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어? 그냥, 하고 싶어서.
의도가 없는 행위가 최고라는 글을 봤다.
너무나 공감한다. 많은 고민을 해봤던 주제이기에.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있는 그대로]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쓴 적이 있다.
골자는 이렇다.
"남 눈치 봐가면서 맞춰보려고 행동해 봐야 자연스럽지도 않고, 의도도 뻔히 보이므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라는 내용이다.
과연 나는 1년 전의 깨달음을 잘 지켰는가?
"아니오."
무언가를 다짐한다는 것은,
다짐의 주체와 그 다짐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매일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는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라고 다짐하지 않으니까.
나는 다짐했으나,
여전히 남 눈치를 보게 되는 사회적 틀 속에 갇혀 있다.
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편하다.
변화가 없고, 균질하다.
모양은 어긋남이 없고,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
모든 것이 손바닥 안에 놓인 듯이 훤 하다.
기계적 우주론을 믿어봐도 될 만큼.
모든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있으니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운전을 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움이 없다.
어려움이 없는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좋은 일일까?
아니라고 본다. 철저히 의도되고 통제된 인위적인 괴로움이 필요한 건 상처를 통해 회복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한다. 주변의 객체들을 인식한다.
어림하고, 계산하고, 예측한다.
사고하는 인간의 뇌에서 '의도'를 가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일부러라도 노력해 보지만, 그러면 더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게 된다.
자연스러움이 곧 의도 없음이고,
의도 없음은 여유로움이고,
여유로움은 매력이다.
'외부 세계에 기대하지 않는 것.'
어차피 나 이외에는 통제 가능한 것들이란 없다.
'나'조차도 통제가 완전히 가능하다면, 대단한 사람 소리를 듣는 와중에 남을 통제 가능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통제의 원천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
조직의 규율, 사회적 시선
인사권, 규칙적인 월급, 관계지향
이런 것들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단언할 수 있는 당신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무형의 가치를 뿜어내는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유전이다. 당장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당신을 외부 세계에 전시해라.
당신은 '스타'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
나 하나를 통제하기에도 벅차다.
기대할 필요 없다. 인정받으려고 하지도 말아라.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살면서 멋있다고 느낀 가상의 인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스타트렉]의 커크
완전히 꼴통들이다.
지 맘대로 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일도 잦다.
하지만 저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뿐
의도가 없다. 드러나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의도가 없다. 외부 세계에 대한 반영이 없다.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 있다.
고지식하고, 고집쟁이에, 남의 말 죽어라 안 듣고,
자기 맘대로 하며, 눈치라고는 전혀 보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고, 좋아한다.
그들의 삶은 스페이스 오페라에 비견되며 그들의 생을 갈아서 찍어내는 독립영화를 1열에서 직관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인생이다.
하지만, 동경하는 대상과 본인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취할 것은 취하고 아닌 것은 발라내야지. 고등어가 맛있다고 한들, 내가 불곰이 아닌 이상에야 뼈는 발라먹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좋아하는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는 그런 철없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성장하면서 놓을 수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 지 맘대로 모든 것을 하려 하면,
민폐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을 애진작에 깨달았음은 축복이다.
뼈는 어떻게 발랐을까?
의도 없음은, 몇 단계를 거치다 보면 나오는 부산물이다.
의도 없음을 향해서 나아가면,
엉뚱한 곳에 도착하게 된다.
주변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지만, 배려도 뭣도 아닌 눈치만 보면서 은근히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키메라 같은 태도로.
돈을 좇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은 그리 없다지 않은가.
의도 없음은 산출물이 아니라 부산물이다.
예전에 매력과 관련한 블로그를 쓴 적이 있는데,
매력적이려고 해 봐야 오히려 매력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냥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나 이외의 외부 세계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
이 세 박자를 충족해야 의도가 없는 사람이 된다.
의도 있는 친절은 빚처럼 느껴져 부담스럽고,
의도 있는 기부는 이미지 세탁이라며 비난받으며,
의도 있는 도움은 바라는 게 있어 보인다.
이렇게 의도가 가득 담긴 글을
공개된 장소에 올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나에게는 엄격하자'
'통제 가능한 영역에 비용을 투입하자'
'외부에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말자'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따위의 다짐들의 나열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의도 없음은 분명히 취하고픈 태도이나,
비문증의 잔상을 눈으로 좇는 것만큼이나 하염없다.
생선을 가시째 씹어먹는 불곰들을 동경하며,
젓가락을 뒤적이며 뼈를 발라내는 것이 범부에게 허락된 최대한이다.
젓가락질도 하다 보니 손에 익어, 이제는 제법 태가 난다.
잘 발라낸 가시를 휴지 속에 꽁꽁 숨겨 주머니에 쏙 집어넣으면, 불곰이 지나갔는지 젓가락을 든 사내가 지나갔는지 알게 무엇인가?
2026. 2. 18.(수) 12:00, 5 생활관