싸우다가 지쳐 헤어지게 될 것이다. 번듯한 아파트지만 끝날 때까지 이 네 가족은 한 번도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지 않는다. 하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예전에 행복했던 가족여행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바쁜 엄마아빠와 함께 바다로 여행을 가자고 조른다. 꼭 가고 싶어서 라기보다는 그게 하나가 생각하는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어린 자매, 유미 유진 자매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언뜻 보면 다정하게 엄마와 통화하는 자매의 모습을 보면 이 집은 가족의 정이 있어 보이지만 자세히 알면 알수록 유미와 유진 어린 자매만 내버려두고 지방에서 따로 일을 하고 있는 부모의 결정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하나는 마음속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 가족이 필요했고, 유미와 유진은 자신들의 보호자가 필요했다. 열두 살 하나는 자신의 친가족에게는 해주지 못한 따뜻한 밥을 이 자매에게 차려주기 시작한다. 지켜주는 어른들은 없지만, 해가 잘 드는 노란 벽지 가득 상자를 쌓아두는 어린 자매에게 하나는 따뜻하고 든든한 언니가 된다. 진짜 가족이 아닌데도 친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있게 해주는 관계들. 그 베풂의 방식이 한없이 어설프고 서툴지만, 자매의 집을 메운 햇살같이 조용하고 빈틈없이 서로의 마음에 빈구석에 빛이 스민다. 세 여자아이의 해사한 미소는 너무 맑아서 내내 빛이 나지만 동시에 그래서 더 슬프다. 지방에 있는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모아두었던 상자로 셋이서 살고 싶은 집을 만든다. ‘우리 집’을. 계란판으로 만든 세모 지붕에 노란색 물감도 칠한다. 이렇게 멋진 집에서 엄마 아빠와 같이 살고 싶다. 하나의 꿈이자 유미와 유진의 천진한 꿈이 알록달록한 종이집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빠르게 차갑게 다가온다. 자매의 집은 또 이사를 가는 상황을 맞이했고 이것은 정든 하나와의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 하나의 집은 내내 소란스럽게 싸우는 엄마아빠의 전쟁이 끝이 났다. 드디어 이혼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둘은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충격을 덜 주고 이 사실을 전할 것인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게 고민한다. 이별을 결정하고 나서야 둘은 처음으로 정상적인 부부로 보인다. 방문 너머 하나는 그 대화를 다 엿듣게 되고 기대했던 가족여행이 이별 여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다음날 아침, 유미 유진과 함께 부모님이 일한다는 바닷가로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가장 어린 유진은 엄마에게 꼭 자랑해야 한다며 셋이서 만든 종이집을 굳이 어깨에 지고 간다. 하지만 시작부터 모든 여행의 과정은 위태롭기만 하다. 종이집은 점점 무겁고 귀찮아졌고, 처음 가는 바닷가 길에서 버스를 잘못 타면서 셋을 결국 길을 잃어버린다. 겨우 연락이 닿은 엄마에게 화를 내자마자 핸드폰 배터리는 뚝 끊겨버리고 유미와 하나는 이 위태로운 여행 중 쌓였던 화를 이고 지고 온 종이집에 한껏 화풀이를 한다.
종이집은 짓이겨지고 망가지고 더 이상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게 사라진다. 소녀들의 천진한 희망은 초라하게 형태도 없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뒹군다.
그래도 이 세 소녀에게 행운이 하나 찾아오는데, 만삭의 아내가 급하게 조산기가 있는 바람에 바닷가에서 캠핑을 하던 커플이 급하게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병원으로 가버린 것이다. 맛있는 밥과 작지만 아늑한 텐드가 있다. 세 소녀는 배불리 먹고 셋이서 텐트에 나란히 누워 같이 잠을 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번듯한 노란 세모지붕이 있는 집이 아니어도 좋았던 것이다. 마음 편하게 맛있게 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어깨를 맞대며 잠들 수 있는 그런 작은 방하나였어도 이 소녀들의 마음은 가득하고 충분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바람이 너무 작고 소박하고 진실해서 오히려 더 안쓰럽다. 다음 날, 자매를 집으로 돌려보내며 서로 작별인사를 한다. 유미가 하나에게 이사 가고 나서도 우리 언니를 해줄 거냐고 묻는다. 영화를 보며 나는 동시에 하나와 함께 중얼거렸다.
‘그럼, 당연하지.’
그 말 말고 달리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하나와 유미와 유진은 사랑이 넘치는 아이들이다. 어떤 형태로 각자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을 나눌 성숙한 어른이 그 아이들의 진짜 가족에게는 없다. 그것이 이 아이들을 위태롭게 만든다. 차가운 현실이 내내 함께 찾아와서 보면서 마음이 씁쓸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참 좋은 것은 서로 친가족이 아님에도 하나와 유미, 유진이 나눈 마음들이 참 순수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 가지의 정체성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와 있을 때, 자신도 몰랐던 더 다정한 나, 친절한 나, 감정적인 나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은 선택할 수도 조절할 수도 있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행동이 드러난다. 사람은 그럴 때 아, 나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새로운 자아를 만나게 된다. 이 세 소녀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다. 정작 진짜 가족에게는 한없이 주고 싶었지만 줄 수 없었던 표현을 서로 나누며 간절히 원했던 새로운 존재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소녀들의 성장통은 앞으로도 예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 그리고 회복될 것이라는 것, 누구보다도 따뜻한 ‘우리 집’을 다시 지어낼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도 안심이 된다.
하늘이와 바다가 또 싸운다. 둘이 말다툼을 하다 보면 누가 맞고 틀린 지 시작도 알 수가 없게 돼버린다. 많이 화가 난 하늘이는 내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불 꺼진 방 안에 홀로 누워있는 하늘이의 옆모습을 본다. 이럴 때 보면 볼이 통통해서 아기 때 얼굴이 나온다. 귀엽다.
-하늘이 여기 내려와서 무슨 생각했어?
-아무 생각 안 했는데?
-그렇게 삼십 분 넘게 누워서? 무슨 생각이라도 했을 거 아냐? 너프건이나, 솔저생각 그런 거 안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럼 뭐 했어?
-그냥 까만 천장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게? 엄마는 그 정도 혼자 있었으면 엄청 이것저것 생각했을 거야.
-그건, 불안해서 그래.
-엄마가 불안해서 그런 거야?
-응. 나는 편안하니까 아무 생각 안 해.
내가 피곤하다고 소파 앞에 엎드리니까 내 머리 쪽 조명에 불을 끄고 (눈부시면 안 된다고) 이불을 방에서 가지고 나와서 덮어준다. 발이 튀어나오니까 ‘발 시리겠다’ 하면서 이불을 끝까지 덮어준다. 아직 아홉 살인데, 이런다. 생각해 보니까 하늘이가 한 네 살 때부터인가, 내 맨다리를 보면 작은 담요라도 가지고 와서 덮어 주었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아이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게으르게 보낸다. 소파 앞에 어둑한 부분에 피곤한 두 눈을 쉰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한다. 여기가 진짜 내가 꿈꾸던 ‘우리 집’이라는 것. 지금 이 순간. 불안하지 않 다. 이 온기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나른한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